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6.15 어수웅·주말뉴스부장)
[아무튼, 주말- 魚友야담]
인생에 보내는 '마지막 굿바이'
깊게 숨은 매복치 둘을 뽑다가 잘못되어 턱뼈에 금이 갔습니다.
보름이 지났는데도 삼시 세끼 죽만 먹는 저작(咀嚼) 장애인. 욕구불만과 통증의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하지만 의사는 말합니다. 수술은 기술적으로 성공했다고. 한숨이 나옵니다.
의사는 성공했다지만, 곤두박질한 삶의 질은 누가 책임지나. 과연 수술은 잘한 선택이었나.
발치(拔齒) 후유증만으로도 이 정돈데,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내려야 하는 결정이라면 어떨까요.
'글쓰는 외과의사'로 이름난 하버드대의 아툴 가완디.
인턴 시절 그는 한 환자에게 수술 동의서를 받아야 했습니다.
60대에 접어들며 전립선암이 온몸에 전이된 공무원 A. 체중은 20㎏ 이상 줄었고, 복부·음낭·다리에 물이
차올랐습니다. 신경외과 주치의는 이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합니다.
고통을 경감시켜주는 치료, 또 하나는 척추에서 점점 자라나는 암세포를 제거하는 수술. A는 수술을 선택했죠.
동의서를 들고 가완디는 환자에게 경고합니다.
수술을 통해 종양을 제거할 수는 있지만, 그로 인해 마비와 뇌졸중 등 심각한 부작용을 겪을 수 있고,
심지어 목숨을 잃을 가능성도 있다고.
그때 병실에 있던 A의 아들이 묻습니다. "이렇게까지 용기를 내는 게 과연 좋은 생각일까요, 아버지?"
아버지의 대답. "그래서 나를 포기하겠다는 거냐?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지."
A는 수술을 선택했고, 안타깝게도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물론 수술은 기술적으로 성공했죠. 암세포를 제거했으니까요. 하지만 삶의 질은 형편없이 추락합니다.
배변 능력과 활력은 사라졌고, 호흡부전, 전신 감염, 욕창…. 수술 후 14일째 되는 날,
아들은 의료진에게 이 모든 것을 그만둬 달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극단적인 사례입니다. 좋아진 사례도 많겠죠. 하지만 그렇더라도 질문은 끝나지 않습니다.
100세 시대. '어떻게 살 것인가' 못지않게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아닐까요.
조간 신문이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금기 중 하나이지만,
'내년에는 더 젊게' 이상으로 '좋은 죽음'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믿습니다.
망팔(望八)을 앞두고 선후배의 빈소를 자주 찾게 된다는 작가 김훈과 몇년 전 부친을 암으로 잃은 작가 김연수의
에세이를 커버스토리로 싣습니다.
'아무튼, 주말'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질문을 함께 나눠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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