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탈원전, 우리도 국민의 뜻 물어야
중앙일보 2018.11.27. 00:22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국민의 뜻이 무엇인가를 놓고서다. 불씨는 한국원자력학회가 지폈다. 원자력학회는 지난주 ‘원전 비중을 확대 또는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67.9%’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갤럽이 성인 10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이었다. ‘축소’는 28.5%, ‘모름·무응답’ 3.6%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해관계자가 조사한 것”이라며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원자력학회는 “조사원이 의뢰처를 밝히지 않도록 했다”고 반박했다. 또 “탈원전 정책 여론조사를 가치 중립적인 기관에 맡겨 실시하자”고 제안했다. 정부는 아직 답하지 않고 있다. 돌이켜보면 정부는 공론화를 통해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를 결정한 뒤 탈원전 정책 전반에 대해 국민의 뜻을 물은 적이 없다. 국민 생활과 경제·산업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데도 그렇다. 심지어 공론화위가 지난해 9월 국민 2만 명을 대상으로 했던 설문 결과에도 눈을 질끈 감았다. 당시 ‘원전 확대·유지’가 44%, ‘축소’가 39.2%로 나왔다. 하지만 정부는 고집스레 탈원전을 밀어붙였다. 탈원전을 결정하기 위해 20년 넘게 국민 의견을 모은 독일이나, 다섯 번 국민투표를 한 스위스 등과 대비된다. ‘소통과 공감’을 중시하는 정부가 맞는지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대목이다. 전력수급은 2년마다 기본계획을 세우도록 법제화할 정도로 중요한 정책이다. 탈원전은 그런 전력수급의 근간을 흔드는 정책이다. 국민의 뜻을 물어 방향을 정해야 마땅하다. 그러지 않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탈원전을 추진했던 대만에서는 지난 주말 국민투표로 탈원전이 폐기됐다. 국민과 교감하지 않았던 정책은 역풍을 맞고 스러졌다. 한국 정부는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탈원전 밀어붙이기를 잠시 멈추고 공론화에 부쳐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다. ------------------------------------------------------------------------------------------------------------------------------------------------------
[광화문]체코원전 수주 가는 길
머니투데이 2018.11.27. 04:33
에너지는 언제나 에너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중동이 전쟁터가 돼온 핵심요인이 석유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에너지는 국가간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를 반영한다. 중국이 세계 제1의 원전대국이 되려는 것도 유사시 미국이 석유 등 에너지 수송로인 말라카해협을 봉쇄할 수도 있다고 보고 고도의 지정학적 판단을 한 것이다. 유가가 오를수록 외환보유액(달러)을 더 많이 소모해야 하는 문제도 걸려 있다. 최근 미국과 일본의 움직임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지난 13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일본 도쿄에 들러 원자력을 청정에너지로 규정하며 두 나라가 원자력 발전에서 협력하기로 한 것은 산업적인 수준을 뛰어넘는다. 미국이 수십 년 동안 원전을 짓지 않고 일본이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주춤한 사이 중국의 원전굴기와 러시아의 원전 육성은 속도를 냈다. 중국과 러시아 모두 원전수출을 시도하며 헤게머니를 쥐려는 걸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미국과 일본 모두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수주전에도 뛰어들며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했다. 이처럼 각국이 다양한 에너지에 집착하고 경쟁하는 것은 에너지를 통한 패권과 이익의 극대화라는 측면도 있지만 어떤 에너지도 완전하지 않다는 이유도 있다. 예컨대 원전의 대체재인 석탄과 LNG(액화천연가스)는 온실가스를 걱정해야 한다. 비 오는 날엔 태양광 발전을 돌릴 수 없고 바람이 불지 않으면 풍력발전이 멈춘다. 