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같은 회의실서 … 日 ‘의도적 홀대’
한·일 당국은 12일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로 촉발된 무역마찰과 관련해 일본 도쿄에서 첫 실무회의를 했다.
한·일은 오후 2시 회의를 시작해 오후 7시40분까지 6시간 가깝게 마라톤 논의를 했다. 한 참석자는 회의 분위기에 대해 “다사다난했다”고 밝혔다. 이런 회의가 다시 열릴지에 대해서는 “노 코멘트”라고 말했다.
우리 측은 이 자리에서 일본 정부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규제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즉각적인 철회를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가 당초 오후 4시에 하려던 내외신 기자 브리핑도 회의가 늦어짐에 따라 오후 8시30분에 열렸다.
회의가 열린 경제산업성 별관 1031호실에서는 양국의 험악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냉기가 흘렀다. 이날 회의는 발언이 시작되기 전 1분만 취재진에게 공개됐는데 양측은 서로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회의장에 먼저 도착한 호스트 격의 일본 경제산업성 이와마쓰 준 무역관리과장과 이가리 가쓰로 안전보장무역관리과장은 산업통상자원부 전찬수 무역안보과장과 한철희 동북아 통상과장이 회의장에 입장할 때 악수도 건네지 않고 자리에 앉은 채 정면만 응시했다.
이날 회의장 곳곳에서는 일본 정부의 의도적 홀대가 감지됐다. 화이트 보드 1개를 배경으로 테이블 2개와 의자가 덩그렇게 놓인 공간은 회의실이라기보다는 창고에 가까웠다. 회의장 내부 귀퉁이에는 간이의자가 쌓여 있었고 이동형 테이블은 포개져 한쪽에 놓여 있었다. 바닥에는 정리되지 않은 전선이 삐쭉 튀어나와 있었으며 곳곳에서 파손된 의자나 책상 등 기자재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이번 회의가 ‘협의’가 아님을 강조하기 위한 듯 ‘수출관리에 관한 사무적 설명회’라고 쓰인 A3 크기 종이를 화이트 보드에 붙여 놓기도 했다.
한편 모건 오테이거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 11일(현지시간) 최근 악화한 한·일 관계 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며 “우리는 하루 단위로 대사관과 국무부를 통해 한·일과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한·미·일 3국 협의 개최를 위해 일본과 접촉하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관망하던 미국 정부가 중재에 나설 조짐을 보인 것은 한·일 갈등으로 한·미·일 안보협력이 흔들릴 경우 미국의 중국 견제와 대북 비핵화 협상 재개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반대의 목소리도 나온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는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자유한국당 윤상현 의원과 가진 비공개 면담에서 “지금은 미국 정부가 한·일 관계를 중재하거나 개입할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고 윤 의원 측이 밝혔다. 해리스 대사는 “지금은 미국이 두 나라 관계에 개입할 때가 아니다”라며 “한국과 일본은 모두 성숙한 국가인 만큼 각자 정부면 정부, 의회면 의회, 비즈니스면 비즈니스 차원에서 해결책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말했다.
도쿄·워싱턴=김청중·정재영 특파원,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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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여담>경제보복 미·일 교감說
문화일보 2019.07.12. 14:20일본의 경제보복에도 미국의 침묵은 계속되고 있다. 마땅한 대응카드가 없는 한국 입장에선 미국의 중재에 기대를 걸고 미국 마음을 잡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은 일본과 미국 간 ‘사전 교감’ 아래 진행되는 것이라는 분석이 일각에서 나온다. 믿고 싶지는 않지만 제법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한다. 이 같은 분석의 근거는 크게 3가지다.
첫째, 한국 반도체를 타깃으로 한 이번 경제보복으로 미국 업체들이 얻게 될 반사이익이 꽤 있다는 것.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세계 D램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의 소재 수출규제로 한국산(産) D램 공급에 차질이 생긴다면 최대 수혜업체는 세계 D램시장의 23%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 마이크론사가 된다. 낸드플래시는 한국이 없으면 일본 도시바에 이어 미국 웨스턴디지털·마이크론으로 수요가 돌아간다.
둘째, 미국과 경제패권 경쟁을 펼치고 있는 중국을 길들이는 레버리지로 활용이 가능하다. 지난 5월 미 상무부로부터 거래 제한 대상업체로 지정돼 인텔·마이크론 등 미 반도체 업체로부터 공급이 차단된 중국 화웨이는 현재 삼성·SK하이닉스로 주문을 돌리고 “반도체를 더 달라”며 물밑협상을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업체들마저 반도체 공급에 차질이 생긴다면 중국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고, 미국과 일본 반도체업체의 처분에 더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셋째, 경제보복은 그동안 북한산 석탄 밀반입·석유제품 불법 환적 등 대북 제재 뒷구멍 의혹을 받아온 한국의 군기를 다잡는 기회로도 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일본이 이번 경제보복 조치를 놓고 ‘안보상 부적절한 사안’을 지속적으로 거론하는 것과도 맞물린다.
경제보복에 대한 이 같은 미·일 교감설은 말 그대로 설(說)이다. 그렇지만 호사가들의 지나친 억측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엔 꺼림칙하다. 미국 우선주의에 철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상 지금 모든 걸 감안해 꼼꼼히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 것이다. 일본통 원로는 “한·일 갈등에 불개입을 고수해온 트럼프가 굳이 어느 한쪽 편을 들어야 한다면, 일본 손을 들어줄 확률이 99%”라고 단언한다. 만약 이게 현실화한다면 너무도 참담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 건 문재인 정부가 펼쳐온 탈미반일(脫美反日) 정책의 업보일지 모른다.
김병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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