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훈 2018.11.27 기자 변지희 기자)
연초 평창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시작된 한반도 평화 무드는 판문점에서 진행된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싱가포르에서 진행된 미북정상회담, 그리고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얘기했다. 북핵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는 기대감이 커졌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연말이 다 되어가지만 가시적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교착 상태다. 지난 7일 개최 예정이던 미·북 고위급 회담은 연기됐다. 이후 미국이 수차례 북한에 대화를 제안했지만 북한은 묵묵부답이다. 출연하는 등 국론 분열도 심하다. 북핵 협상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나. 한미 동맹은 안전한가. 남북 관계가 지향해야 할 모습은 무엇인가. 6·12 미북정상회담 이후 시작한 두 번째 시리즈에 이어 ‘격동의 한반도-전문가 진단’ 세 번째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주] |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이 26일 서울 봉은사로 라마다서울호텔 1층 카페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변지희 기자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은 26일 "지금의 한미동맹은 동맹 70년 역사상 최악의 상태"라고 말했다.
김 전 원장은 이날 서울 봉은사로의 한 호텔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등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극 동참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점점 감소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전 원장은 "한미 동맹은 70년의 전통이 있는 오래된 동맹이어서 쉽게 파열음이 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상당한 요인들이 누적됐을 때엔 터져나올 수 있다. 현재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정도"라고 했다.
김 전 원장은 문재인정부 들어 시행된 국방개혁과 남북 군사합의에 대해서
"우리 군 뿐 아니라 국력을 약화시키는 조치가 입체적으로, 단시간 내에 우박 쏟아지듯 쏟아졌다"며 우려를 표했다.
그는 "현 정부 국방개혁은 무조건 군을 줄이고 없애는 축소지향적 목표를 정해놓고 꿰맞추려 한다"고 했다.
이어 "우리의 군사력은 단순히 북한만 염두에 두고 유지하는 게 아니다" 며"(국방개혁의 방향은)북한뿐 아니라
중국의 위협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남북 군사합의에 대해선 "9·19 군사합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조치"라며 "가장 심각한 부분은 두 가지다.
공중에서의 감시정찰, 조기경보 능력이 일방적으로 위축됐으며, 바다에서 NLL(북방한계선)이 사실상 무력화됐다"고 말했다.
그는 "(군사합의서엔)NLL 준수라는 표현이 어디에도 없고 오히려 상호간 경계는 군사위원회 열어서 협의한다고 돼 있다"며
"NLL이 없어진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선 "혼란스러운 모습"이라며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종합해보면 오바마 정부 시절의
‘전략적 인내’ 쪽으로 방향을 튼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전 원장은 "군사 행동을 하지 않고 기다린다는 측면에선
오바마 정부의 정책을 닮아가고 있지만, 제재 수단을 통해 압박을 강화하는 부분이 다르다"고 덧붙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연내 서울 방문에 대해선 "김정은의 조기 방문이 결정적인 분수령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엄청 이루고 싶어할 것"이라면서 "문제는 여건이 안되기 때문에 정부도 노심초사하고 아슬아슬함을 느낄 것"이라고 했다.
김 전 원장은 "김정은이 오고 난 뒤의 후유증이 더 무섭다"며 "김정은의 신변에 위협을 줘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칭송하는 것도 부적절하다.
김정은을 예우하긴 해야겠지만, 만약 칭송하는 단체가 나온다면 국론이 분열되고 무력충돌까지 벌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대화를 열심히 하는것 자체를 시비하는건 아니다"며
"다만 북한과 대화하더라도 대한민국 정체성과 안보를 지키는 것을 대전제로 둬야 한다"고 했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이 26일 서울 봉은사로 라마다서울호텔 1층 카페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변지희 기자
다음은 김 전 원장과의 일문일답.
-보수 진영에선 9·19 군사합의에 대해 많이 우려하는 듯 하다.
