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미술관에 갔어요 [76] 나의 집 '명화를 만나다: 한국근현대회화 100선 展'

바람아님 2013. 12. 5. 10:49


(출처-조선일보 2013.12.05 이주은교수·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가족이 그리워 그린 집

햇빛 잘 들어 그림자마저 맑은 파란색… 포근함 느껴지는 오지호의 '남향집'
유학시절, 한국의 집을 떠올리며 가족사진 모아 그린 배운성의 '가족도'
모두 가족에 대한 그리움 표현했죠

왜 인간은 혼자 사는 대신 가족이라는 작은 단위를 만들어 함께 모여 살게 되었을까요? 가족은 원래부터 있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것에도 틀림없이 유래가 있을 거예요. 학자들은 불을 사용하게 되면서부터 사람들이 그 주변에 모이게 되었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추위와 짐승을 피해 불을 피웠고, 불에 몸을 녹이고, 그 불 위에 사냥해 온 고기를 구워 함께 먹으면서 정이 든 것이지요. 한 아궁이를 쓰게 되고, 함께 먹고, 함께 자고, 그러다 보니 점점 서로 걱정하고 기다리는 마음이 싹트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같이 살자고, 혹시 헤어지더라도 꼭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했을 것 같아요. 불 옆은 따스해요. 그래서 가족은 따스함을 함께 나누는 집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멀리 떠나 있어도 따스함이 그리워 다시 돌아오는 곳, 그곳이 바로 집이랍니다.

따스한 집을 보여드릴게요. 작품1화가 오지호가 그린 자기 고향집 모습입니다. 남쪽을 향해 지은 집에는 햇빛이 잘 들어서 온종일 환하고 따스하지요. 지붕과 담장에 드리워진 나무의 그림자마저 잿빛이 아니라 투명한 파란색이네요. 햇살이 눈부신데다가 하늘도 쾌청해서 그림자까지 파랗게 보였나 봐요. 집에서 기르는 멍멍이도 따사로운 햇볕 아래 졸고 있어요. 빨간 옷을 입은 여자 아이가 개밥을 주려나 봅니다. 손에 밥그릇을 들고 문에서 나오려는 중이에요. 곧 멍멍이가 꼬리를 치며 반기겠지요? 오지호에게 집은 나른한 오후의 행복을 말하는군요.

▲ 작품1 - 오지호,‘ 남향집’, 1939, 캔버스에유화채색. 

작품2 - 배운성,‘ 가족도’, 1930~35, 캔버스에 유화 채색. 

작품3 - 이성자,‘ 오작교’, 1965, 캔버스에 유화 채색.


여러분에게 집은 무슨 의미인가요? 집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휴식할 수 있는 보금자리이기도 해요. 
그래서 집은 아무리 늦어도 꼭 돌아가야만 하는 곳이랍니다. 
아버지를 생각해보세요. 야근이나 늦은 모임이 끝나고 나오면, 어느새 하늘에는 진눈깨비가 날리고 뺨이 떨어져 나갈 듯 
바람이 차요. 그 맹추위를 뚫고 몇 번이나 미끄러질 위기를 넘기면서 발걸음을 재촉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건 집이지요. 
집은 험하고 추운 '밖'과 대립하는 포근하고 아늑한 '안'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엔 집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작품2(각주-다른글)를 보세요. 대문을 슬며시 열어보니, 대청마루와 앞마당에 열일곱이나 되는 식구들이 나와 있어요. 
막 가족사진을 찍으려는 걸까요? 엄마를 조르는 한 아이만 빼고는 모두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어요. 
가운데에서 할머니가 손녀를 안았고, 그 주위에 아들 부부와 아이들, 삼촌과 고모, 그리고 멍멍이도 보여요. 
이런 집에서는 자신의 역사가 한눈에 보이게 마련이지요. 
요즘엔 저마다 직업이 다르고 사는 방식도 다양해서 조부모, 부부, 자녀의 3세대가 한집에 살기는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 배운성은 서울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마친 후, 일본으로 가서 경제학을 공부했어요. 
그리고 더 공부하기 위해 유럽으로 갔다가 그곳의 눈부신 예술에 매혹되어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지요. 
'가족도'는 그가 독일에서 대학을 다니며 미술공부를 하던 시절에 한국에 있는 가족을 떠올리며 그린 작품입니다. 
가족을 한곳에 모아놓고 그린 것이 아니라, 유학 갈 때 넣어서 갔던 가족들 개개의 사진을 합해서 그렸다는군요. 
맨 왼쪽에 서 있는 남자가 화가 자신이랍니다. 
독일 집에서는 쓸쓸하게 홀로 지내야 했지만, 그림 속의 집에서는 꽉 찬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으니 외롭지 않았겠지요?

화가 이성자 역시 프랑스에서 살면서, 어쩔 수 없이 한국에 두고 온 아이들을 몹시도 그리워했습니다. 
작품3을 보세요. 그리움의 씨앗을 뿌리듯 촘촘하게 점으로 찍은 이 작품의 제목은 '오작교'예요. 
서로 떨어져 애달픈 연인, 견우와 직녀를 만나게 해주려고 까마귀들이 모여 하늘에 다리를 놓아주었다는, 전설에 나오는 
다리랍니다. 지금도 하늘 위에 견우별과 직녀별이 있고, 그 사이를 가끔 은하수가 이어준다고 해요. 
하늘 위에 놓인 길과 다리를 보세요. 이 길들 덕분에 이성자가 살던 파리의 하늘은 아이들이 살던 한국의 하늘과 이어져 
있었을 거예요.

어느덧 손이 꽁꽁, 겨울이에요. 가족이 곁에 있고 날마다 돌아갈 따스한 집이 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지,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겠어요.

[함께 해봐요]
엄마·아빠·동생·나, 여러분의 가족사진을 꺼내어 그림으로 그려 보세요. 여러분의 집을 그림이나 사진으로 표현한다면 
어디를 담고 싶은지 이야기를 나눠 보세요. 방이나 현관, 마당을 그려 보세요.

<큰이미지>

작품2 - 배운성,‘ 가족도’, 1930~35, 캔버스에 유화 채색


작품3 - 이성자,‘ 오작교’, 1965, 캔버스에 유화 채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