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人文,社會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115] 어감

바람아님 2014. 1. 8. 09:51

(출처-조선일보 2011.06.13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아 다르고 어 다르단다.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르다"라고도 하는데, 우리말은 정말 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확연히 달라진다. 알록달록 예쁜 색동저고리를 얼룩덜룩하다고 하면 졸지에 지저분해진다. 추녀 끝에 풍경이 찰랑이는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리 없다. 늠름한 산봉우리를 '산봉오리'라 부르면 별로 오르고 싶지 않을 것이고, 반대로 꽃봉오리를 '꽃봉우리'라고 하면 예쁜 맛이 싹 사라진다.

할리우드의 여배우 조디 포스터는 아이를 둘씩이나 키우면서 아빠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는다. 남의 도움 없이도 홀로 너끈히 키울 수 있기 때문에 골치 아프게 지아비를 섬기는 일은 사양하고 엄마로서의 행복만 만끽하는 것이다. 그를 미혼모라고 부르면 왠지 어색하다. 미혼모라는 단어는 어딘지 모르게 결혼을 하고 싶으나 능력이나 여건이 되지 않아 못한 여성만을 일컫는 것 같다. 미혼모보다 '비혼모'라고 부르면 혹시 여성의 의지가 좀 더 중요하게 부각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대한민국 현행법은 이중국적자를 허용하지 않는다. 병역 문제가 국민 모두에게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 버려 만 18세가 되었어도 외국 국적을 보유하면 거의 이중간첩 수준의 눈총을 받는다. 전례 없는 저출산 시대에 선진국들은 국가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범국가적으로 인재를 영입하고 있는데, 우리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서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며 체념하는 것 같다. 우리는 언제나 당당하게 '복수국적자'를 품을 수 있으려나?

이른바 '반값 등록금' 때문에 학생들이 또다시 촛불을 들었다. 누가 작명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반값 등록금'이란 표현이 영 맘에 들지 않는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통 큰" 어쩌고 하며 물건값을 깎아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싫다. 나는 반값 정도가 아니라 학생들은 아예 등록금 걱정일랑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버드 대학은 학생들을 일단 성적과 재능으로만 선발한 후 가정의 재정 능력을 감안하여 학교와 부모가 등록금 부담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 결정한다. 부모는 휘는 허리가 꺾이지 않도록 버텨주고 학생은 오로지 학업에만 매진하면 된다. '반값'이라는 달콤한 어감에 휘둘려 교육의 가격만 운운할 게 아니라 우리 대학 교육의 진짜 값어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