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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147] 록펠러

바람아님 2014. 1. 7. 11:24

(출처-조선일보 2012.01.27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록펠러(1839~1937)는 역사상 최고 부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19세기 중엽, 냄새가 고약하고 연기가 많이 나는 연료인 석유를 분별 증류하면 가스·나프타·가솔린·등유·윤활유 등 다양한 물질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업 가능성을 확인한 록펠러는 정유 사업에 뛰어들어 '스탠더드 오일'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그의 사업 방식은 효율성과 잔인성을 겸비한 무자비한 공격의 연속이었다. 때로는 순전히 경쟁자들을 축출하기 위해 원가 아래로 가격을 낮추어 다른 정유 업소들을 잡아먹었다.

특히 1870년에 공급과잉으로 석유가격이 폭락하자 그는 흔들리는 경쟁사들을 모조리 사들였다. 1882년에 이르면 40여개의 독립적인 기업들을 모아 최초의 트러스트(동일산업 부문에서 자본의 결합을 통해 결성한 독점적 기업결합)를 형성했다. 이처럼 석유업계를 독점적으로 지배한 후 엄청난 이익을 차지했지만, 그러는 동안 입법부를 매수하고 광산 노동자의 파업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면서 많은 사상자를 내기도 했다. 그가 미국인들이 가장 증오하는 인물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의 인생이 바뀐 것은 불치병으로 1년 이상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은 55세 때의 일이다. 최후의 검진을 받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 길에 그는 로비에 걸린 액자의 글을 보았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더 복되다.' 그는 이 순간에 엄청난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마침 이때 입원 수속 카운터 앞에서 병든 소녀를 데리고 온 어머니가 입원비가 없어 울며 애걸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비서에게 입원비를 대신 내주게 하고 이를 비밀에 부쳤다. 얼마 후 소녀는 기적처럼 회복되었다. 그는 후일 자서전에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삶이 있는지 몰랐다"고 썼다.

이후 그는 자선가로 변신했다. 그는 침례교 교회에 기부를 늘리고, 명문 시카고대학을 세웠으며, 1913년에는 '전 세계 인류의 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해'록펠러 재단을 설립했다. 남의 돈을 빼앗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며 산 삶보다 베풀면서 산 삶이 더 행복했다고 록펠러는 말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강한 이유는 젊어서 못된 일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이다.

마치 가난한 시골 부모가 다른 자식들 놔두고 맏아들에게만 집 팔고 소 팔아 대학 교육을 시켜준 것처럼, 우리의 대기업들 역시 국가의 특혜를 받아 성공한 측면이 강하다. 그에 대한 합당한 의무를 다할 것을 촉구하는 유진수 교수의 책 '가난한 집 맏아들'에 나오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