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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대기자의 퍼스펙티브] 문재인 정부는 '자유'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바람아님 2019. 4. 26. 08:24

중앙일보 2019.04.25. 00:07


기념사·교과서에 '자유' 단어 빠져
주류 이념의 교체 의도인가
'자유' 없는 정의는 독선 낳아
김구의 '자유' 우월의 통찰 배척


‘4·19’ 혁명 59주년
4·19는 자유다. 4·19혁명은 자유의 위대한 승리다. 올해가 혁명(1960년) 59주년. 19일 서울 수유동 4·19 민주묘지에서 기념식이 있었다. 자유당 독재·부정에 대한 저항·희생을 기렸다. 이낙연 국무총리의 기념사가 이어졌다. “4·19혁명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탄탄한 초석을 놓았습니다.” 1470자의 연설(5분 45초)이다. 그의 기념사는 한국 민주주의의 전진과 집념을 담았다. 하지만 ‘자유’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았다.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은 없었다.


자유·민주·정의는 4·19의 3대 정신이다. 행사장에서 그 어휘들이 펼쳐졌다. 이 총리의 말들은 그것과 대조를 이뤘다. 참석자 대부분은 ‘자유’의 생략을 감지하지 못했다. 기념사의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인식했다. 하지만 4·19 세대 김윤수(전 출판인)씨는 분별력을 드러낸다. 행사 후 그는 “자유를 빼놓은 민주주의 어휘는 혁명 제단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수유동 4·19 민주묘지 기념 조형물.
자유는 울림이다. 시인 조지훈의 압축은 강렬하다. “자유! 너 영원한 활화산이여!”(고려대 캠퍼스 4·18기념탑) 시인의 감수성은 자유를 우선했다. 자유 없는 수사(修辭)학은 밋밋하다. 59년 전 그날의 격정과 장엄함을 담을 수 없다. 총리의 기념사는 퍼져 나지지 못한다.


지난해 58주년 기념일, 문재인 대통령은 수유동 국립묘지를 찾았다. 문 대통령은 방명록에 이렇게 썼다. “4·19혁명의 정신으로 정의롭고 공정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그 글귀는 대통령의 언어정치학을 상징한다. ‘자유’라는 표현은 빠졌다.

과거 4·19 기념사는 어땠을까. 40주년(2000년)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다. 그의 연설은 자유를 각인했다. “40년 전 오늘은 자유와 정의 그리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날… 전진의 길에 4·19혁명이 이루고자 했던 자유와 민주주의가 있습니다.”

수유동 4·19 민주묘지 기념 조형물.
50주년(2010년)은 이명박 대통령의 순서다. “자유의 종을 난타하고 자유와 민주, 정의의 횃불을 높이 들었던… 해방 후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시대의 커다란 가치….” 그들의 말 속에 ‘자유’는 선명하다.

권력의 언어 풍광은 달라졌다. ‘자유’ 낱말은 밀려났다. 그 생략은 되풀이된다. 시련받는 자유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는 배경을 분석한다. “자유와 자유민주주의를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등치시키고, 보수우파의 이념과 언어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 어휘의 대체가 정의와 평등이다.” 문 대통령의 언어는 단단하게 짜여있다.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다.


권력 언어의 변화는 ‘세계관의 반영’이다(복거일 작가 표현). 청와대 참모진의 주력은 586 운동권 출신. 박형준 동아대 교수는 586세대의 정서로 파악한다. “1980년대 운동권 정서의 저변엔 ‘자유’라는 가치를 기득권,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라는 계급투쟁적 인식이 배어있었다. 그 낡은 좌파적 의식이 관성으로 남아 ‘자유’가 삭제된 것이다.”

언어의 변동은 주류 이념의 바꾸기다. 지금 정권의 한쪽에선 인물·세력 교체다. 다른 쪽은 사상·역사 전쟁이다. 두 가지 전선은 보완적이고 얽혀 있다.


이념 교체의 주요 전선은 교육 현장이다. 지난해 7월 교육부는 사회·역사 교과서 내용의 틀을 새로 짰다(교육과정 개정 고시).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했다(성취 기준). 다만 ‘성취 기준 해설’ 때 유연성을 뒀다.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도 함께 쓸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골격은 ‘자유’의 삭제다. 해설은 하위 단계다. 반발은 거세다. “헌법적 가치와 정체성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모임(헌변)과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은 헌법소원(위헌 확인)을 냈다.

고려대 캠퍼스 4·18기념탑.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렇게 전망한다. “자유민주주의가 민주주의 안에 내포된다는(교육부 개정 이유) 것은 위헌은 아니다. 다만 굳이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바꾸는 것이 북한식 인민민주주의를 인정, 포용하는 듯한 의도가 들어갔다면 위헌의 결정적 부분이다.”
        

