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 칼럼] 이런 정부 때문에 국민은 배고파진다
조선일보 2018.11.28. 03:17
대기업 수익에 손을 대고 고임 일자리를 때린다
文 정부의 '포용 경제'는 늘 이런 식인가
올 7~9월 가계소득을 다룬 23일 국내 신문 1면 제목은 언론학 교재로 사용할 만하다. 세상사가 언론이란 창을 통해 어떻게 굴절되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신문 대부분이 '빈부 격차 확대'를 큰 제목으로 달았다. 본지는 '가난한 사람만 더 가난해졌다'는 큰 제목을 붙였다. '양극화' 제목은 4면 작은 기사에 달았다.
어느 쪽이든 사실을 반영했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사람이 더 많이 벌었고 가난한 사람이 더 적게 벌었다. 제목 차이는 사실의 차이가 아니라 본질을 바라보는 신문의 시각차를 보여준다. 많은 언론이 '부익부 빈익빈'을 강조했다. 본지는 '빈익빈'에 강조점을 뒀다. 이런 차이는 다른 여론을 조성한다. '부익부 빈익빈'을 강조하면 해결책을 정부의 개입에서 찾는다. '빈익빈'을 강조하면 해결책을 시장 메커니즘에서 찾을 수 있다.
중등 교육 수준의 설명을 덧붙이면, 정상적으로 성장하는 나라는 모든 계층의 소득이 늘어난다. 크게 성장할수록 격차는 벌어진다. 숙련자가 비숙련자보다 시장에 공급되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숙련자도 소득이 늘어나므로 격차가 확대된다고 불행하지 않다. 자신의 소득과 후생이 함께 커지기 때문이다.
이번 통계를 보면 한국에서 '부익부'는 잘못이 없다. 상대적 고소득 가구(상위 20%·5분위)의 소득은 8.8% 늘었다. 돈놀이나 탈세로 늘어난 게 아니다. 취업자가 늘면서 근로소득이 늘었다. 일해서 벌었다. 이자, 임대료와 같은 재산소득은 줄었다. 세금·연금·건강보험료로 빠져나간 비소비 지출은 35% 늘었다. 정부의 마이너스 역할을 노동시장이 플러스로 바꿔놓은 것이다. 중상층인 3·4분위 가구도 같은 패턴을 보였다. 정부가 더 가져간 것보다 시장이 더 줬다. 상대적 고소득층에게 한국 시장은 그럭저럭 돌아간다.
문제는 '빈익빈'이다. 상대적으로 저소득 가구에 속하는 1·2분위는 중상층과 반대 패턴을 보였다. 국민 세금을 나눠준 이전소득이 늘었다. 1분위는 증가율이 20%에 달한다. 반면 취업자가 줄면서 근로소득이 줄었다. 정부의 플러스 역할을 시장이 마이너스로 바꿔놓았다. 지난 1~3월 같은 결과가 나왔을 때 정부는 고령화와 핵가족화를 이유로 들었다. 장기적으로 그럴 수 있다. 하지만 2015년 정점을 찍은 뒤 2016년부터 꺾인 하위 가구의 소득을 그 논리론 설명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부터 고령화와 핵가족화가 시작됐나. 상대적 저소득층에게 한국 시장은 비정상이다. 정부 정책이 시장 기능을 무력화했다.
현 정권은 이럴 때 귀신같은 능력을 발휘한다. 정권에 가까운 매체가 "빈부 격차"라며 북을 두드릴 때부터 알아봤다. '부익부'와 '빈익빈'에 인과관계가 없음에도 책임을 '부익부'에 덮어씌웠다. 통계 발표 후 닷새 만에 정부가 "자영업자의 소득을 늘리겠다"며 카드 시장에 개입해 수수료를 내렸다. '포인트, 할인, 무이자 할부 등 과도한 부가 서비스 관행을 개선해 마케팅 비용 감축을 유도하겠다'는 보도 자료도 내놨다. 경쟁을 줄이라는 방침을 정해준 것이다. 카드 회사는 공기업이 아니다. 경쟁으로 사는 사기업이다. 사실상 '담합하라'는 뜻이다. 직권 남용 아닌가. 이른바 '적폐'들의 직권 남용 단죄에 도통한 검찰은 주제넘은 금융위원회를 즉각 수사하라.
시장은 안다. 사기업은 경쟁을 포기하면 무너진다. 이대로라면 생존하기 위해 서서히 인력을 줄이는 길을 걸어간다. 정권이 무서워 당장 못할 뿐이다. 정부의 발표에 카드사 노동조합이 투쟁을 선언한 것도 미래가 뻔하기 때문이다. 서울에 있는 카드 회사를 방문해 보라. 얼마나 많은 청춘이 선망하는 일자리인지 입구에서 알 수 있다. 영세업자 소득과 상대적 저임 일자리를 늘린다며 대기업 수익에 손을 대고 고임 일자리를 때린다. 이게 지금 정권이 빈부 격차를 줄여 '포용 경제'를 실천하는 방식인가.
