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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대기자의 퍼스펙티브] 트럼프의 INF조약 파기는 미·중 신냉전 신호탄

바람아님 2019. 8. 30. 08:24

중앙일보 2019.08.29. 00:07


대중 미사일 포위망 구축 위해
INF조약 족쇄 벗어던진 미국
한국에 미사일 배치 요구 가능성
철저한 대비로 제2의 사드 막아야

미·중의 동아시아 미사일 경쟁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미·소 냉전은 1991년 소련의 몰락으로 막을 내렸다. 훗날 역사가들은 2019년을 ‘제2의 냉전’이 시작된 해로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기존 패권국인 미국과 신흥 강국 중국이 전면적 무역전쟁과 함께 본격적인 군비경쟁에 들어간 해이기 때문이다. 그 핵심은 미사일이다.


이달 초 미국의 중거리핵전력(INF·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조약 공식 파기는 미·중 신(新)냉전 시대의 개막을 알린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 INF조약의 족쇄에서 풀려나기가 무섭게 미국은 중국과의 ‘미사일 격차(missile gap)’ 해소에 본격 돌입했다. 아시아 지역 패권을 확보하려는 중국과 이를 막으려는 미국의 미사일 경쟁은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 전체에 큰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INF조약의 정식 명칭은 ‘미·소 중·단거리 미사일 폐기에 관한 조약’이다. 1987년 12월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체결해 이듬해 6월 발효된 이 조약은 재래식 또는 핵 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사거리 500~5500㎞의 지상 발사 중·단거리 탄도 및 순항미사일의 생산·실험·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발효 후 3년에 걸쳐 미국 846기, 소련 1846기 등 2692기의 해당 미사일을 모두 폐기했다. 냉전 종식의 계기가 된 이 조약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군축 조약으로 평가받아 왔다.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와 미국이 INF조약에 발이 묶여 있는 동안 조약 당사국인 아닌 중국은 지상 발사 중·단거리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 보유고를 마음껏 늘려왔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는 미 태평양사령부 사령관 재임 시절 “중국이 INF조약에 가입했다면 중국이 보유한 미사일의 95%가 협정 위반이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러시아가 2017년 평균 사거리가 2500㎞에 이르는 SSC-8 순항미사일을 실전 배치한 것은 INF조약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조약 파기의 명분으로 삼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동아시아에서 중국 미사일 전력의 절대우위를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러시아를 핑계로 사실은 중국을 겨냥한 셈이다.


강대국 간 그레이트 게임의 승부처는 해양이다. 중국은 미 해상 전력의 접근을 막기 위해 다오렌(島鍊·Island Chain)이라는 가상의 선을 설정하고 이 선을 방어하는 전략에 주력해왔다. 중국 연안에서 약 1000㎞ 떨어져 있는 제1다오렌은 일본 열도-대만-필리핀-인도네시아-베트남으로 이어지는 선이다. 제2다오렌은 중국 연안에서 약 2000㎞ 거리인 오가사와라 제도-이오시마 제도-마리아나 제도-괌-팔라우 제도로 이어진다. 제1다오렌을 내해화(內海化)하고, 제2다오렌의 제해권을 확보하는 것이 다오렌 전략의 핵심목표다. 항공모함을 필두로 해군력을 대폭 강화하고, 남중국해에 인공섬을 만들어 군사기지를 구축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의 전략을 ‘반(反)접근(Anti Access)·지역거부(Area Denial)’(A2/AD)로 규정하고, 항모전단을 동원해 무력화하는 대응전략을 추진해왔다. 동·남중국해에서 벌여온 ‘항행의 자유’ 작전도 그 일환이다.