"9·19 군사합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조치들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우리 군 뿐 아니라 국력을 약화시키는 조치가 입체적으로, 단시간 내에 우박 쏟아지듯 쏟아졌다.
문재인 정부는 우선 국정원의 기능을 갈아치웠다.
통일부가 나서서 북측과 대화, 협력을 한다고 하더라도 국정원은 북측을 경계의 눈빛으로 지켜봐야 한다.
그런데 국정원이 앞장서서 무력화된 것과 마찬가지다. 기무사도 사실상 해체됐다.
기무사가 정치에 개입하고 법을 어긴 부분에 대해 처벌하는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무사 자체를 흔들면 안된다.
대북 정보를 수집하고 사상을 검증하는 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북한은 보위사령부가 시퍼렇게 눈뜨고 있다. 당에서는 당 조직지도부가 이런 역할을 한다.
3중, 4중의 체제단속을 한다. 그런데 우리는 군에서 더이상 주적이라는 개념을 못쓰게 했다. 안보교육마저 중단됐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 나온게 국방개혁 2.0과 9·19 군사합의다.
경제에선 반시장정책을 펴고 있다. 국가정체성을 허물려는 시도를 하는게 아니냐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
-9·19 군사합의서에서 가장 문제가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9·19 군사합의의 내용은 우리 군이 일방적으로 불리하다. 군사합의서엔 지상과 공중, 바다, 한강하구,
철원 등 5개 지역에 대한 합의가 들어갔다. 가장 심각한 부분은 두 가지다.
공중에서의 감시정찰, 조기경보 능력이 일방적으로 위축됐다는 점과 바다에서 NLL이 사실상 무력화됐다는 점이다.
서해가 무력화된다는 것은 결국 수도권에 대한 압박으로 돌아온다.
GP철수도 심각하지만 굳이 경중을 따지자면 이 두 가지가 가장 심각하다.
군사합의서에선 공중에서의 공격자와 방위자를 구분하지 않았다.
우리는 북한을 공격하거나 도발하는 입장이 아니라 항상 막는 입장이었다. 문서상으로는 쌍방이 감시정찰을 금지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방어자의 눈과 귀를 막은 것이다. 북한은 공격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감시정찰 장비가 없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다는거다. 심지어 이 조항은 한미간 문제도 야기했다.
공중정찰 활동 금지조항과 관련해 미국이 이에 적용받겠다는 말을 아직까지도 안했다.
바다에선 평화수역을 정하기로 했는데 ‘현 경계선을 준수한다’는 말 한마디만 있었어도 그나마 이해할 수 있었을 거다.
그런데 NLL 준수라는 표현이 어디에도 없고 오히려 상호간 경계는 군사위원회를 열어 협의한다고 돼 있다.
NLL이 없어진 것과 마찬가지다. 또 그 바다와 인접한 한강하구는 지금까지 민간인 통제수역이었는데 민간활동이
개방되면 북한군이 민간인으로 가장해 얼마든지 드나들 수 있게 된다. NLL이 무력화되면 수도권이 취약해져서 인천공항,
인천항구가 모두 압박받게 된다. 서해 5개도서가 무력화된다는 문제도 있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수도권이다.
대한민국 국력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있는 상황 아닌가."
-국방개혁 2.0은 어떤 점이 잘못됐나?
"출발부터가 잘못됐다. 본래 국방개혁은 군대를 줄이고 빼는게 목적이 아니다. 낭비를 없애자는 게 목표다.
국민이 주는 예산에서 최대한의 전투력과 국방력을 발휘할 수 있는 효율성, 효과성을 찾아가는게 국방개혁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현 정부의 국방개혁은 무조건 군을 줄이고 없애는 축소지향적인 목표를 정해놓고 여기에 꿰맞추려고 하고 있다.
이는 국방개혁을 국방, 군사논리로 하지 않고 정치외교논리로 본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좋은 여건을 만들겠다는건 북한을 의식한 국방개혁이고 군사원칙, 국방원칙을 위배한거다.