정권과 주변 나팔수들은 한국의 빈부 격차가 엄청난 듯 말한다. 그럴까. 이번에 빈부 격차 지표로 활용된 한국의 5분위 배율은 OECD가 조사한 38국 중 중간 수준이다. 지니계수는 더 낮다. 주변에 캐나다와 프랑스가 있다. 빈부 격차를 과장하는 것은 정치적 선동이다. 인과관계도 없는 곳에 책임을 돌려 사회 계층의 갈등을 조장하는 데 불과하다.
청와대 어떤 수석이 사흘 전 "국민들은 여전히 배고프다(still hungry)"고 했다. 왜 영어를 함께 적었는지 아리송하다. 이전 정권에 슬쩍 책임을 미루는 '여전히'란 단어는 유치하다. 이번 통계 수치만 보면 '여전히'가 아니라 '문재인 정권 들어'가 정확하다. 정부 때문에 국민은 배고파진 것이다.
선우정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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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갈 데까지 가보자는 소득주도 성장
중앙일보 2018.11.28. 00:25
무리한 가정과 논리적 비약 섞여
원래 한국 경제에 안 맞는 가설
경제 갉아먹고 저소득층에 타격
일반인에겐 이런 행태가 생소할지 모른다. 하지만 소득주도 성장의 원전(原典)을 읽어보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 주변에서 이 개념을 입력시킨 인물들이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두 개의 글이 있다. 하나는 2012년 국제노동기구(ILO)에서 나온 ‘임금주도성장:개념, 이론, 정책’ 논문이고, 또 하나는 이 논문을 집필한 캐나다 오타와대 마크 라부아 교수가 쓴 『포스트 케인스학파 경제학 입문』이란 책이다.
다음은 소득주도 성장론자들에게 바이블이나 다름없는 이 책의 내용이다. “자유방임 자본주의는 파괴적 경쟁과 낭비를 초래한다.”(211쪽) 그래서 “국가가 시장을 규제해야 하고 총수요를 관리해야”(45쪽)하며 “지속적인 국가 개입만이 높은 완전고용 수준 근방에서 경제를 유지할 수 있게 한다”(168쪽).
이 책의 논리대로라면 문재인 정부가 노동개혁을 외면하고 귀족노조만 챙기는 건 당연하다.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고 주 52시간 노동을 강행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노동 구조개혁은 일자리 불안을 야기”(19쪽)하며 “강력한 노동조합이 존재해야 실질임금 하락을 차단해 전체 고용·생산·생활수준을 향상시킨다.”(168쪽) “일자리 나누기도 시간당 실질임금의 상승을 동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효 수요의 감소를 초래할 것이다.”(175쪽)
그렇다면 소득주도 성장이 정말 성공한다고 믿는 것일까. ILO 논문에서 눈여겨볼 점은 경제학 논문답지 않게 “~일 가능성이 크다” “~할 가능성이 높음을 암시한다” 등의 모호한 표현들이 넘쳐난다. 그만큼 무리한 가정과 논리적 비약이 뒤섞여 있는 가설이다. 임금 상승이 소비를 늘리고 경제를 성장시킬 것이라는 막연한 상관관계만 주장할 뿐 확실한 인과관계를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대목은 은근슬쩍 소득주도 성장의 실패 가능성까지 깔아 놓았다는 사실이다. 마크 교수의 책은 “개방경제에서는 실질임금 상승이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지 모른다”(200쪽)고 경고한다. 자칫 수출이 줄고 수입은 늘어나 소득이 해외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연금 등) 사회보장제도가 완비되지 않으면 소득이 올라도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릴 수 있다”(237쪽)고 지적했다. 이런 경고에 비춰 보면 한국은 경제 규모 대비 수출입 비중이 84%(미국은 26%)로 대표적인 개방경제에다 국민연금도 해마다 개혁 목소리가 나올 만큼 허약하다. 한마디로 한국에서 소득주도 성장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것을 알고도 생체실험을 강행한 셈이다.
소득주도 성장론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임금 인상이 총수요(소비)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만 강조할 뿐 총공급(고용·물가·경쟁력)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외면한다는 점이다. 임금은 소비의 원천이자 기업 입장에선 생산비용이다.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을 급등시키고 노동시간을 단축시키자 생산비용이 치솟으면서 총공급 부분에서 발작이 일어난 것도 이 때문이다. 고용·생산·소비지표가 일제히 곤두박질하고 단순·임시직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소득분배 지표도 나빠졌다. 결국 소득주도 성장은 “함께 잘살자”는 이상과 달리 없는 자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고 국가 경제 전체를 갉아먹고 있다.
경제에는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잘못된 방향으로 속도를 높이면 경제는 더 빨리 망가지게 된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다”며 퇴로를 차단해 버렸다. 청와대 주변에는 소득주도 성장의 실패를 인정하는 순간 자멸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퍼지고 있다. 자기들끼리 오기를 부리며 정책의 일관성으로 착각하는 분위기다. 이제 갈 데까지 가봐야 할 모양이다. 어느새 소득주도 성장이 이념주도 성장으로 변질되면서 마치 종교화되는 분위기다. 청와대가 “참고 기다리면 좋아질 것”이라고 막연한 주문만 외우며 오지 않을 메시아를 무작정 기다리는 게 아닌지 불길하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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