중국의 다오렌 전략을 떠받치는 핵심 수단은 미국의 항모전단과 동아시아 전진기지를 겨냥한 중거리 미사일이다. 실전 배치를 완료한 DF(東風·둥펑)-21D는 1800~3000㎞의 사거리를 가진 세계 최초의 대함탄도미사일(ASBM)이다. 움직이는 항공모함 격침을 주목적으로 개발됐기 때문에 ‘항공모함 킬러’로 불린다. 지상 목표도 공격할 수 있다. 일본 열도 전역과 오키나와 주일 미군기지가 사정권에 들어간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DF-21D의 개량형인 DF-26도 지난해 실전 배치했다. 사거리가 3000~4000㎞인 DF-26은 서태평양의 미 핵심전략기지인 괌을 타격할 수 있어 ‘괌 킬러’로 통한다. 최근 산둥반도에 실전 배치된 사거리 1000㎞의 DF-16은 평택 주한미군기지와 성주 사드(THAAD) 기지를 오차 범위 10m 이내에서 정밀타격할 수 있다. 중국 동남부 해안에 배치된 사거리 600~1000㎞의 DF-15 탄도미사일은 대만을 겨냥하고 있다. INF조약 탓에 미국과 러시아가 갖지 못한 지상 발사 중·단거리 미사일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같은 장거리 미사일까지 완벽하게 구비하고 있는 셈이다. 장난감 전문 프랜차이즈점인 ‘토이저러스(Toysrus)’에 빗대 중국을 ‘미사일저러스(Missilesrus)’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동안 미국은 중국의 중·단거리 미사일 위협에 INF조약이 예외로 인정해온 해상 및 공중 발사 미사일로 대처해 왔다. 하지만 해상 및 공중 발사 미사일은 임시 배치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안정적인 지상 발사 미사일과는 큰 차이가 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군사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미군이 파견하는 항공모함이나 잠수함, 구축함 또는 전략폭격기 등은 전개 후 철수가 원칙이다. 한 곳에 붙박이처럼 묶어둘 수 없어서다. 지상 발사 미사일은 한번 배치하면 영구적, 상시적 전력이 될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 중국과의 미사일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INF조약 파기가 불가피하다고 미국은 판단했을 것이다.


INF조약에서 탈퇴하자마자 미국은 중·단거리 미사일 개발과 배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은 INF를 탈퇴한 지 16일만인 지난 18일 사거리 500㎞의 순항미사일 발사 실험을 했다. 연내에 중·단거리 탄도 및 순항미사일 생산에 착수해 내년부터 아시아 지역 배치를 시작할 계획이다. 중국을 겨냥한 상시적이고 영구적인 미사일 포위망을 구축함으로써 미사일 전력에 기반을 둔 중국의 ‘반접근 지역거부’ 전략을 분쇄하겠다는 것이다. 이달 초 취임 후 첫 해외순방지로 아시아 동맹국들을 찾은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지상 발사 중·단거리 미사일을 아시아 지역 동맹국 및 파트너들과 협의해 배치할 계획임을 분명히 했다.


중국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미국이 아시아에 중거리미사일을 배치하면 중국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 일본, 호주 등에 미국의 미사일 배치를 허용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중국 관영 매체 환구시보는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총알받이가 되지 말라”며 “어느 나라든 미국의 미사일을 배치한다면 중국을 적으로 간주하는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평택 미군기지는 중국을 겨냥한 미사일 배치의 최적 후보지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런 만큼 미국이 평택 기지에 미사일 배치를 요구해올 가능성이 있다.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한 방어용 장비임에도 사드 배치 때 중국이 보인 패악적 행태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우물쭈물하다 실리도 명분도 다 잃은 사드 사태의 재판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와 대비가 필요하다.


미국은 동아시아에 배치하려는 미사일이 재래식이라고 하지만, 핵 탄두만 탑재하면 바로 핵 미사일이 될 수 있다. 미국이 배치를 요구해올 경우 우리 입장에선 북·미 간 비핵화 협상과 연결지어 생각할 수밖에 없다.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기 어렵지만, 비핵화 협상 실패에 대비한 선택지로는 검토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피력할 수 있을 것이다. 협상이 결국 실패로 끝나 북한의 핵 위협이 실제화하는 상황이 되면 핵 공유를 조건으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방법도 있다. 이 경우 중국도 무조건 반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중국의 궁극적 목표는 미국을 서태평양 밖으로 밀어내 배타적인 아시아 지역 패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밀어내려는 중국과 밀려나지 않으려는 미국의 치열한 수 싸움 속에 군비경쟁이 가속화하면서 그 불똥이 동아시아 곳곳으로 튈 것이다.


배명복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