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과천과학관에서 개최 중인 파라오 투탕카멘전(展)은 놀라움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고대 이집트의 전성기였던 18왕조의 마지막 파라오로서 18세에 사망한 투탕카멘의 피라미드에서는 고고학 역사상 최대의 수확 중 하나라 할 만큼 눈부신 보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거대한 사당(祠堂) 속에 몇 개의 작은 사당들이 중첩되어 있고 그 한가운데에 위치한 황금관 속에 빛나는 황금 마스크를 쓴 미라가 누워 있다. 전실과 별실, '보물의 방'과 현실(玄室)에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물품들이 채워져 있다. 이 엄청난 것들이 모두 한 소년 파라오의 내세의 행복을 빌기 위한 일이었다는 것이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들 지경이다.
이집트 문명에 대해서는 흔히 놓치기 쉬운 한 가지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헤브루나 고대 그리스 문명은 오늘날까지도 계속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고대 이집트 문명은 아주 오래전에 이미 단절되어 버렸다. 오시리스나 아누비스 같은 신들은 단지 머나먼 과거의 존재에 불과할 뿐, 오늘날 그 누구도 이 신들에게 의탁하지 않는다. 우리는 신비에 둘러싸인 이집트 문명 앞에 그저 경탄할 뿐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 독일의 이집트 학자 얀 아스만(Jan Assmann)은 고대 이집트가 '차가운 사회'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뜨거운 사회'가 변화를 수용하는 사회라면 '차가운 사회'는 역사의 변전(變轉)이 불러오는 모든 변화를 거부하고 무화(無化)시켜 버리는 사회이다. 이를 달리 설명하면 이렇게 된다. 모든 문명·문화는 글로 쓴 것이든 아니든 그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중심 '텍스트들' 위에 성립된다. 그런데 이집트 같은 곳에서는 이 텍스트를 완벽한 정전(正典, canon)으로 만든 다음 이에 대해 한 치의 변화도 허락치 않으려 한다. 반면 헤브루 문화권이나 고대 그리스 같은 곳에서는 텍스트를 성립시킨 다음 그것을 주석과 주해의 기반으로 삼는다. 이렇게 문명 텍스트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재해석을 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혁신이 일어난다. 반면 이집트처럼 주석과 주해를 거부하는 문명권에서는 한번 정립된 진리는 시간을 초월한 영속성을 누리며 단지 반복되고 숭배될 뿐이다. 그 결과 역사 발전에 대해 문을 닫아걸어 결국 자기 스스로 갇혀 버린 세계가 되고 만다.
화장품, 보드게임, 무기, 악기, 유리컵, 필기구, 면도날, 횃불, 심지어 응급치료 키트에 이르기까지 사후(死後) 삶의 준비를 철저히 한 투탕카멘은 이 세상 너머 존재하는 영원의 세계를 침착하게 응시하는 듯하다.
이집트 문명에 대해서는 흔히 놓치기 쉬운 한 가지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헤브루나 고대 그리스 문명은 오늘날까지도 계속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고대 이집트 문명은 아주 오래전에 이미 단절되어 버렸다. 오시리스나 아누비스 같은 신들은 단지 머나먼 과거의 존재에 불과할 뿐, 오늘날 그 누구도 이 신들에게 의탁하지 않는다. 우리는 신비에 둘러싸인 이집트 문명 앞에 그저 경탄할 뿐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 독일의 이집트 학자 얀 아스만(Jan Assmann)은 고대 이집트가 '차가운 사회'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뜨거운 사회'가 변화를 수용하는 사회라면 '차가운 사회'는 역사의 변전(變轉)이 불러오는 모든 변화를 거부하고 무화(無化)시켜 버리는 사회이다. 이를 달리 설명하면 이렇게 된다. 모든 문명·문화는 글로 쓴 것이든 아니든 그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중심 '텍스트들' 위에 성립된다. 그런데 이집트 같은 곳에서는 이 텍스트를 완벽한 정전(正典, canon)으로 만든 다음 이에 대해 한 치의 변화도 허락치 않으려 한다. 반면 헤브루 문화권이나 고대 그리스 같은 곳에서는 텍스트를 성립시킨 다음 그것을 주석과 주해의 기반으로 삼는다. 이렇게 문명 텍스트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재해석을 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혁신이 일어난다. 반면 이집트처럼 주석과 주해를 거부하는 문명권에서는 한번 정립된 진리는 시간을 초월한 영속성을 누리며 단지 반복되고 숭배될 뿐이다. 그 결과 역사 발전에 대해 문을 닫아걸어 결국 자기 스스로 갇혀 버린 세계가 되고 만다.
화장품, 보드게임, 무기, 악기, 유리컵, 필기구, 면도날, 횃불, 심지어 응급치료 키트에 이르기까지 사후(死後) 삶의 준비를 철저히 한 투탕카멘은 이 세상 너머 존재하는 영원의 세계를 침착하게 응시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