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7.25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보양식 챙기는 문화 요즘 서양엔 없지만 과거에는 유럽서도 원기 회복 음식 유행
'레스토랑'은 파리에서 팔던 고단백 수프… 인기 얻자 고급 식당 그 자체로 의미 변해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중복(中伏)이었던 지난 월요일(22일) 많은 분이 삼계탕이나 장어, 낙지, 소고기, 민어 등 보양식을
챙겨 드셨으리라. 이처럼 한국에서는 여름 무더위를 무탈하게 넘기도록 보양식을 먹는다.
일본에도 한여름 장어구이를 먹는 전통이 있다. 중국에서는 여름이 아닌 겨울에 먹는다는
차이는 있지만, 보양식 문화는 아시아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서양에서는 특별한 날이나 절기에 보양식을 챙겨 먹는 경우를 보기 힘들다.
"몸이 안 좋으면 약을 먹지 왜 음식으로 보충하려 드느냐"는 과학적 사고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과거에도 그랬던 건 아니다. 실은 음식점을 뜻하는 '레스토랑(restaurant)'은 그 원뜻이 보양식이다.
레스토랑의 어원은 'restaurer(레스토레)'라는 프랑스어 동사(動詞)다.
'복원하다' '부활하다'와 함께 '체력·원기를 회복시키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동사에서 파생된 레스토랑이란 단어는 16세기 처음 기록에 나오는데, 이때는 보양 음료를 의미했다.
그러다 차츰 보양 음식으로 의미가 확장됐다.
레스토랑, 즉 서양의 보양식은 주로 국·탕 형태였다. 체력이 떨어진 사람은 소화 기능도 약해진 상태이기 때문에
먹기 편한 국물 음식이 더 적합하다고 본 것이다. 질 좋은 소·양·송아지 등 육류나 닭·꿩·메추리 등 가금류,
거북이 등 단백질이 풍부한 재료들을 각각 또는 섞어 푹 끓여서 만들었다.
이처럼 보양식은 고단백 식품이라는 건 동서양이 마찬가지였다. 영양이 부족했던 과거 만들어진 보양식이
영양 과잉인 현대인에게도 적합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기는 하다.
/일러스트=이철원
레스토랑이 식당을 의미하게 된 건 18세기부터. 1765년 불랑제(Boulanger)라는 이름의 프랑스 요리사가
파리에 식당을 열면서 '원기 회복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수프 등 다양한 레스토랑(보양식)을 판매한다'고 선전했다.
불랑제의 '레스토랑', 즉 보양탕은 큰 인기를 끌었고, 그의 식당은 레스토랑이라 불리게 됐다.
차츰 레스토랑은 프랑스는 물론 유럽과 미국에서 식당을 의미하게 되었다.
불랑제의 레스토랑은 우리가 알고 있는 레스토랑과는 많이 달랐다.
주인이 정해서 제공하는 음식 몇 가지만이 있었고, 커다란 식탁에 손님들이 함께 둘러앉아 먹었다.
당시 유럽에서 보편적이었던 태번(tavern), 즉 주막이나 여인숙에 딸린 식당과 비슷했다.
오늘날 레스토랑이라고 하면 메뉴에서 원하는 음식을 선택할 수 있고, 여러 개의 테이블 또는 방이 있어서
다른 손님들과 섞이지 않고 따로 먹을 수 있으며, 화려한 분위기 속에서 웨이터라는 이름의 전문 서비스 직원이 있는
식음 매장을 말한다. 이러한 의미를 지닌 레스토랑의 시초는 불랑제보다 조금 늦은 1782년 파리에 문 연
'그랑드 타베른 드 롱드르(Grande Taverne de Londres)'로 꼽힌다.
프랑스 귀족들은 바깥에서 식사하지 않고 요리사를 고용해 집에서 식사하거나 손님 접대를 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 많은 귀족이 죽거나 해외로 도피하면서 실업자가 된 요리사들이 레스토랑을 차렸다.
혁명 후 새로운 사회의 주역이 된 부르주아들은 귀족들처럼 요리사를 고용할 만큼 부유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자신들만 못하다고 여기는 일반 대중과 한 식탁에서 식사하고 싶진 않았다. 이러한 부르주아들에게
레스토랑은 요리사를 직접 채용하지 않으면서도 고급스러운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지면서 프랑스혁명 직후 파리 시내에는 순식간에 레스토랑이 급증했다.
프랑스 문화를 동경하던 유럽 각국에 파리 식(式) 레스토랑이 속속 들어섰다.
19세기를 거치며 레스토랑은 세계적으로 고급 식당의 보편적인 형태로 자리 잡았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레스토랑을 고루하고 진부하다고 여기는 이들이 늘어났다.
뉴욕과 런던, 파리, 도쿄는 물론 서울에서도 옛날 유럽의 태번처럼 커다란 공용 식탁이 한복판에 놓인 식당이
트렌디하게 여겨지며 젊은 손님들이 몰린다. 유행이란 정말 돌고 도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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