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끝 ‘리쇼어링’
어느 날 퓰리처상을 3번이나 수상한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골프장에서 첫 스윙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처음 온 그에게 파트너가 친절히 티샷의 방향을 일러줬습니다. 멀리 보이는 휴렛팩커드 건물과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빌딩 사이로 티오프를 하라는 거였죠. 그러면서 두 건물 사이엔 조만간 골드만삭스가 입주할 거라고 설명했습니다.
2005년 프리드먼이 쓴 『The World is Flat』은 이처럼 그가 도심 근처의 골프장에서 첫 티샷을 하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미국 기업의 간판이 즐비한 그곳은 뉴욕도, 샌프란시스코도 아닌 인도의 방갈로르였다는 설명과 함께 말이죠. 프리드먼은 “세계화와 아웃소싱으로 세상이 평평해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30년간 글로벌화의 바람을 타고 선진국들은 해외투자를 확대하며 인건비를 아끼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습니다. 개발도상국은 새로운 산업을 유치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기술을 이전받아 자생력을 키웠죠. 그러면서 국가 간 교역량은 늘고 세계는 평평해져 갔습니다. 냉전 이후 전 세계가 함께 성장하고 그 안에서 번영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자유무역 시스템과 경제적 통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울어지는 세계
그런데 평평해지던 세계가 이젠 다시 기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앞 다퉈 해외 공장을 짓고 외국 회사에 투자했던 글로벌 기업들이 자국으로 유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미국과 독일, 일본 등 선진국의 기업들이 해외 생산설비를 철수하고 국내 생산량을 늘리는데 앞장서고 있죠. 이른바 리쇼어링(reshoring)입니다. 해외 아웃소싱을 늘리는 오프쇼어링에 반대되는 말입니다. 여기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가 미국이고요.
흔히 리쇼어링하면 도널드 트럼프의 2016년 선거 캠페인을 떠올립니다. 그는 러스트벨트(오하이오·펜실베이니아 등 북동부 공장지대)의 표심을 잡기 위해 제조업 부활을 공약했죠. 그러곤 글로벌 기업들에게 국내 투자를 압박했습니다. 실제로 트럼프는 애플의 위탁생산업체인 폭스콘이 위스콘신 공장에 100억 달러를 투자해 1만3000명을 고용키로 한 것을 큰 업적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폭스콘의 미국 투자는 1990년 워싱턴 컨센서스 이후 진행된 세계화의 흐름에 비춰보면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중국과 동남아시아가 아닌 미국에 대규모의 새로운 생산설비를 투자하는 것은, ‘인건비가 저렴한 나라에 공장을 짓는다’는 세계화의 원칙과 배치되기 때문이죠. 미국의 비즈니스 저널리스트 찰스 피쉬맨은 “1990년대 오프쇼어링을 촉발했던 세계화의 힘이 이제는 거꾸로 리쇼어링을 이끌고 있다”고 말합니다.
유턴하는 초국적기업들
실제로 중국과 멕시코로 떠났던 기업들이 속속 자국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 간 포드의 픽업트럭 라인은 오하이오 주로, 상업용 밴은 미주리 주로 이전했습니다. GE도 냉장고와 온수기 등 가전제품 생산라인을 중국에서 옮겨 왔고요. 심지어 외국 기업의 미국 투자도 대폭 늘고 있죠. 지난 5월 롯데의 신동빈 회장은 루이지애나 주에 31억 달러를 투자해 연간 100만t의 에틸렌 생산 설비를 갖춘 것을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면담까지 했습니다.
이런 흐름은 미국뿐 아니라 다른 제조업 선진국도 마찬가집니다. 일본의 닛산은 올해 최신형 SUV 차량 ‘엑스트레일’ 생산라인을 외국에서 규슈 공장으로 이전했습니다. 도요타도 2015년 ‘렉서스RX’ 공장을 후쿠오카로 옮겨 왔으며 2017년에는 해외 생산하던 ‘캠리’의 10만 대 물량을 아이치현 공장으로 이전했습니다. 이탈리아의 패션 브랜드인 베네통, 보테가 베네타도 중국·베트남 등지의 생산 공장을 자국으로 옮겼고, 독일의 아디다스는 사물인터넷 등 최신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생산라인을 국내에 마련했습니다.
이처럼 세계화의 핵심이었던 오프쇼어링이 주춤하고 그 반대인 리쇼어링이 늘고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자유무역과 개방경제로 세계를 하나로 묶었던 글로벌 질서가 선진국을 중심으로 깨지기 시작한 것은 왜일까요?