국방원칙은 아주 간단하다. 당면한 위협이 있을때 이에 대비하고, 미래에 다가올 위협도 대비하고, 연습을 통해 임전태세를
유지하는거다. 연합사에 가면 ‘파잇 투나잇 스피릿(Fight tonight spirit)’이라는 말이 붙어 있다.
즉, 오늘 밤 당장이라도 싸울 수 있는 정신을 뜻한다. 군은 그런 정신이 생명이다.
그런데 북한은 핵 폐기를 하지도 않았고, 화학무기와 생화학무기를 폐기한다는 말도 안했다.
핵을 폐기한다고 쳐도, 앞으로 민주국가가 되겠다, 도발하지 않겠다고 한 것도 아니다.
그 상태에서 우리가 왜 군사력을 줄여야되나. 첨단무기, 민간인력 이용, 전문하사관을 증원해 군 복무기간 단축에 따른
숙련도 부족을 보완하겠다 했는데 예산 부족 때문에 현실성 없는 얘기다.
복무기간 단축을 상쇄할만큼 첨단무기 가져온다고 하는 건 립서비스다.
우리의 1년 국방예산은 43조인데 정말 괜찮은 핵잠수함 한 척을 만들려면 5조원 이상이 필요하다."
-현재의 국방개혁안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말인가?
"뿐만 아니라 국방개혁 2.0은 남북관계 개선에만 연연해 미래에 대비하지 않았다.
북한 뿐 아니라 중국의 위협도 생각해야 한다. 중국이 우리에게 이미 가하고 있는 당면 위협은 어마어마하다.
중국은 서해를 내해(內海)화 하고 있다. 중국 함정들이 우리 해역으로 넘어와서 작전을 하기도 한다.
중국 비행기들은 방공식별구역에 정기적으로 침범해 이를 무력화하려 한다. 이어도도 자기 관할해역이라고 하고 있다.
오염물질을 방출하고 미세먼지까지 날려보내면서 사과도 안한다.
하지만 중국이 우리에게 영향을 많이 미치기 때문에 우리도 중국과 우호관계를 만들기 위해 자중하고 있는거다.
하지만 이런식으로 중국이 계속 팽창정책을 편다면, 통일 이후 중국의 위협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우리의 군사력은 단순히 북한만 생각해 유지하는 게 아니다. 탈원전 정책도 문제다.
경제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말이 안되는 정책이다. 한국도 핵 잠재력을 키워야 하는데, 그 이유는 북한 뿐 아니라
중국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20~30년 후에 대한민국이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많은 전문가들이 걱정한다."
조선일보DB
-최근 ‘안보를 걱정하는 예비역 장성 모임’에서 발제를 맡았다. 앞으로 이 모임은 어떻게 활동하나?
"며칠 전 토론회를 했을 때, 예비역 군인들이 자기 연금의 1%씩 내서 이 단체를 활동하고 키우는게 어떻게냐는 의견을 모았다.
송대성 전 세종연구소장이 실무진을 지휘하고 있는데, 송 전 소장이 마지막에 청중을 향해 ‘연금 1% 낼 용의가 있는 사람은
손 들라’고 하니 600여석의 객석에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 손을 들었다. 그냥 넘어가야할지 아니면 조직을 만들고
지휘부를 만들어서 제대로된 활동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토론회 당일 좌파 단체들의 항의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최근 진보 진영의 행보를 어떻게 보나?
김정은의 방남을 열렬히 환영하는 ‘백두칭송위원회’라는 단체까지 결성됐다.
"이건 보수·진보의 대결이 아니라 좌우 대결이다. 우익은 나라를 지키고 싶은 것이고, 좌익은 체제를 흔들고 싶은 거다.
진보 집단 안에는 순수한 진보와 좌파가 섞여 있다. 일반 국민은 구분하지 않고 모두 진보라고 하는데 엄청 왜곡돼 있다.
