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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148] 다이아몬드

바람아님 2014. 1. 8. 09:57

(출처-조선일보 2012.02.03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다이아몬드가 중산층 자녀의 결혼식 예물 반지로 쓰일 정도로 일반화된 것은 19세기 후반에 남아프리카에서 거대한 다이아몬드 광상(鑛床)들이 잇따라 발견된 이후의 일이다. 그 이전에는 다이아몬드가 지금보다 훨씬 귀한 물품이어서 왕족이나 최고위 귀족들만 소유했고, 그 용도도 장식용이라기보다는 사악한 힘을 물리쳐 주는 호신용 부적의 성격이 강했다. 금강경(金剛經, 영어로 Diamond Sutra)의 이름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런 다이아몬드가 일반인들의 수중에까지 들어가려면 우선 다이아몬드 원석이 많이 나야 한다. 원래 다이아몬드 주산지는 인도였다. 포르투갈 상인들이 인도의 다이아몬드를 유럽에 들여오면 유대인 상인들이 이를 가공하여 판매했다. 그러다가 이들이 이베리아에서 종교적 이유로 축출된 후에는 벨기에네덜란드, 혹은 영국으로 옮겨가 이런 곳들이 새로운 다이아몬드 거래 중심지로 떠올랐다.

다이아몬드의 역사가 바뀐 중요한 계기는 1866년 남아프리카의 킴벌리 인근 오렌지 강 연안에서 에라스무스 야콥스라는 한 보어인(네덜란드계 농민) 아이가 빛나는 돌멩이 하나를 주운 일이었다. 이 돌이 21캐럿의 다이아몬드 원석으로 판명나면서 이 지역에 다이아몬드 러시가 일어났다. 다른 다이아몬드 산지와 달리 이곳에서는 다이아몬드가 누런 진흙 속에 파묻혀 있어서 사람들은 원석을 캐기 위해 땅을 파들어갔다. 1871년부터 1914년까지 5만 명의 광부들이 삽과 곡괭이로 땅을 파서 2722㎏의 다이아몬드를 캐냈다. 1캐럿이 0.2그램이므로 이는 136만 캐럿에 해당한다. 그러는 동안 직경 463m에 깊이가 200m가 넘는 빅 홀(Big Hole)이라는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 인간이 손으로 파서 만든 세계 최대의 구멍이라는 빅 홀은 다이아몬드를 향한 인간의 탐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된 다이아몬드 원석 중 가장 유명한 것은 3106.75캐럿의 컬리넌(Cullinan) 다이아몬드이다. 이 원석에서 잘라낸 530캐럿짜리 보석(일명 '아프리카의 큰 별')은 영국 국왕의 석장(錫杖)에 붙어 있고, 317캐럿의 보석(일명 '아프리카의 작은 별')은 왕관에 붙어 있다. 사실 영국이 잔혹한 보어전쟁을 일으키며 남아프리카에서 식민지 지배를 확대한 것도 다이아몬드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19세기에 영국 정부의 비호하에 운영되던 드 비어스 회사는 오늘날까지 세계의 다이아몬드 거래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오늘날 다이아몬드는 사악한 힘을 막아주기는커녕 흔히 세상을 어지럽히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