세계화 무너뜨리는 일본의 경제도발
최근 빚어지고 있는 한일 경제 갈등도 이런 ‘역세계화’ 현상과 관련이 없지 않습니다. 일본의 도발은 단순히 한국에만 막대한 피해를 끼치는 게 아니라 자유무역 시스템 아래 유지돼온 글로벌 분업 체제를 허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일본의 도발은 세계 무역질서를 흔드는 트럼프의 경제전쟁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오늘날 선진국을 중심으로 빚어지고 있는 리쇼어링은 단순히 일시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어쩌면 지난 30년간 우리가 누려왔던 세계화의 흐름이 뒤바뀌는 전조일 수도 있습니다. 개방과 협업을 기치로 유지됐던 자유무역질서가 균열되면,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에는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역세계화’의 전조로 읽히는 리쇼어링 현상을 면밀히 살펴봐야 합니다. 오늘 ‘인간혁명’은 리쇼어링에 가장 적극적인 미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세계경제의 새로운 질서가 어떻게 재편돼 가고 있는지 따져보도록 하겠습니다. 변해가는 국제정치경제 시스템 아래 한국은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 함께 고민해 보시죠.
세계화의 첨병 오프쇼어링
토마스 프리드먼에 따르면 인류 역사상 ‘세계화’는 총 3번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1492년부터 1800년 전후까지의 시기입니다.
두 번째는 그 이후부터 대략 2000년까지로, 1·2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잠시 주춤하긴 했지만 큰 흐름에서는 기술의 발전으로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세계화의 주체는 초국적기업이었습니다. 기업은 새로운 시장과 노동력을 찾아 끊임없이 세계를 확장했죠. 그러면서 인건비가 싼 나라로 국경을 넘었고 오늘날처럼 전 세계에 퍼졌습니다.
세 번째는 2000년 이후입니다. 이때는 IT기술의 발달로 세계가 더욱 평평해졌습니다. 특히 인터넷의 발전은 개개인을 하나로 연결했습니다. 하나가 된 세계에선 “미국 고객을 대상으로 한 콜센터 업무가 인도에서 이뤄지는 것”(프리드먼, 『The World is Flat』)과 같은 오프쇼어링이 확산됐습니다.
앞 다퉈 개도국으로
이 시기의 기업들은 앞을 다퉈 저개발국가에 생산 공장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 덕분에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30년 사이에 어마어마한 외국인직접투자(FDI)를 유치했죠.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경우 FDI 순 유입액은 1980년 10억 달러(USD)에서 2017년 2645억 달러로 급증했습니다. 중앙·라틴아메리카도 같은 기간 60억 달러에서 1463억 달러로 늘었고요.
특히 중국은 개방 정책 이후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며 미국을 포함한 수많은 나라들의 생산라인을 유치했습니다. 초국적기업들은 1980년대를 시작으로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해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했고, 저렴해진 운송비 때문에 이곳에서 생산한 제품을 미국과 유럽으로 수출하는 것이 효율적이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글로벌 생산네트워크로 연결됐습니다.
선진국의 소외된 노동자들
그러나 선진국의 노동자들은 오프쇼어링으로 피해를 봤습니다. 공장들이 개도국으로 넘어가면서 제조업 기반이 약해지고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사라졌죠. 자국 산업은 활력을 잃고 안정적인 고용창출도 어려워졌습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생산기지가 떠나면서 세입이 감소해 재정적 문제도 떠안게 됐습니다. 결국 일자리 감소와 세수 부족, 인프라 투자 저하 등의 악순환이 생기면서 오프쇼어링은 선진국의 새로운 위기로 부상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앤디 그로브 전 인텔 CEO는 “공장들이 해외로 떠날수록 미국의 혁신 기회는 줄어들고 일자리도 감소한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면서 “배터리 산업에서 겪었던 것처럼 오늘의 상품 제조를 포기하면 미래에 부상할 산업까지 스스로 차단하는 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리쇼어링의 시작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해외로 떠났던 기업들이 자국으로 돌아오는 리쇼어링 현상이 나타난 거죠. 이유는 두 가집니다. 첫 번째는 경제적 측면에서 개도국의 저렴한 인건비 혜택을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됐다는 겁니다. 두 번째는 정치적 측면에서 미국 행정부가 의도적으로 리쇼어링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는 점이죠.
보통 지난 미국 대선에서 러스트벨트에서의 선거 캠페인 때문에 리쇼어링이 트럼프의 업적으로 오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리쇼어링을 처음 정책에 도입하고 의회를 설득해 법안까지 제정한 사람은 오바마입니다.
한 동안 국내에선 자국의 제조업을 살리기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노력이 지지기반을 공고하게 만들기 위한 선거 전략의 하나로만 인식됐습니다. 그러나 제조업 강화와 이를 통한 리쇼어링은 원래 오바마 행정부의 작품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블루칼라의 지지를 얻기 위한 트럼프의 선거 전략만이 아니었다는 이야기죠.
그렇다면 오바마는 미국의 제조업을 살리고 기업들의 국내 복귀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요. 또 트럼프는 어떻게 오바마의 정책을 계승했을까요?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 주 인간혁명에서 자세히 살펴봅니다.
#이번주 인간혁명은 월간중앙 10월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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