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3.10.17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 관장)
인간적 종교화 그린 화가 카라바조, 맨발의 성모 마리아로 친근함 표현
렘브란트는 무릎 꿇은 아들의 발로 용서를 비는 마음을 말하려고 했죠
때로는 입으로 소리 내 하는 말보다 발이 하는 말이 감성을 자극한답니다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트로일로스와 크레시다'에는 이런 구절이 나와요. "아, 그녀의 발이 말을 합니다." 발이 어떻게 말을 하는지 궁금하죠? 오늘은 발이 전하는 말을 눈으로 보게 해주는 예술 작품을 함께 살펴보기로 해요.
17세기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의 작품 1을 볼게요. 이 장면은 노부부 순례자가 이탈리아 마르케 주(州) 안코나 현(縣)의 로레토 언덕에 있는 '성모의 집'을 방문해 성모 마리아에게 축복을 내려달라고 기원하는 모습을 그린 겁니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어요. 그림 속 성모가 거룩하고 성스러운 존재가 아니라 평범한 아기 엄마로 표현되어 있네요. 카라바조가 살았던 시대에 거리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모습 말이에요. 어머나, 게다가 맨발이에요! 카라바조는 왜 신성하고 고귀한 존재 '성모 마리아'를 맨발을 드러낸 서민적인 모습으로 그렸을까요? 인간적인 기쁨과 슬픔, 고통을 이해하는 친근한 이웃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죠. 자, 이제 그림 속 순례자 부부의 맨발을 보세요. 늙은 남자의 더러운 맨발을 얼마나 실감 나게 그렸던지 후각이 예민한 사람은 그림에서 발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예요. 왜 더러운 맨발을 강조했을까요? 순례자 부부가 멀고 험난한 길을 맨발로 걸어왔다는 것과,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예요. 카라바조는 현실과 동떨어진 종교 그림이 아닌 인간적인 종교 그림를 그린 화가로 유명해요. 신성한 성모의 맨발과 세속적인 인간의 맨발을 대비시킨 이 그림을 보면, 카라바조의 그림을 왜 인간적이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지요.
▲ 작품 1. ‘로레토의 성모’(사진 왼쪽), 카라바조, 1604~5년. 작품 2. ‘돌아온 탕아’(사진 오른쪽 위), 렘브란트, 1668년. 작품
3.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사진 오른쪽 아래), 들라크루아, 1830년.
작품 2(큰이미지)는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가 참회와 사죄의 감정을 발의 언어로 전달한 그림이에요. 원래 성서 이야기를 그림으로 구성한 것이지요. 어떤 이야기인지 간단히 소개할게요. 옛날 부자 노인에게 두 아들이 있었어요. 늙은 아버지의 유산을 탐낸 둘째 아들은 자기 몫의 재산을 챙겨 집을 나갔어요.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돈을 죄다 써버리고 거지가 되어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께 잘못을 빌고 있는 겁니다. 렘브란트는 아들이 깊이 뉘우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그가 맨발로 무릎을 꿇고 아버지께 빌고 있는 뒷모습을 그렸어요. 그런데 아들의 한쪽 발은 맨발이고 다른 쪽 발은 신발을 신었네요. 그 신발도 금방이라도 벗겨질 것 같아요. 왜 왼발은 맨발이고 오른발은 신발을 신은 모습으로 그렸을까요?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였죠. 두 발을 모두 맨발로 그리는 것보다는 한쪽은 맨발, 다른 한쪽은 낡고 해진 신발을 신은 모습이 더 불쌍하게 보이거든요. 렘브란트는 발도 말을 할 수 있고, 그것이 감성을 자극하는 효과가 뛰어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참회와 사죄의 감정을 표정 대신 발로 말하게 한 것이지요.
(발 부분 확대 이미지)
▲ 작품 1. ‘로레토의 성모’(사진 왼쪽), 카라바조, 1604~5년. 작품 2. ‘돌아온 탕아’(사진 오른쪽 위), 렘브란트, 1668년.
작품 3.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사진 오른쪽 아래), 들라크루아, 1830년.
작품 3에서 19세기 프랑스 화가 들라크루아는 맨발을 자유의 상징으로 사용했어요. 이 그림의 배경은 1830년 7월 27~29일에 일어났던 파리 7월 혁명입니다. 당시 프랑스 왕 샤를 10세는 자유와 변화를 갈망하는 시민의 요구를 외면하고, 탄압하는 정책을 펼쳤어요. 분노한 시민은 대규모 폭동을 일으켜 단 사흘 만에 부르봉 왕가를 무너뜨리고, 루이 필립을 새로운 국왕으로 맞이합니다. 들라크루아는 이 역사적인 사건을 그림으로 옮긴 거죠. 그림 한가운데 가슴을 드러내고 걸어가는 여성은 자유의 여신이에요. 미술에서는 전통적으로 자유, 정의, 승리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 개념은 여성으로 의인화해 그렸거든요. 혁명의 상징 모자를 쓴 자유의 여신은 오른손에 프랑스 국기, 왼손에는 총을 들고 시민군을 이끌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여신의 발이 맨발이에요. 여기서 맨발은 자유를 상징해요. 신발은 구속, 억압, 권력을 뜻하지요. 들라크루아는 프랑스공화국의 혁명 정신인 자유민주주의를 맨발에 비유해 표현한 것이에요.
한편 한국의 예술가 김준은 사회가 꺼리거나 피하는 금기(禁忌)에 질문을 던지는 도구로 맨발을 활용하고 있어요. 작품 4에서 문신을 한 맨발은 실제 발이 아니에요, 디지털 영상 작업으로 가상의 3D(차원) 인체를 만들어 실제 문신과 똑같은 효과를 낸 겁니다. 이렇게 인공 문신 기법을 작품에 도입한 의도는 무엇일까요? 표현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예요. 문신을 금기로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 어떤 사람들은 자기 개성을 드러내거나 장식 욕구 때문에 몰래 문신을 새기곤 해요. 이 작품에선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방법으로 화려한 문신이 새겨진 인공 맨발을 창작한 것이에요. 예술가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발로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우리는 기쁠 때 발을 동동 구르고 불안할 때 발을 떨기도 하지요? 때로는 양발을 벌리고 선 동작으로 당당한 자신감을 말하지 않던가요?
[함께 해봐요]
작품 1·2·3·4에 여러분만의 제목을 붙여보세요.
예를 들면 작품 1은 ‘성스러운 맨발’, 작품 2는 ‘용서의 맨발’, 작품 3은 ‘자유의 맨발’, 작품 4는 ‘장식의 맨발’로 정리할 수 있지요.
자, 이제 여러분이 직접 제목을 달고, 왜 그런 제목을 붙였는지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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