좌파가 당론 전쟁에서 완전히 승리한 결과다. 반대로 이익만 추구하는 수구집단까지 보수라고 하기도 한다.
정치쪽에서는 태극기 세력을 모두 수구 세력으로 보는데, 그 안에도 여러개 파가 나뉘어 있다.
지금은 각론에서 차이가 있더라도 정체성과 안보를 지킨다는 면에서 보수와 진보가 힘을 합쳐야 한다.
보수 안에서도 힘이 합쳐지지 않는 게 문제다. 보수정당의 역할을 야당이 해야 하는데, 여전히 자신들의 관록과
정치적인 입지를 유지하기에만 연연한다. 정말 치가 떨리는 현상이다."
-올초부터 ‘평화 공세’가 계속됐다. 지난 3월과 지금을 비교할 때,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된 부분이 있나?
"말 몇마디 나온게 전부다. 동창리 발사장에서 엔진시험소와 발사대 해체를 하겠다고 했는데,
제가 38노스 사진들을 계속 확인하고 있지만 8월 이후로 진전된게 없다. 벽체를 뜯어서 옆에 놓았고,
그게 몇달째 가고 있다. 영변 핵시설의 경우 미국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준다면 해체하겠다는 조건을 달았고,
풍계리 핵실험장은 입구만 파괴한거지 핵실험장을 정말 폭파했는지 아닌지 아무도 진실을 모른다."
-미국이 요즘 북한을 대하는 태도를 어떻게 평가하나?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하지만 바깥으로 드러나는 것을 종합해보면 오바마 정부 시절 ‘전략적 인내’ 쪽으로 방향을 튼 것 같다.
현 상황에서 북한에 대해 군사 조치를 취할 수 없다면 전략적 인내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것 아닐까 싶다.
다만 차이가 있는 것은 오바마 정부 때보다는 더 선명하고 강력한 제재를 만들어가고 있다는거다. 다시 말해, 군사 행동을
하지 않고 기다린다는 측면에선 오바마 정부의 정책을 닮아가고 있지만, 제재 수단을 통해 압박을 강화하는 부분은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이나 말 바꾸는 모습에 대해서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한미연합훈련만 해도 김정은을 만난 뒤 바로 없애겠다고 했다. 우리는 이를 보며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 정책을 상업주의로
접근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우리로서는 대처하고 극복해야될 과제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 대해 사랑에 빠졌다고도 하고, 시간은 많다, 서두를 필요 없다는 느긋한 얘기를 하기도 했다.
이런 모습들이 정말 트럼프 대통령이 상황을 잘 몰라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초강대국 대통령으로서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기대도 한다.
김정은과 친하다는 관계를 강조하면서 자기 말을 잘 듣게 하려는 속셈일수도 있다. 미국 세계전략의 중심은 중국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인데, 북한을 중국에서 떼내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마치 베트남처럼 하려는 속셈일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정책과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폼페이오 장관도 공개적으로 이야기를 했는데 이런식으로 가다 충돌이 발생하는 건 아닌가.
"한미 동맹은 70년의 전통이 있는 오래된 동맹이어서 쉽게 파열음이 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상당한 요인들이 누적됐을 때 터져나올 수 있다. 현재까진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정도인 것 같다."
-부글부글 끓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을 설명하자면?
미국쪽에서 나타나는 증거는 폼페이오 장관 같은 관료들이 한국 정부에 경고를 보내고 있고, 경제쪽에서 한국 기업들에
경고음 보내고 있다. 미국 국민 여론도 좋지 않다. ‘이런 대한민국을 우리가 지켜줄 필요가 있느냐’는 식의 여론이 많아졌다.
