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책·BOOK

[논설실의 서가] 어머니의 이야기가 '역사'다

바람아님 2019. 6. 11. 07:20
디지털타임스 2019.06.10. 18:42

내 어머니 이야기 김은성 글·그림 / 애니북스 펴냄

"백 년이 훌쩍 넘은 1908년. 함경도 어느 마을에 한 여인네가 살고 있었다…"로 시작하는 이 책의 주인공은 저자의 어머니인 1927년생 이복동녀(李福童女)씨다. 팔순이 넘은 어머니는 만화가인 딸에게 조상들의 이야기와 자신의 생애를 말한다. '어머니의 어머니'(외할머니)가 병든 심술통 시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시아버지에게 젖을 물린 사연, 혼전 임신한 마을 친구가 집안의 구박으로 목을 맨 사건, 백무선 철길 놓는 공사장에서 큰 돈을 벌어와 집안을 다시 일으킨 오라버니, 기독교를 믿으면서 집에 모셨던 신주 단지를 깨버린 일 등 어머니는 깊고 깊은 기억의 우물로부터 길어낸 이야기를 조근조근 풀어낸다.


'놋새'라는 애칭을 가진 어머니는 일제 강점기 시절 함경도 북청에서 태어나 위안부 징집을 피하기 위해 원치않은 혼인을 했고, 흥남 철수 때 남쪽으로 피난오면서 이산가족이 됐다. 거제 수용소에서의 피난민 시절을 보내다 충청남도 논산에 정착해 살다가 70년대 말 서울로 올라와 현재까지 살고 있다. 먼저 사망한 장남을 포함해 6남매를 슬하에 뒀다. 저자는 그 중 막내 딸로 논산에서 태어났다.


책 속에는 무려 100년 넘는 기간의 개인사, 가족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두터운 역사책에선 결코 배울 수도, 실감할 수도 없는 내용들이다.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펼쳐지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어느 순간 코끝이 시큰해진다.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특별한 내 어머니의 말에는 한국의 현대사,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딸은 10년에 걸친 세월 동안 어머니의 이야기를 녹취해 책을 엮어냈다. "엄마가 새벽이면 꿈에 놀라서 깨어나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 때는 어김없이 고향 마을 어귀를 서성이는 꿈을 꾸었거나 아버지가 쫓아오는 꿈을 꾸었을 때다. 이런 모습을 보고, 엄마의 생애를 엄마의 구술을 바탕으로 만화로 그리기 시작했다."


박영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