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 우아, 신앙, 순수, 공포, 고독… '길이'가 말하는 것들

바람아님 2013. 12. 17. 20:56

(출처-조선일보 2013.10.31  이명옥 사바나 미술관 관장)

聖母의 아름다움 표현하려 했던 화가, 목·손·다리 길게 그려서 우아함 강조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조각 '걷는 남자'… 인간 내면 불안과 공포 말하고 있죠
우리 주변에 있는 기다란 모양들, 여러분은 어떻게 느끼고 있나요?

미얀마의 산악 지대에 사는 파다웅족 여성들은 목을 길게 늘이기 위해서 청동 고리를 목에 걸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몇 년에 걸쳐 고리 한 개씩을 추가한다는군요. 왜 그토록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목을 늘이는 것일까요?
그 이유 중 하나는 목이 긴 여자가 미인이라고 믿기 때문이죠.
긴 목이 아름다움의 상징이라는 사례는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파르미자니노의 대표작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요.


작품 1의 제목은 '목이 긴 성모(聖母)'랍니다. 그림 속 성모의 목이 

유별나게 길기 때문에 그런 제목을 갖게 된 거예요. 이 그림은 한눈에 보아도 이상한 점이 느껴져요. 성모 얼굴이 몸의 전체 크기나 길이보다 너무 작게 그려졌어요. 또 손과 다리는 유난히 길게 표현되었네요. 

왜 신성한 성모 마리아를 인체 비율에 맞지 않는 기형 형태로 그렸을까요? 우아하고 세련된 아름다움을 지닌 여성으로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예요. 

성모를 우아하고 늘씬한 미인으로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신체를 길게 늘였다는 증거물을 보여 드리죠. 그림 왼편에는 

다섯 명의 천사가 있는데 그중의 한 천사는 달걀 모양의 긴 

꽃병을 들고 있어요. 달걀처럼 갸름한 성모 얼굴과 백조처럼 

긴 목에서 어깨로 이어지는 우아한 선은 천사가 든 기다란 

꽃병과 놀랄 만큼 닮았어요.

배경의 대리석 기둥도 기다랗네요. 파르미자니노는 사람의 

몸을 길쭉하게 늘리면 우아한 아름다움이 생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뛰어난 그림 솜씨를 발휘해 

성서 속 인물 성모를 현대적 세련미를 지닌 여성으로 

변신시킨 것이지요.










17세기 그리스 출신의 스페인 화가 엘 그레코도 인체를 길게 

늘이는 기법을 그림에 사용했군요.


작품 2의 두 남자는 예수의 제자 중 한 사람인 성 안드레아와 13세기 초 이탈리아 로마 가톨릭 수도사인 성 프란체스코예요. 그림 왼편의 엑스(X)자 형태 십자가를 붙잡은 사람이 성 안드레아, 오른편의 갈색 수도복을 입은 사람이 성 프란체스코입니다. 그림 속 두 인물의 몸도 길쭉하네요. 왜 이들 신체를 길게 늘여 그렸을까요? 종교적 신앙심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어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엘 그레코는 많은 종교화를 남겼는데 그림 대부분에서 인물을 기다랗게 표현했어요. 인물의 겉모습보다 영혼의 세계를 그리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죠. 고난과 박해를 받고 순교한 성 안드레아와 평생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해 '청빈의 성자'로도 불리는 성 프란체스코는 신앙의 모범이 되는 성인들이에요. 엘 그레코는 두 인물의 희생정신과 순결한 영혼을 강조하기 위해 신체를 가늘고 길게 표현한 거죠.


20세기 이탈리아 출신의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는 인간 내면에 깃든 고독을 기다란 신체를 빌려 표현했어요.

작품 3의 여성은 화가의 모델이자 아내인 '잔 에뷔테른'이에요. 모딜리아니는 아내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자세하게 그리지 않고, 단순하고 간결한 형태로 표현했어요. 그리고 얼굴, 코, 목, 두 팔은 유난히 길게 그렸죠. 덧없고 변화무쌍한 겉모습이 아닌 영원히 변하지 않는 순수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서였어요. 모딜리아니에게 순수는 고독을 의미했어요. 인간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 중에서 가장 근원적인 감정이 고독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는 눈과 입은 생략하고 코만 간략하게 표현한 고대 그리스 조각과 아프리카 원시 조각을 보고, 인물을 단순한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 좀 더 강렬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단순한 형태와 길쭉함을 결합해 인간의 근원적이며 보편적인 감정인 고독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한 거죠.


작품4 '걷는 남자', 자코메티, 1960년 사진

앞서 소개한 세 화가는 모두 인체를 길게 늘여 표현했지만 가늘고 기다란 형태에 관한 한 스위스 출신의 조각가 자코메티와는 겨루지 못해요. 자코메티는 긴 막대기와 같은 독특한 인물상을 창조했거든요. 금방이라도 부스러질 것처럼 가늘고 기다란 몸을 가진 남자가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고 있네요.


작품4에서 자코메티는 왜 남자를 앙상한 가지처럼 가느다란 모습으로 조각했을까요? 인간 내면에 자리한 불안과 공포, 삶의 허무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예요. 자코메티는 제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수많은 사람이 살해당하거나 굶주림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탐구하기 시작했어요. 인간은 허무함과 두려움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지만,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고독한 존재라는 점도 깨달았어요. 삶의 무게에 짓눌려 언제라도 쉽게 부서질 것만 같은 인간적인 허약함을 몸과 팔다리가 극단적으로 가늘고 긴 인물상에 담은 것이지요.


작품을 모두 감상하고 나면 여러분 주변에 있는 기다란 형태에 관심을 갖게 될 거예요. 기다란 형태가 내게 어떤 느낌을 불러일으키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 작품4 '걷는 남 자', 자코메티, 1960년.



                                     [함께 그려봐요]

'PLT1A-033H’, 배병우 작품 사진
▲ 'PLT1A-033H’, 배병우.

▲사진가 배병우의 작품이에요. 우리 눈으로 바람의 형태를 볼 수는 없지만, 다른 것을 통해 바람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지요. 

이 작품에선 일제히 한 방향으로 드러누운 풀을 보며 바람이 불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여러분은 어떤 식으로 바람의 존재를 나타내고 싶나요? 갈대에 스친 바람의 흔적을 찾아 나설 건가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바람의 모습을 자유롭게 그려 보세요.


▲ 그림=정서용



이글의 "길게"와 대비되는 "단축법"  -  줄일수록 더 강렬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