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화 속 신성한 인물인 성모·부처, 머리 뒤에 황금빛 원형 넣어 나타냈죠
고갱은 자화상에 후광 그려 자부심 담고 키스 해링은 사랑·평화의 뜻으로 사용
먼 옛날 종교화를 그리던 화가들은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졌어요. "여러 인물 중에서 평범한 신분을 가진 보통 사람과 고귀한 신분의 특별한 사람을 그림 속에서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리고 오랜 연구 끝에 기발한 아이디어를 얻었답니다. 고귀한 인물의 머리 주변에 원형의 황금빛을 그린 거죠. 이 원형의 황금빛을 가리켜 '후광(後光)'이라고 부릅니다. 신성한 존재임을 나타내는 후광은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라파엘로의 그림에서도 만날 수 있어요.
그림1은 성모(聖母)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있는 모자(母子)상이에요. 가느다란 황금색 원형이 성모와 예수의 머리 주변을 에워싸고 있네요. 성모와 예수가 신성하고 고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머리 주변에 후광을 그린 거죠. 라파엘로는 미술사(美術史)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성 모자상을 그린 화가로 유명해요. 라파엘로가 이상적인 성모자상을 창조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 ▲ (사진 왼쪽)그림 1. 라파엘로, ‘대공의 성모’, 1506년.
- (사진 오른쪽)그림 2. ‘아미타불 그림’, 고려 후기로 추정
구도와 색채의 황홀한 조화를 들 수 있겠어요. 먼저 구도를 살펴볼까요? 이 그림은 성모의 머리를 꼭짓점으로 가상의 선을 그으면, 커다란 이등변삼각형 안에 인물이 들어가는 구도로 그려졌어요. 화가들은 균형감과 안정감을 느끼게 하고 싶을 때 이등변삼각형 구도를 선택하지요.
다음은 색채에 주목하세요. 성모의 옷은 빨간색과 파란색, 성모와 성자의 피부는 노란색 계열이에요. 빨강·파랑·노랑은 삼원색으로 모든 색의 기본이 되는 색이지요. 그래서 이상적이고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삼원색이 사용되곤 하지요.
아, 또 한 가지가 남았네요. 후광이에요. 라파엘로는 후광을 마치 원형 장신구처럼 활용해 성(聖)모자의 머리를 장식했어요. 가늘고 섬세한 황금색 후광 효과 덕분에 성모와 성자가 더욱 성스럽고 아름답게 보이는 거죠. 신기하게도 고려불화(高麗佛畵)에서도 라파엘로의 그림에 나오는 것과 같은 후광을 만날 수 있어요.
그림 2 속의 부처는 아미타불이에요. 불교에서는 극락세계에 살면서 착한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역할을 맡은 부처를 가리켜 아미타불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현재 일본 에 있는 이것은 고려시대의 아미타불 그림 중에서도 가장 신비하고 아름다운 작품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어요.
특히 화려한 색채와 정교한 문양으로 장식된 아미타불의 옷은 장식미의 극치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요. 아미타불 그림과 라파엘로가 그린 성모자상의 연도를 비교하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13세기 말~14세기 초 고려불화를 그렸던 이름 없는 우리의 화가가 16세기 르네상스시대의 천재 예술가로 꼽히는 라파엘로보다 먼저 후광을 그렸다는 것이지요.
예술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화가로서 활동했던 시대가 서로 다르고 지리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살았는데, 예술가들이 비슷한 아이디어나 기법을 각각 개발한 사례를 발견하게 됩니다. 아마도 창의적인 예술가들은 영감이나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능력이 텔레파시처럼 서로 통한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종교미술에서는 신성한 인물의 머리 뒤에 후광을 그리는 전통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왔어요. 그런데 예술가가 자화상에 후광을 그린 특이한 사례가 있어 흥미를 불러일으키네요.
▲ 그림 3. 고갱, ‘후광이 있는 자화상’, 1889년
- ▲ 그림 4. 키스 해링, ‘단짝(buddies)’, 1987년
그림 4는 두 사람이 다정하게 어깨동무하는 모습을 그렸군요. 그래서 제목도 단짝이네요. 두 친구의 머리 주변에서 찬란한 빛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요. 이 빛은 종교미술에서 사용하던 후광을 키스 해링식으로 바꾼 것이에요. 키스 해링은 후광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현대미술가로 유명해요. 다른 작품에서도 자기 방식으로 후광을 즐겨 그렸지요. 후광은 키스 해링의 서명과도 같아요. 또 후광은 그를 세계적인 예술가로 유명해지는 데 한몫했지요. 후광은 사랑의 빛을 의미하기도 해요. 인류에게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로 후광이 사용된 겁니다.
후광이 그려진 동서양의 미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이런 즐거운 상상을 해봅니다. 보통 사람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종교미술 속 성인들처럼 후광이 생겨나지 않을까요?
찬란한 황금빛을 발하는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겠네요.
[함께 그려봐요]
- ▲ ‘장독대시리즈’, 이환권.
▲우리나라 조각가 이환권의 '장독대 시리즈'입니다. 단축법을 가족 간 사랑을 나타내는 도구로 썼네요. 단축법은 인물이나 물체를 실제 길이보다 짧아 보이게 그리는 창작 기법을 말해요. 단란한 가족 모습을 단축법을 써서 납작하게 표현했지요? 전통 옹기와 닮아 보이게 하려고 납작하게 만들었다고 해요. 원래 모습보다 납작해진 그림을 우리도 그려볼까요? 점선을 따라 그려보세요.
[함께 해봐요]
동서양의 다양한 예술품 중에서 후광(後光)이 표현된 작품을 찾아보세요. 여러분 자신을 예술 작품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후광을 나타낼 것인지 생각해봐요. 여러분의 개성이 담긴 후광을 그림으로 표현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