민주주의는 매력적이다. 깃발은 다양하다. 자유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 교도(敎導)민주주의, 민중민주주의…. 수식어는 짧다. 내용은 결정적이다. 체제의 본질이다. 개인의 삶을 장악한다. 교도민주주의는 1950~60년대 인도네시아 수카르노의 조잡한 독재다. 공산민주주의는 공포와 처형의 계급독재다. 그것은 북한에서 악성 변종했다. 김정은 체제는 기괴한 세습독재다. 나라의 명칭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다.


한국의 독립투사·선각자들은 그 차이를 예견했다. 김구의 관점은 명쾌하다. “나의 정치 이념은 한마디로 표시하면 자유다. … 공산당이 주장하는 소련식 민주주의란 것은 독재정치의 모든 특징을 극단으로 발휘하고 있다.” (『백범일지』 ‘나의 소원’) ‘나의 소원’은 자유의 열망으로 가득하다. 그것은 묵시(黙示)론적 통찰이다. 그것은 경험의 축약이다. 김구의 임시정부는 좌익의 분열주의에 고통을 당했다.


자유와 민주주의는 어울린다. 그 순간 각성과 열정이 뿜어난다. 인권과 정의는 분출한다. 자유민주주의는 엄선· 정제된 것이다. 사이비 민주주의와 차별적이다. ‘자유’의 삭제는 치명적이다. 대한민국 체제의 우월적 지위가 상실되는 것이다. 의혹의 시선이 쏠려 있다. 복거일은 “북한과 동질성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구의 ‘자유’는 확장한다. 그것은 민족주의와 결합한다. 자유를 담은 민족주의는 ‘열린 민족주의’다. 개방은 번영의 동력으로 작동했다. 북한의 민족주의는 폐쇄적 원리주의다. 자력갱생의 경제는 가난과 굶주림이다. 올해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문재인 정부 사람들’은 김구를 추앙한다. 하지만 ‘자유’의 생략은 백범 정신의 모멸적 거부다.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서울 양재동) 글귀.
자유는 정의를 실천한다. 청년 윤봉길의 지적 연마 바탕은 자유였다. “인생은 자유의 세상을 찾는다. 사람에게는 천부의 자유가 있다. 자유의 세상은 우리가 찾는다.” 그의 저서 『농민독본』의 탁월한 구절이다. 그 글귀는 존 로크의 자유주의 철학과 연결돼 있다. 그 신념은 독립 투혼을 생산했다. “자유의 세상은 우리가 찾는다”에서 절정에 이른다. 29일은 윤봉길의 상하이 의거 87주년 기념일이다.
        

4·19 묘지에서 두 개의 조형물이 다가온다. 제목은 ‘자유의 투사’와 ‘정의의 불꽃’이다. ‘자유’와 ‘정의’의 두 조각상은 조화를 이룬다. 원로 언론인 목정균(전 세계일보 편집국장)씨는 4·19혁명 참가자다. 그는 “자유의 정신 속에서 정의가 진정한 꽃을 피울 수 있다. 자유는 불의와 불공정을 배척하는 판단의 자양분”이라고 했다.


자유 없는 정의는 오만을 낳는다. 그것의 과잉 상태는 정의의 독점이다. ‘내가 하면 정의, 네가 하면 적폐’ ‘내로남불’의 독선이다. 그런 사고는 적과 동지로 사람을 나눈다. 캠코더(대선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의 득세는 그런 의식의 반영이다.

자유는 관용의 용기를 준다. 만델라는 서사시적 사례다. 그는 자신의 삶을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로 묘사했다. 감옥→석방→부활이다. 그는 대통령(남아프리카) 당선 뒤 화해와 통합을 내세웠다. 쟁취한 자유는 용서하는 용기로 진입했다. 김대중은 “만델라는 최고 용기의 표상”이라고 했다. DJ는 통합의 대통령상을 추구했다. 그의 집권 중 전직 대통령들의 모임은 정례적이었다.

‘자유’ 정신은 진화한다. 유인학 4·19혁명공로자회 회장은 "우리 세대는 민주화의 선도였고, 산업화의 역군이었다”고 했다. 그 바탕에서 4·19 단체들은 ‘민주화와 산업화의 융합’을 내건다.


내년은 4·19 60주년. 문 대통령의 기념사가 예정돼 있다. 4·19 묘지에서 ‘자유’의 외침은 복원될 것인가. 정의는 자유로 단단해진다. 자유와 민주는 공세적 조합이다. 자유와 정의는 분리되지 않는다.


박보균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