북한으로선 동맹 흔들기가 성공한 셈이다. 작년에 북한이 미국과 한판 붙을 수 있다는 듯 말싸움을 한건 정말 핵 전쟁을
하겠다는게 아니라 계산된 광기 게임이었다. 즉 북한이 미국과 핵 전쟁할 역량이 있는게 아니라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
공갈 협박을 해서 미국 여론을 흔들었다. 작년에 수차례 그런 일이 있으면서 미국 국민들이 정부를 향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선 맥아더 장군 동상을 불지르지 못해서 난리인데, 이런 동맹국을 지켜주기 위해 우리가 북한의 핵 공격 위협까지
무릅써야 하냐?’고. 아직 한미간 갈등이 표면화는 안됐지만 부글부글 끓고 있는 상황이다. 이대로 가면 위기가 오게 돼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오른쪽) 미 국무장관이 지난 7월 평양에서 미·북 고위급 회담을 가진 뒤
귀국하기 전 평양 국제비행장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AP연합뉴스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갈 것으로 보나?
"미국은 일단 상당 기간 인내할 것 같다.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약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중요하다.
미국이 동맹을 맺어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한 대표적인 사례가 대한민국이다. 쉽게 파열음을 낼거라고 보는건 성급하다.
하지만 현재 한미동맹이 70년 동맹 역사상 최악인 것은 분명하다.
문재인 정부가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 이념적 성향이 비슷하다. 하지만 정도는 달랐다.
노 전 대통령의 지지세력은 탈미파, 자주파였지만 FTA를 추진해 서명하기도 했고, 해외에 파병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작심하고 한쪽으로만 간다."
-한미 동맹이 약화됐다는 근거는 어떤 것들이 있나?
"동맹의 건강성을 평가할 때 사용하는 기준들이 몇 가지 있다.
미국 입장에서 한국이 얼마나 전략적인 가치가 있는지, 한국 정부와 미국정부간 이념적 상응성은 어떤지,
한국을 동맹국으로 상대하는게 미국 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한국이 방위비분담금 등 미군을 위해 국방비를
얼마나 쓰는지, 미국이 하는 전쟁에 얼마나 희생적으로 참전하는지 등이다.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본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극 동참하고,
호주까지 동참하고 있는데 한국은 어떤가. 전략적 가치가 점점 감소하는 상황이다. 이념적 상응성도 심각하다.
미국 사람들은 한국과 미국이 그동안 동맹국으로 공조하면서 북한이라는 세력에 대항해 왔는데 어느날 눈을 떠보니
남북이 공조해서 미국을 상대하고 있다. 주적이 있느냐 없느냐도 동맹의 필수조건 중 하나인데,
한국에서 북한을 주적으로 보지 않으려고 한다. 미국 입장에선 우리가 왜 한국과 동맹이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한국의 경제적 가치도 여전히 있지만 중요한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할거다. 한국은 GDP의 2.5%를 국방비로 쓰고 있는데,
이스라엘은 5%를 쓰고 있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이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하는거다.
이런 것들로 미루어 볼때 한미동맹의 건강성은 급속도로 나빠진게 맞다. 하지만 아직 절망할 정도는 아니다."
-미국이 구상했던 한미일 삼각동맹은 무산된건가?
"미국이 여러차례 요구를 했겠지만 지금은 포기상태라고 본다. 이는 이념적 상응성 문제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의 안보 기조는 우파적 정통주의에서 이탈해 좌파적 수정주의로 가고 있다.
정통주의 접근은 미국과 협력하고, 북한과 중국 위협을 극복하고, 일본과 러시아를 활용하는 전략이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번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 통하고, 미국에서 벗어나고, 중국을 가까이 하면서, 반일 정서를 키우고 있다.
그 그림 속에서 한미일 삼각 공조가 가능할 수 없다."
-정부가 김정은을 연내 국내에 꼭 데려오고 싶어하는 것 같다.
"김정은의 조기 방문이 결정적인 분수령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엄청 이루고 싶어할 거다.
문제는 여건이 안되기 때문에 정부로서도 노심초사하고 아슬아슬함을 느낄 것 같다.
핵문제와 관련해 국민들이 박수칠 수 있는 비핵화의 구체적인 조치를 약속한 것도 없는데 지금 오면 어떡하겠나.
