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고갱 "신들의 하루",1894년,
캔버스에 유채,69.5x90.5㎝,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소장.
'신들의 하루'는 그가 1893년 말, 타히티에서 2년여를 보내고 파리로 돌아왔을 때 그린 그림이다. 기대와 달리 평단의 냉대를 받으며,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던 고갱의 기억 속 타히티는 여전히 에덴 동산이다. 하지만 중앙에 서있는 거대한 신상(神像)은 예수님도 타히티의 토착신도 아닌, 인도와 동남아시아, 폴리네시아의 온갖 신들의 조합이다. 그 아래에는 매혹적인 자태로 정면을 보고 앉은 여인을 중심으로, 양 옆에 웅크리고 누운 두 사람이 있다. 그들의 앞에 마치 오색 창연한 물감을 풀어 놓은 듯, 환상적인 색채의 바닷물이 잔잔하게 일렁인다.
중앙의 여인은 두 발을 물속에 담갔다. 왼쪽의 인물은 발끝만 물에 넣었다. 오른쪽의 인물은 한껏 몸을 웅크리고 돌아누웠다. 이들은 각각 탄생과 삶, 그리고 죽음을 상징한다. 실망을 안고 타히티로 되돌아간 고갱은 54세의 나이로 비참하게 죽을 때까지 다시는 파리로 돌아오지 못했다. 밝음과 어둠이 교차하는 어지러운 물길 속에 다리를 한번 담갔다 꺼내면 끝나는 긴긴 인생이 신들에게는 정말 하루에 불과한 것일까?
<큰 이미지- 폴 고갱 "신들의 하루",189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