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118] '神들의 하루'에 불과한 인간의 긴긴 삶

바람아님 2013. 12. 14. 13:05

(출처-조선일보 2013.12.14. 우정아 |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잘나가던 증권맨이던 폴 고갱은 증시 폭락으로 실직한 이후에 처자식을 버리고 화가가 되어 집을 떠났다. 자본주의 사회와 물질 만능주의에 염증을 느낀 그가 선택한 최종 목적지는 남태평양의 섬, 타히티. 고갱은 타히티가 마치 아담과 이브가 타락하기 이전에 살던 에덴 동산처럼, 문명 이전의 인류가 누리던 순수하고 원초적인 삶이 지속되는 곳으로 상상했다. 타히티 또한 프랑스 식민지가 된 이래 서구화가 진척되며 본래의 풍속이 사라져버린 다음이었지만, 고갱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는 능력이 있었다.

폴 고갱 "신들의 하루",1894년,

캔버스에 유채,69.5x90.5㎝,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소장.


'신들의 하루'는 그가 1893년 말, 타히티에서 2년여를 보내고 파리로 돌아왔을 때 그린 그림이다. 기대와 달리 평단의 냉대를 받으며,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던 고갱의 기억 속 타히티는 여전히 에덴 동산이다. 하지만 중앙에 서있는 거대한 신상(神像)은 예수님도 타히티의 토착신도 아닌, 인도와 동남아시아, 폴리네시아의 온갖 신들의 조합이다. 그 아래에는 매혹적인 자태로 정면을 보고 앉은 여인을 중심으로, 양 옆에 웅크리고 누운 두 사람이 있다. 그들의 앞에 마치 오색 창연한 물감을 풀어 놓은 듯, 환상적인 색채의 바닷물이 잔잔하게 일렁인다.

중앙의 여인은 두 발을 물속에 담갔다. 왼쪽의 인물은 발끝만 물에 넣었다. 오른쪽의 인물은 한껏 몸을 웅크리고 돌아누웠다. 이들은 각각 탄생과 삶, 그리고 죽음을 상징한다. 실망을 안고 타히티로 되돌아간 고갱은 54세의 나이로 비참하게 죽을 때까지 다시는 파리로 돌아오지 못했다. 밝음과 어둠이 교차하는 어지러운 물길 속에 다리를 한번 담갔다 꺼내면 끝나는 긴긴 인생이 신들에게는 정말 하루에 불과한 것일까?



<큰 이미지- 폴 고갱 "신들의 하루",1894년>




지난 2013.06.14.~09.09. 사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낙원을 그린 고갱"전 중 3대 작품을 추가로 올립니다.

(고갱의 자화상과 전시회 포스터)


폴 고갱_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폴 고갱_설교 후의 환상-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폴 고갱_황색그리스도(Yellow Christ)



[본 불로그 내 "고갱의 자화상" 해설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 후광(後光) 중 그림3]

**. 참고 서적 추천 : 달과 6펜스(The Moon and Six pence)

    1919년 발표된 서머셋 몸(William Somerset Maugham, 1874~1965)의 장편소설로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폴 고갱의 타히티 섬에서의 생활에서 힌트를 얻어 소설화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