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잘하는 애는 공부로, 운동 잘하는 애는 운동으로 키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왜 그동안 우리나라는 소재 산업을 육성하지 못했느냐'고 물었더니 미국 네바다주와 연결된 전화기에서는 이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1974년 한국반도체주식회사를 세우고 국내 최초 반도체인 손목시계용 칩을 생산한 강기동(85) 박사였다. 시대 변화에 따라 재빠르게 제품을 생산한 한국과 수십 년간 한 소재를 연구해 기술력을 이룩한 일본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1등 제품만 팔리는 시대에 2등은 누구도 쳐다보지 않는다. 세계 1등을 하지 못하는 국산화는 공허하다"고 했다.
일본의 경제 보복에 맞서 온 나라가 '극일'을 외치고 있다. 특히 그동안 일본에 의존해온 소재·부품 산업을 국산화하자는 움직임이 크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다"는 것이 산업계와 학계 반응이다.
한국과 일본의 소재 산업 경쟁력 차이는 국민성으로 풀이할 수 있다. 장인 정신을 중시하는 일본은 한 분야를 천착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세계 최고가 되는 것을 중시한다. 오랜 시간과 자금을 투입해야 결과를 얻는 기초 화학·소재 산업이 발달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한때 전 세계 전자업계의 맹주였던 일본이 하루아침에 힘을 잃은 것도 이런 '모노즈쿠리(장인 정신을 기반으로 한 제조 문화)'로 설명할 수 있다. 일본은 100년간 고장 나지 않고 튼튼히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그 컴퓨터가 기술 발달로 5년 후엔 쓰레기가 된다는 현실을 외면했다. 그렇게 일본의 IT 제조업은 망했고 하나만 파고들던 소재 분야만 살아남았다.
한국은 반대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빠르게 성장한 한국은 '패스트 팔로어' 전략을 추구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좋은 부품과 소재를 사용해 빠르게 좋은 제품을 만들었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과 반도체는 그렇게 세계 1등이 됐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필요한 소재 산업은 제자리걸음이었다.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대한민국은 좋든 싫든 소재·부품 산업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이 움직임 속에서도 한국인의 '빨리빨리' 특성이 보인다. 정부는 1~5년 내 100가지 핵심 소재와 부품에 대한 국산화와 공급처 다변화를 완료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빨리빨리'만으로 진정한 국산화는 어렵다. 인내와 끈기를 갖고 기술력을 일군 일본의 모노즈쿠리가 필요하다. 현재의 일본산 소재를 따라잡는 데 5년이면 가능할지 모르지만, 이를 넘어서려면 더 많은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 일본산 소재보다 품질이 떨어지는 국산을 쓰는 건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모두가 죽는 길이다. 진정한 국산화로 가는 길은 반드시 세계 최고 품질이라는 다리를 건너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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