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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일제 불매운동

바람아님 2019. 7. 31. 09:30
한국일보 2019.07.30. 04:43
‘i***’ 아이디를 사용하는 네티즌이 ‘저부터 시작하겠습니다’라며 3일 한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불매운동 포스터. 그는 “네 시간을 고민하고 그렸다. 진심을 다해 전한다는 것 하나만 기억해달라”고 밝혔다. 인터넷 캡쳐

상품 불매운동을 뜻하는 영어 단어 보이콧(Boycott)은 ‘찰스 보이콧’이라는 영국 군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아일랜드에서 복무했던 보이콧은 대위로 퇴역 후 메이요주 토지관리인이 되었다. 1880년 아일랜드토지동맹 주도로 소작료 인하 운동이 일어나자 보이콧은 크게 반발했다. 이에 맞서 한 아일랜드 민족운동가는 보이콧 같은 사람들과 아예 접촉하지 말자는 압박 전술을 제창했고, 심지어 주변 가게에서는 그에게 물건도 팔지 않았다. 토지동맹을 창설한 마이클 대빗이 후에 ‘아일랜드 봉건 제도의 붕괴’라는 책에서 “사회적 배척”이라는 뜻으로 “보이콧”을 썼다.


□ 일본제품 불매운동의 역사는 중국이 뿌리 깊다. 중국 내 외국상품 불매운동은 중국인 이민 제한 정책을 펴던 미국을 겨냥해 1905년 처음 나타났지만 본격화는 1908년 일본의 총기 밀수선을 중국이 나포한 ‘다이니타쓰마루(第二辰丸)’ 사건이 계기였다. 일본의 무력 위협에 밀린 중국 정부가 배를 돌려주고 사죄와 손해배상까지 하자 광둥 사람들이 “국치”를 선언하며 대대적인 일본상품 불매운동에 나섰다. 중국은 최근까지도 일본과 정치적 마찰이 있을 때마다 이런 불매운동을 반복하고 있다.


□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초 시작된 조선물산장려운동은 근대기업을 일으켜 일본의 경제 침략을 이겨내자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앞세웠지만 한반도에서 대대적으로 벌어진 최초의 일제 불매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에도 과거사, 독도 문제로 한일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불매운동이 나타났다. 이와는 반대지만 20세기 초 개항장을 중심으로 자국 거점을 확보하려는 열강의 토지 매수에 저항해 일본을 비롯한 외국인에게 땅을 팔지 않겠다는 불매(不賣)운동도 있었다. 마산의 자복포 토지 불매운동이 대표적이다.


사지 않든 팔지 않든 불매운동은 동서를 막론하고 민족주의와 불가분의 관계다.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확산되는 ‘NO 일본’ 캠페인도 마찬가지다. 불매운동은 경제 행위로는 불합리할지 몰라도 과거 제국주의 침탈 시기 그랬듯 상대국의 조치가 부당한 만큼 정치적인 정당성과 위력을 갖는다. 불매운동이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저급하다느니, 몰이성적이라느니 입바른 비난만 들이댈 건 아니다. 물론 이런 운동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을 매국노 취급하거나 해당 업체에 무분별한 폭력을 행사하는 과도한 캠페인 역시 경계할 일이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