그래서 각국은 불완전한 것들로 완전한 조합을 만든다. 2016년 차이잉원 총통 당선 때부터 탈원전을 추진한 대만이 국민투표 결과 탈원전을 폐기한 것은 에너지믹스에서 하나를 섣불리 뺐을 때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난 탓이다. 대만의 원전비중은 2012년 16.1%에서 지난해 8.3%로 반토막났다. 화력발전 비중을 높이면서 석탄 비중이 같은 기간 48.5%에서 46.6%로 미미하게 떨어졌다. 가격의 오르내림이 큰 LNG도 대안은 아니었다. 태양광과 풍력으로 전력공급의 공백을 메우는 것도 역부족이었다. 국내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여름 전력공급 부족에 대한 불안은 결국 원전을 더 가동하면서 해소됐다. 원전의 빈자리를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지목된 석탄으로 마냥 채울 수 없었고 LNG는 한국전력의 적자요인이자 전기요금 인상요인임을 체험했다. 원전을 한국의 에너지믹스에서 빼놓을 수 없다고 할 때 중요한 것은 국내 원전산업의 생태계를 살려두는 것이다. 정부 말대로 60년 뒤에야 ‘원전 제로’가 된다면 그 기간에 원전의 안정과 안전을 위해 생태계를 망쳐서는 안 된다. 원전을 수입해서 쓰는 대만과 달리 우리는 세계 최정상급의 원전기술과 인력을 보유해 대만의 탈원전과는 차원이 다른 손실을 입는다. 2023년 신고리 6호기를 마지막으로 일감이 없어지는 원전산업의 생태계를 이어가는 것은 신한울3·4호기를 짓지 않는 한 수출밖에는 방법이 없다. 물론 원전수출을 추진한다고 다 된다는 보장은 없다. 수주가 가시화됐던 영국 원전 수출은 불확실해졌다. 일본 도시바가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사업을 하기 위해 세운 자회사 뉴젠 지분을 한전이 사려 했지만 도시바가 ‘뉴젠’을 청산하면서 일단 없던 일이 됐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지난 7월 1400MW(메가와트)급 2기 규모의 신규 원전 건설 예비사업자로 선정됐지만 미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과 경합해야 해 성사 여부를 가늠할 수 없다. 강기택 경제부장 acekang@ -----------------------------------------------------------------------------------------------------------------------------------------------------
[분수대] BTS 부러운 한국 원전
중앙일보 2018.11.27. 00:20
원전 역시 거대한 생태계 속에서 발전해 왔다. 이승만 정부 시절 실험용 원자로를 들여오고 한양대와 서울대에 원자력학과를 설치해 인재를 육성하는 데서부터 한국의 원전 생태계가 시작됐다. 나아가 한국은 기술 자립을 통해 한국형 원전 APR 1400을 상업용으로 개발해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하는 단계까지 왔다. 그 결과 세계 강대국에만 있는 원전 기술자 인재풀이 한국에도 구축돼 있다. 그런데 한국의 원전 생태계가 빠른 속도로 붕괴되고 있다. KAIST 원자력학과 지원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은 게 신호탄이었다. 멀쩡하게 돌아가던 원전도 가동을 중단시키고 2030년까지 원전 10기가 폐쇄되며 추가 원전은 건설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기술을 누가 배우려 하겠나. 현업에서도 기술인력이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원전을 설계하는 한국전력기술은 탈원전 여파로 담당 직원이 지난해 1062명에서 2030년에는 743명으로 줄어든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일감이 사라지자 해외로 빠져나가는 인력도 늘고 있다. 한국전력기술 핵심 직원 12명은 지난해부터 UAE 원전 관련 기업으로 이직했다. 원전 정비를 담당하는 한전KPS의 원전사업 인력도 2112명에서 2030년 1462명으로, 원전 운영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전 관련 국내 직원이 7012명에서 2030년엔 5008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더구나 해외 원전 인력은 해외 원전 수주에 실패할 경우 1467명에서 2030년 346명으로 쪼그라들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내일 체코를 찾아가 21조원 규모의 원전 세일즈에 나선다고 하는데 글쎄다. 내 자식 먹이지 않는 음식을 파는 격이니 그게 먹힐 수 있을까. 이 정부 들어 이미 영국·사우디아라비아로의 원전 수출이 다 틀어졌다. 탈원전 여파가 아닐 수 없다. 한번 파괴된 생태계는 복구가 어렵다. 무너져 내리는 원전 생태계는 그저 한류 생태계가 부러울 따름이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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