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3.11.14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 관장)
단축법(사전보기-短縮法,scorcio,raccourci) 개발한 화가 안드레아 만테냐
예수의 시신 비정상적으로 짧게 그려 고문의 고통 함께 느낄 수 있게 했죠
이 기법의 극적인 효과 활용한 달리, 초현실적인 종교화를 창조했어요
세계 미술사에 큰 업적을 남긴 거장들에게서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어요. 바로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작품을 창조했다는 겁니다. 15세기 이탈리아 화가 안드레아 만테냐도 혁신적인 단축법을 개발해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가 되었어요. 단축법이란 인물이나 물체를 실제 길이보다 짧아 보이게 그리는 창작 기법을 말해요. 만테냐의 대표작인 작품1을 보면 단축법이 얼마나 혁신적인 기법이었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차가운 대리석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이 놓여 있네요. 그림 왼편에서 슬퍼하는 세 사람은 성모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그리고 사도 요한입니다. 이 그림은 특이하게도 예수의 신체를 비정상적일 정도로 짧게 그렸어요. 또 몸 전체 길이에 비해 머리는 유난히 크게, 가슴은 넓게, 두 팔은 길게 표현했군요.
- ▲ 작품1. 만테냐, ‘죽은 예수 그리스도’, 1475~90년경
예수의 몸이 상체는 크고 하체는 기형적으로 짧게 보이는 것은 단축법의 강력한 효과 때문이에요. 만테냐 이전에는 이토록 충격적인 방식으로 예수를 그린 화가는 없었어요. 왜 단축법을 사용해 예수의 시신을 그렸을까요? 예수가 십자가 처형을 당해 순교할 때 얼마나 끔찍한 고문과 고통을 겪었는지 강조하기 위해서예요. 단축법의 극적인 효과 덕에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 생긴 예수의 두 손과 두 발의 상처가 또렷하게 보이네요. 특히 발바닥에 있는 두 개의 못 자국은 바로 눈앞에서 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어요. 만테냐는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신앙심이 깊어지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자기가 생각해낸 단축법을 활용해 예수의 시신을 축소한 겁니다.
- ▲ 작품2. 달리, ‘십자가 성 요한의 그리스도’, 1951년
20세기 스페인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에서도 단축법의 극적인 효과를 만날 수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처형을 받는 장면을 그린 작품 2는 충격적이네요. 단축법의 극적 효과를 활용해 예수의 몸이 아래로 갈수록 점점 더 작아지고 짧게 보이도록 그렸거든요. 지금껏 많은 화가가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를 그렸지만 공중에 떠 있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그린 적도, 단축법을 이용해 역삼각 형태로 표현한 적도 없었어요.
달리는 왜 이토록 파격적인 종교화를 그렸을까요? 이성적 상태를 초월한 심리적 황홀경을 그림에 표현하기 위해서였어요. 달리는 현실을 초월하는 무의식 세계나 꿈의 세계를 표현한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예요. 어느 날 달리는 16세기 스페인 신비주의 신학자로 꼽히는 '십자가 성 요한'이 그린 그림을 보고 강한 영감을 받았어요. '십자가 성 요한'은 기도를 하던 중에 공중에 떠 있는 예수의 모습을 보았고 그 신비한 종교적 체험을 그림으로 그렸거든요. 달리는 기독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십자가 성 요한'이 경험했던 종교적 환각 현상을 그림에 표현하고 싶었어요. 즉 무의식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단축법을 이용해 초현실적이며 현대적인 종교화를 창조한 겁니다.
- ▲ 작품3. 이환권, ‘장독대 시리즈’, 2008년
우리나라 조각가 이환권은 단축법을 가족 간의 사랑을 나타내는 도구로 사용했네요.
작품3은 한국인 가족 3대를 조각 작품에 표현한 거예요. 재밌게도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단축법을 사용해 납작하게 표현했어요. 왜 가족상을 위아래로 납작하게 눌린 모양으로 조각했을까요? 한국의 전통 옹기, 우리말로는 '독'이라고 부르는 그릇 형태와 닮게 표현하기 위해서였어요.
이환권 식의 옹기 인물 조각이 탄생한 비결을 소개할게요.
먼저 평범한 한국인 가족을 모델로 삼아 여러 방향에서 사진을 찍어요.
그다음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사진에 담긴 인물의 신체를 위아래로 짧게 줄여요.
이렇게 납작해진 인체를 흙으로 빚어 조각하고, 다시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FRP)으로 본을 떠서 작품을 완성해가는 것이랍니다.
가장 한국적인 특성을 지닌 '독'을 가족 간의 사랑을 의미하는 상징물로 승화시킨 작품의 의미를 알 것 같아요. '독'은 한국인의 지혜와 삶이 담겨 있는 친근한 생활용품이자 소중한 문화유산이기도 하죠. 게다가 모양도 고향처럼 편안하고 소박하게 생겼으니까요. 예술가들이 개발한 단축법을 일상에서도 활용하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집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단축하면서 최대한 많은 가치를 얻기도 해요. 이런 삶의 지혜를 단축법에서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이글의 "단축법(短縮法)"과 대비되는 "길게" -
우아, 신앙, 순수, 공포, 고독… '길이'가 말하는 것들
==================================<내가 찍은 "이환권의 장독대" >==================================
2010.11.27. 11:31 촬영장소 - 서울시립미술관 앞, 덧수궁 돌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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