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는 수만 명으로 추정되는 도둑 후보들이 득실거린다. 각종 공사가 진행되면서 지방에서 공사인력으로 차출된 군인들과 돌격대다. 이들은 평양에 들어와 천막을 치고 사는데 밤만 되면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거리를 배회한다. 아파트에 폐쇄회로(CC)TV가 있는 것도 아니고, 늘 정전이라 암흑 속에서 살다 보니 도둑질하기에 십상이다.
게다가 평양에선 일반적으로 도둑질에 대해 처벌이 경미하다. 지방에서 강제로 끌려온 군인들이 배가 고파 훔쳐 먹었다고 하면 처벌하기도 애매하다. 이런 것까지 감옥에 보내면 감옥이 넘쳐날 수밖에 없다. 군대에서 쫓아내면 너도나도 도둑질에 나설 것이다. 그냥 부대에 통보해 정치적 처벌을 요구하는 수밖에 없는데, 부대에 돌아가면 다 같은 처지라 “바보처럼 들켰느냐”는 비웃음을 받는 정도에 그친다.
결국 자기 집을 지키는 책임은 평양 사람들의 몫이다. 서울처럼 치안이 발달한 도시에서도 방범창이 없으면 불안한데 평양은 오죽하겠는가. 남쪽에선 방범창이 없어도 베란다 창문만 잘 잠그면 된다. 하지만 평양은 베란다에 창문을 설치하는 게 금지돼 있다. 김정일의 ‘유훈’ 때문이다. 평양 사진을 보면 대다수 베란다가 휑한 것도 이런 이유다. 창문을 막으면 난방 효과도 있고, 베란다를 창고로 쓸 수 있지만 평양에선 안 된다.
평양 베란다의 수난사는 제법 길다. 15년 전쯤 갑자기 모든 베란다를 다 막으라는 지시가 떨어진 적도 있다. 당시 사람들은 “갑자기 웬 인민을 위한 지시냐”며 감지덕지한 마음에 급히 창문을 막았다. 누구는 유리로, 누구는 비닐로 막았다.
그런데 제각각 창문이 보기 싫었는지 2011년 남포의 대안친선유리공장에서 생산된 유리를 팔 테니 그것으로 막으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능력이 안 되면 당장 단층집으로 이사 가라는 협박까지 나왔다. 주어진 며칠 안에 평양시민들은 유리를 사야 했고, 대안공장 유리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당시 집안의 가보인 TV를 팔아 유리를 산 집도 많다.
지시대로 유리를 설치한 지 며칠도 지나지 않아 이번엔 무조건 당일로 베란다 창문을 모두 떼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때 평양의 민심은 부글부글 끓었다. 당의 방침이니 대놓고 항의할 수도 없어 베란다 유리를 망치로 사정없이 깨뜨린 사람도 여럿이었다. 베란다 유리를 뗐다 붙였다 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사람들이 추락사하기도 했다.
지시가 오락가락한 이유는 단순했다. 베란다 창문 설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던 시점에 공장 시찰을 나갔던 김정일이 “토끼장처럼 보이니 다 떼라. 외국인들이 평양에 와보고 얼마나 비웃겠느냐”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단층집으로 내쫓는다는 협박에 급히 창문을 설치하다 보니 누구는 통유리로, 누구는 값싼 작은 유리로 조각조각 막아야 했다. 창틀에 대한 규정도 없어 누구는 알루미늄 틀을 쓰고, 누구는 나무로 급히 만들어야 했다. 그 결과 토끼장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베란다 창틀 철거 지시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다만 김정은 시대엔 통일된 창을 설치할 수 있는 대로변 아파트에만 베란다 창문이 허용됐다. 이건 돈 많은 사람들만 베란다에 창문을 달 수 있다는 뜻이다.
평양은 또 한 번 춥고 어두운 긴 겨울을 이겨냈다. 반짝 좋아진 듯했던 평양의 전기 사정은 지난해 초겨울에 접어들며 또다시 악화돼 몇 시간밖에 불이 들어오지 않을 정도다. 재작년 보안성이 몰래 중국에서 밀수해 온 10만 kW 발전기 2대가 다시 고장 났을 가능성이 크다.
외국인을 의식해 방범창까지 떼어낸 평양을 뒤로 하고 김정은은 이달 말 베트남에 날아가 역사적 북-미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김정은이 이번 기회에 전 세계의 시선을 제대로 의식하길 바란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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