핵문제 진전에 대해 요구할 사항이 많을거다. 핵문제 뿐이 아니다.
6·25 전쟁 도발에 대해 입장을 밝히길 원하는 사람들도 많을거다. 6·25 때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나.
북한은 우리측에 2만여명을 돌려보내고 더는 국군 포로가 없다고 했었다. 하지만 우리 통계에선 8만명이 넘었다.
그 사이 값에서 에누리 한다고 해도 적어도 4만명 이상의 국군포로들이 북한 땅에서 돌아가셨을거다.
이런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밝히기를 요구한다면 북한 입장에선 얼마나 까칠한 이슈가 되겠나.
김정은 답방은 간단치 않은 문제다. 변칙적인 방법으로 서울 대신 한라산에 김정은을 데려갈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그런데 김정은이 오고 난 뒤 후유증이 더 무섭다.
좌파 단체들이 김정은을 환영할텐데, 김정은 신변에 위협을 줘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칭송하는 것도 부적절하다.
김정은을 예우하긴 해야겠지만, 만약 칭송하는 단체들이 나온다면 국론이 분열되고 무력충돌까지 벌어질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18일 바티칸 교황청을 방문, 집무실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연합뉴스
-문 대통령이 교황청을 방문해 교황에 북한 방문을 요청한 건 어떻게 보나.
"우리 정부가 운전자 역할, 중재자 역할을 너무 지나치게 드러내고 있다. 조금은 자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대통령이 바티칸에서 가서 교황에게 북한을 방문해달라고 권고한건데,
이 부분은 우리 정부가 좀 더 심사숙고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황은 선교 이외의 목적으로 해외에 나가지 않는다.
그런데 북한은 종교가 없는 나라다. 교황이 어떻게 북한에 그냥 가나. 북한 스스로 입장을 밝혀야 되는 상황이 오는 거다.
6·25 전후로 북한에서 수많은 목사님들, 신부님들, 수녀님들이 처형당했다.
밤중에 끌려나가서 납치되기도 하고, 행방불명이 되기도 하고 옥사에서 처형을 당하기도 했다. 점령지에서도 그랬다.
이런 문제에 대해 북한 스스로가 잘못했다는 입장을 밝혀야 하는데 그런 게 하나도 안됐다.
그런 상태에서 교황에게 북한에 가보라고 한 건 좀 더 신중했어야 한다."
-끝으로 대북 정책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에 고언하자면?
"나는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대화를 열심히 하는것 자체를 시비하는건 아니다.
다만 북한과 대화하더라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고 안보를 지키는 것은 대전제로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대전제로 하고 북한과 협력하는거다.
정체성을 양보하고 안보를 허물고 이를 대가로 화해와 협력을 얻어내겠다는 접근은 안된다.
남북간 화해협력과 안보는 같이 번영하는 거다. 안보는 구걸하는 대상이 아니다. 지켜내야 한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 동시통역사로 활동하다 핵문제의 중요성을 깨닫고, 뉴욕주립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를 취득했다. 귀국 후 한국국방연구원(KIDA)에서 활동하던 1990년대 초 ‘핵주권론’을 얘기했다. 이는 노태우정부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과 배치된 주장이었다. 결국 그는 이 일로 국방연구원을 떠나게 됐다. 이후 국제평화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국방정책연구실 국방정책연구원, 국방현안연구위원장을 지내다 2011년 이명박정부에서 통일연구원장으로 임명됐다. 현재 건양대학교 군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격동의 한반도-전문가 진단 3부①]김태우 "한미동맹 70년 역사상 최악… 부글부글 끓다 터질 수 있다" (2018.11.27) [격동의 한반도-전문가 진단 3부②] 박휘락 "文정부, 막연하게 北 믿고 안보 해체중" (2018. 12. 4 ) [격동의 한반도-전문가 진단 3부③] 송대성 "올해는 '안보참사의 해'…간첩 오라고 길 열어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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