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8.11.26. 00:45
화가 난다는 민심 헤아려 나라 걱정 스트레스 덜어줘야
오후 경복궁에 눈 구경차 나들이 갔다가 매서운 날씨에 발길을 돌렸다. 충정로에 119 소방차들이 줄줄이 서서 화재를 진압 중이다. 우리 동네 KT의 통신구에 불이 났다. 온종일 집 TV는 먹통, 화면엔 올레TV 표시 문구만 장난치듯 현몰했다. 휴대폰은 명운이 갈렸다. 통신사가 KT인 나는 불통의 암흑 속에 갇혀 지냈다. SKT인 아내는 TV드라마를 틀어놓고 평상시처럼 울고 웃었다. 이것도 각자 운명, 복불복이니 하릴없었다. 세상 바뀌고 ‘갑질 똥별’이 되어 떨어진 별 넷 대장, 판사의 꽃으로 불리다가 변호사 대동하고 검사실로 출두하는 ‘똥꽃’ 대법관들보다야 낫지 않은가, 자위했다.
지난 며칠 본의 아니게 민정(民情·국민의 사정과 형편)을 탐문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페이스북 하느라 소홀히 한다는 그 임무다. ‘반문(反文·반문재인)’ 택시만 일부러 골라 탄 것도 아닌데 기사들은 십중팔구 화가 나 있었다. 요즘 어떻게 사시느냐고 묻기만 하면 나라 꼴이 왜 이러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통령 원망은 약과다. 무엄하게도(?) 욕설도 삼가질 않았다. 사납금 채우기도 힘든데 일주일에 52시간 이상은 일을 못 해 월급이 팍 줄었다면서다. 대기업 상무를 만났더니 최저임금 인상에다 끄떡도 하지 않는 전봇대 규제가 겹쳐 최악이라고 입에 거품을 문다. 안에서는 사사건건 때리고 윽박지르면서 평양에 갈 때는 왜 맨날 총수들을 대동해 북한 리선권에게서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 소리를 듣게 하느냐고 어이없어했다.
현장의 사람들은 거개가 화가 나 있었다. 어떤 이는 한국이 싫어진다고 했다. 멀쩡한 원전을 올스톱시키고 전국을 우후죽순 태양광 천국으로 만들었다고, 그게 이명박 정부 때 추진했던 4대강 사업과 뭐가 다르냐는 외침도 나왔다. 보수 정부 때 희망의 상실을 의미했던 ‘헬조선’의 2018년 판이 재출시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들 중 문재인 대통령을 찍었다는 어떤 이는 ‘통합’이라는 두 글자에 꽂혔다고 기억했다. 세월호 7시간으로 시작해 국정농단 사건으로 박근혜 정부가 송두리째 뿌리뽑혀진 후, 대한민국에 가장 필요한 게 분열된 민심의 통합인데 그걸 기치로 내걸어 표를 줬다는 거였다. 하지만 당선·취임 후 통합을 위한 노력은 없었다. 그 대신 국정농단의 적폐 세력 척결 2라운드가 개시됐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군·검찰의 폐족 잔당 처리를 마무리하고 대법원·헌법재판소에 코드 인사를 실현해 사법권력을 교체했다. 마지막 종착역으로 보이는 ‘사법 적폐’의 정점을 향해 진군하고 있다.
지금 아무도 통합을 말하지 않는다. 비핵화와 통일만 쫓고 있다. 그러는 사이 경제·외교·국방은 뒤뚱거린다. 사람들은 진보·보수의 이념을 사는 게 아니라 구체적 생활을 산다. 살림살이가 나아졌다면 적폐 청산을 하든, 통합을 말든 별 상관없을 것이다. 민주노총은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고 했다. 청와대라고 다른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무회의 때 장관들을 향해 쏘던 레이저 눈빛이나 문재인 대통령이 밑바닥의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이웨이’를 외치는 고집은 다른 듯 닮았다.
폭주하는 기관차의 독주는 늠름하다. 그러나 궤도를 이탈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진다. 전 정부가 무능했다면 현 정부는 무모하다는 비판이 있다. 국정 운영을 아마추어적으로 한다는 의미다. 뒤돌아보지 않는 권력은 위험하다. 나라가 국민을 걱정하고 삶의 질을 나아지게 해야지 5년 주기로 정권이 바뀌어도 나라 걱정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야 하면 어쩌란 건가. ‘어떤 이들’의 꿈이 전복되게 해서는 안 된다. 조선시대 왕처럼 변복이라도 하고 암행해 민심을 직접 대면해야 할 때다.
조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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