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文·아베 '외교적 담판'이 실질 해법
문화일보 2019.07.09. 12:00일본 정부의 이번 3개 항목의 수출 규제는 독한 마음을 먹고 치밀하게 준비한 도발이다. 지난해 10월, 일제 강제징용 관련 대법원 판결 이후 일본이 보복할 것임은 예견된 상황이었다. 게다가 일본 정치가들은 ‘반도체 등 한국 경제에 가장 중요한 부분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예고까지 했다.
그런데 우리는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허둥대고 있다. 세계 일류 기업인 삼성조차도 이러한 위기 상황을 예측 못 했는지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허겁지겁 일본으로 날아갔다. 지금 당장 경제적인 피해가 나타나는 건 아니지만, 한국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선 것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의 위기 상황이라고 말한다. 일본의 수출 규제로 인해 한국 수출의 30%를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이 주춤할 경우 다른 국가들이 빠르게 틈새시장을 공략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 경제는 7% 정도의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가정할 수 있다. 이런 위기 상황을 빨리 관리할 수 있는 단기적인 대책이 필요하건만,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국제사회에 호소라는 중장기적인 대책에만 매달리고 있다. 그리고 정부 일각에서는 참의원 선거 이후 일본의 자세가 누그러질 것이라는 기대마저 있다.
일본 정부의 독기 서린 수출 규제는,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불만, 대북정책에 대한 초조함, 한국에 대한 피로감이 결합된 복합적 불신에서 치밀하게 준비된 것이다. 단지 참의원 선거에만 이용하려는 일시적 공세가 아니다. 한국 경제가 커지는 데 대한 견제 장치를 마련하려는 음모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일본의 공세는 3개 항목의 수출 규제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2차 공세인 화이트 국가의 명단에서 삭제하는 순서가 남아 있다. 이후에도 190개 이상의 보복조치를 예고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참에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의 문제점을 바로잡아 역사적인 정의를 세워야 한다는 원칙론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일 관계에서는 도덕적인 우위가 한국에 있으므로 국제사회에서도 일본의 잘못을 인정할 것이라는 낭만적인 주장마저 있다. 그러나 감정적인 반일(反日)은 절대로 극일(克日)을 할 수 없다.
지금까지 한·일이 감정적인 대립을 할 때 미국이 중재자 역할을 해온 것에 기대를 거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달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일의 역사 갈등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미국의 이익’을 위해 동맹국을 압박하더라도 경제적인 이익을 보려 한다. 일본이 한국 반도체를 규제하는 것은 미국 기업에도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게다가 일본이 교묘하게도 수출 규제의 이유로 ‘수출 규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북한 유입 가능성’을 들고 나왔다. 미국이 대북 국제 제재를 유지·단속하는 상황에서 일본이 북한 문제를 이유로 한국을 규제한다고 하면 미국도 섣불리 나서기 힘들다.
지금이라도 일본의 정책에 냉정히 대처하기 위해서는 한·일 간 외교적인 대화가 필요하다. 지금 상황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결자해지(結者解之)하는 의지를 보여야 한·일 관계의 실마리를 풀 수 있다. 아무리 실무진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마련하더라도 대통령이 이를 실천할 의지가 없으면 헛일이다. 또한, 국민의 애국심을 부추겨 국내정치에 이용하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정부가 국제관계에서 국익(國益)을 생각하지 않으면 누가 국민을 보호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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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日 수출제한, 그 본질과 대응책
서울경제 2019.07.09. 17:30
日 '안보위협'이라 판단했다면
GATT 예외조항 해당 가능성
WTO 제소해도 승소 장담 못해
정상회담 개최해 급한 불 끄고
소재부품산업 자립 지원 병행을
먼저 세계 다수 국가는 다자간 수출통제체제 규범에 따라 WMD와 그 운반수단인 미사일 및 재래식 무기와 이들 무기의 개발 및 생산 등에도 이용 가능한 소위 전략품목, 즉 민군겸용의 이중용도품목(물품·기술·소프트웨어)에 대해 허가제를 통해 수출을 통제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다자수출통제체제는 현재 30~40여개 국가 간의 비공식적 협의기구로서 4개 체제별로 수출통제 지침과 통제목록을 제정해 참가국에 자발적인 이행과 집행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권고사항일 뿐 구체적인 이행은 참가국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 다시 말해 다자체제 수출통제 규범의 성격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신사협정에 불과한 것이다.
일본은 전략품목의 수출통제 대상국을 모든 국가로 하되 4개 다자수출통제체제에 모두 가입한 27개국에 대해서는 수출통제 국제규범을 잘 준수하고 있다고 간주하고 ‘백색 국가(white country)’로 분류해 이들 국가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수출허가 심사를 면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5년부터 백색 국가로 분류됐는데 앞으로는 한국을 백색 국가그룹에서 제외해 이번 반도체 핵심소재에 대해서는 건별로 수출허가를 받도록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일본 정부가 허가를 거부하면 사실상 수출을 금지할 수도 있다.
또 하나의 국제법적 근거는 GATT 제21조의 안보 예외 조항이다. 이는 GATT의 자유공정무역 원칙에 대한 예외로서 WTO 회원국들에 중대한 국가안보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포괄적으로 무역제한 조치를 허용하는 조항이다. 이 조항에 의거해 WTO 회원국은 핵물질을 포함한 전략품목에 대해 수출입을 금지 또는 제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공개 시 자국의 중대한 안보이익에 반한다고 간주되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도 된다. 여기에서 ‘중대한 안보이익’이란 국가안보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자국의 이익을 말하는데 무엇이 자국에 ‘중대한 안보이익’인가는 각 회원국이 스스로 결정하는 사항이다. 따라서 발동국가는 그 조치에 대해 사전에 상대국에 통보할 필요가 없고 그 조치의 정당성을 증명할 필요도 없으며 WTO 또는 그 회원국들로부터 사전승인이나 추인을 받을 필요가 없다.
우리 정부가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를 최혜국대우원칙 위반을 이유로 WTO에 제소한다고 해도 시간이 걸리는 것은 물론 승소할 가능성도 희박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GATT 제21조의 안보 예외에 의거 중대한 안보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무역제한 조치는 그간 10여건의 GATT 분쟁패널 판결에서도 정당성이 인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일본의 수출통제 조치에 대한 바람직한 대응은 무엇일까.
첫째는 조속한 시간 내에 양국 정상회담을 여는 것이다. 이는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문제의 확산을 방지하고 조기에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둘째는 국가안보 목적의 수출통제 강화이다. 특히 대일 전략품목에 대해서는 수입 후 최종 용도와 최종 사용자를 철저히 관리해 당해 품목이 북한 등 WMD 확산국으로 이전되지 않도록 재수출통제를 강화하는 한편 유엔의 대북제재 조치를 철저히 준수해 국제사회로부터의 불신을 초래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는 소재부품 산업의 육성 및 경쟁력 강화이다. 1965년 이래 54년간 700조원에 달하는 대일 누적적자를 발생시킨 주원인이기도 한 소재와 부품의 지나친 대일의존에서 탈피하기 위해 관련 산업을 제대로 육성하고 경쟁력을 강화할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송영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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