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9일에 열린 윌리엄 왕세손과 케이트 미들턴의 '세기의 결혼'이 따라 하기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케이트 미들턴이 들었던 은방울꽃 부케와 똑같은 걸 만들어달라는 주문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비싸기로 유명한 은방울꽃을 네덜란드에서 공수하여 만들고 있단다. 우리나라의 예비 신부들이 특별히 많이 찾는 것 중의 하나는 로열 웨딩의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웨지우드 도자기라고 한다. 우리나라 대형 백화점들의 지난달 웨지우드 판매가 최고 세 배까지 늘었단다.
웨지우드가 잘 팔린다니 왠지 지하에 계실 다윈 선생님이 흐뭇해하실 것 같다. '종의 기원'의 저자이자 자연선택론을 창시한 진화생물학자 찰스 다윈은 바로 웨지우드 집안의 사위이다. 다윈의 부인 에마는 당시 웨지우드 집안의 막내딸이었다. 학자는 모름지기 청빈해야 한다고 믿는 분들에게는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다윈은 뜻밖에도 요즘 말로 하면 이른바 재테크에 귀재를 발휘했다. 우생학으로 '악명'이 높은 유전학자 골턴(Francis Galton)이 당시 유명인들에게 돌린 설문지의 맨 마지막 질문이 "만일 당신에게 특별한 재능이 있다면?" 하고 묻는 것이었는데, 흥미롭게도 다윈은 연구나 집필보다도 사업과 재무에 재주가 있다고 대답했다. 그는 비글호에 승선하여 자연학자로 일한 걸 제외하면 평생 이렇다 할 직업을 가지지도 않았다.
다윈은 에마와 결혼할 때 당시 잘나가던 의사였던 아버지와 웨지우드의 소유주였던 장인이 마련해준 '결혼지참금'을 탁월하게 운용하여 평생토록 가족에게 안정적인 삶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결혼 당시 받은 돈보다 훨씬 큰 금액을 부인과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떠났다. 그가 1881년까지 인세로 번 돈이 1만248파운드였으니 요즘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거의 50만 파운드, 즉 9억원쯤 된다. 이처럼 다윈은 인세로도 상당한 돈을 챙겼지만 무엇보다도 투자의 귀재였다. 특히 철도회사에 투자한 것은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사상은 다분히 좌파 성향이었지만 그는 요즘 말로 하면 '강남좌파'의 전형인 셈이다. 뉴턴경제학의 시대가 저물고 바야흐로 다윈경제학의 시대가 열린 이때 그가 만일 살아 있다면 '버핏과의 점심'이 아니라 '다윈과의 점심'으로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출처-조선일보 2011.06.20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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