(조선일보 2018.11.27 임민혁 논설위원)
2005년 11월 열린 경주 한·미 정상회담에서 노무현-부시 대통령은 대북 금융 제재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노무현이 "당신과 내가 손발이 안 맞는다"고 하자
부시는 정색하며 "당신은 김정일이 한국 돈을 위조하는 걸 가만 보고 있겠는가"라고 되받았다.
이종석 당시 NSC 사무차장은 회고록에서 이때 상황을 기술하면서
부시를 '일방주의와 패권주의에 사로잡힌 네오콘 대통령'이라고 했다.
미국 측 인사들 역시 노무현에 대해 "괴상했다(bizarre)"(라이스 전 국무장관)
"정신 나간 인물"(게이츠 전 국방장관)이라고 혹평했다. 외교 참사였다.
▶6·25전쟁 중인 1952년 이승만-아이젠하워 회담을 시작으로 한·미 정상회담은 총 69차례 열렸다.
반세기 넘도록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굳건한 동맹 관계를 유지해온 양국이지만,
정상 간 만남이 항상 화기애애했던 건 아니다.
그중에서 1979년 6월의 박정희-카터 회담이 단연 '최악'으로 꼽힌다. 당시 험악했던 분위기는
간접적으로만 알려져 있었는데, 그제 그 생생한 대화록이 담긴 백악관 기밀 문서가 공개됐다.
▶당시 카터는 인권 문제를 언급하며 "긴급조치9호를 철회하라"고 했고,
박정희는 "소련이 워싱턴을 기습하면 미국의 자유도 제한될 것"이라고 했다.
날선 공방이 계속되자 최광수 의전수석이 톤을 낮춰 통역해보려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고 한다.
카터가 회담 휴식 시간 중 "당장 돌아가겠다. 짐 싸라"며 펄펄 뛸 정도였다.
▶1993년 정상회담 때 김영삼은 한·미 실무진이 합의한 용어인 '(북핵) 일괄 타결'이 김대중의 용어와 비슷하다며
'철저하고 광범위한 접근'을 쓰자고 고집했다. 클린턴은 얼굴을 붉히며 큰 실망을 나타냈다.
2001년 부시 취임 직후 미국으로 달려간 김대중이 햇볕정책을 장황하게 설명하자,
부시는 지루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고 한다.
▶외교가에는 '실패한 정상회담은 없다'는 속설이 있다.
외교관들은 어떤 회담 후에도 '대단한 성과'가 있었던 것처럼 속이는 데 전문가들이다.
이 때문에 정상회담의 갈등과 곡절은 보통 한참 뒤에 조금씩 알려진다.
문재인-트럼프 대통령은 어떨까. 지금까지 정상회담 여섯 번은 표면적으로 별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 우드워드 기자의 책에는
"반복되는 대화는 '트럼프가 싫어하는' 문 대통령과의 관계를 악화시켰다"는 구절이 나온다.
두 정상은 이번 주 아르헨티나 G20 정상회의에서도 만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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