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歷史·文化遺産

[이한상의 발굴 이야기] [59] 낙동강변의 신라 제련소

바람아님 2019. 1. 26. 19:47

(조선일보 2019.01.23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송풍관, 사촌 제철 유적, 국립김해박물관.송풍관, 사촌 제철 유적, 국립김해박물관.
 

1998년 12월 7일 국립김해박물관 손명조 실장과 윤태영 학예사는 제철 유적을 찾으러

밀양으로 향했다. 경주 황성동 제철 유적 발굴에 참여하였던 손 실장은 조선시대

이래 철광산이 운영된 밀양에도 삼국시대 제철 유적이 존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열흘이 다 되도록 밀양강 지류와 산골짜기 곳곳을 세밀하게 살폈으나 제철 유적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11일째 되던 날에는 밀양시 중심부를 온종일 조사했지만 소득이 없었다. 조사를 마무리하기로 하는 순간 수석 하나가

손 실장의 눈에 스치듯 들어왔다. 다가서서 자세히 보니 제철 과정에서 나온 쇠찌끼(쇠똥·鐵滓)로 만든 것이었다.

주인에게 어디서 구했는지 물으니 '사촌마을 똥뫼'라 일러줬다.


'똥뫼'라 불리는 곳에 다다랐을 때 해는 이미 서산에 걸려 있었다. 마을 어귀의 감나무 밭인 그곳엔 쇠찌끼가 산처럼 쌓여

있었고 가마에 산소를 공급할 때 쓰인 송풍관(送風管) 조각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광경에 두 사람은 감격했다. 왜 동네 사람들이 그곳을 '똥뫼'라 불렀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1999년 겨울과 그 이듬해 봄에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유적 전체를 조사할 수 없었기에 좁고 긴 도랑을 파 제철 시설을

확인하기로 했다. 쇠찌끼가 대부분인 겉흙을 제거하자 높은 열로 광석에 함유된 철을 뽑아내던 제련로(製鍊爐) 7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련로 가운데 일부는 온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주변에선 6~7세기 신라 토기와 함께 쇠집게, 제사에 쓰인 소형 토기 등이 나왔다.

이어진   지표조사에서 여러 곳의 제철 유적을 더 찾아냈다.

손 실장은 '낙동강변의 제철 단지는 6세기 이후 신라 중앙이 직접 운영한 것으로, 그곳에서 산출된 다량의 철은 낙동강의

수운을 통해 각지로 공급되었을 것'이라 밝혔다. 사촌마을 '똥뫼'에 자리한 제철 유적은 바로 '덕업일신(德業一新)

망라사방(網羅四方)'의 포부를 실현하던 신라의 든든한 버팀목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