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2.22 안용현 논설위원)
2013년 12월 장성택이 처형된 뒤 측근이었던 북 외교관 부부가 베이징공항을 통해 소환되는 장면을 봤다.
체포조로 보이는 남성 두 명에게 팔을 붙잡힌 채 출국장을 빠져나갔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따로 없었다.
평양에서 맞을 운명이 뻔한데도 도망가지 못하는 건 대개 피붙이 때문이다.
한 탈북 외교관은 "생때같은 자식이 평양에 인질로 있는데 어찌 부모만 살자고 달아나느냐. 죽어도 같이 죽자는
심정일 것"이라고 했다.
▶십 여년 전 아프리카 주재 북 외교관은 한류에 빠진 아들이 먼저 한국 공관으로 탈출했다.
"아빠, 저 서울 갈래요"라는 전화를 받은 외교관은 급히 아내와 함께 아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와 함께 망명 신청을 했다.
1997년 장승길 이집트 대사도 자유분방했던 차남이 서방으로 탈출한 뒤 미국 망명을 결심했다고 한다.
북한 밖 사정을 알게 된 자녀가 평양에서 '말실수'를 할까 봐 귀국 직후 일부러 정신병원부터 보내는 부모도 있다.
그래야 "원수님(김정은)이 함부로 사람을 죽인다던데…"라는 소리를 해도 목숨은 부지할 것으로 믿는다니 기가 막힌다.
▶"강제 송환 정보를 듣고부터 망명까지 7시간밖에 없었다"는 외교관도 있다.
어느 날 다른 공관에 있는 대학 친구로부터 "손님이 가니 극진히 모시라"는 전화를 받았다.
'너 잡으러 가니 달아나라'는 암호였다. 평양에 잡혀 있는 자식과 해외에 데리고 있는 자식을 놓고 애끊는 고통 속에
몇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는 체포조 도착 직전에 정신없이 빠져나오느라 평양 자식의 사진 한 장 챙기지 못했다.
그 얘기만 나오면 지금도 눈물을 떨군다.
▶작년 11월 조성길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가 잠적한 지 나흘 만에 딸이 북송됐다고 이탈리아 외교부가 어제 밝혔다.
자세한 사연은 알 수 없지만 탈출 계획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이탈리아 측은 "(이번 일에 대해) 책임 있는 사람들이 대가를 치러야 할 것"
"그의 딸은 세계 최악 정권 중 하나로부터 고문을 당할 위기"라고 말했다.
반면 북은 "조 대사 부부가 장애가 있는 딸을 포기한 것"이라는 말을 흘리고 있다.
세상에 어떤 부모가 자식을 포기할까.
▶북을 탈출한 외교관들 얘기는 어떤 스파이 영화보다 더 위급했던 사연을 담고 있다.
그러다 헤어지게 되면 북에 붙들린 가족은 처참한 운명을 맞는다.
조 대사의 딸은 열일곱 살인데 혼자 북송됐으니 부모는 평생 피눈물을 쏟을 것이다.
저 지옥엔 언제쯤 해가 비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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