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가슴으로 읽는 한시 - 산중의 눈 오는 밤

바람아님 2014. 1. 17. 09:19

(출처-조선일보 2014.01.17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산중의 눈 오는 밤                        山中雪夜(산중설야)


종이 이불 오싹하고                            紙被生寒佛燈暗(지피생한불등암)
호롱불은 침침하다.

동자승은 밤이 새도록                        
沙彌一夜不鳴鐘(사미일야불명종)
새벽종을 치지 않는다.

자던 손님이 문 일찍 연다고                
應嗔宿客開門早(응진숙객개문조)
동자승이야 투덜대건 말건

암자 앞의 눈 덮인 소나무는                
要看庵前雪壓松(요간암전설압송)
놓치지 않고 꼭 봐야 하겠네.

                                                             -이제현(李齊賢·1287∼1367)


고려 말의 큰 학자이자 정치가인 익재(益齋) 이제현(李齊

賢·1287∼1367)이 겨울철 산사를 찾았다. 때마침 큰 눈이 

내려 산은 온통 눈에 뒤덮이고 날은 되게 추워졌다. 산중

의 찬 공기에 낯선 잠자리, 게다가 밖에는 큰 눈이 온다. 

밤새 뒤척이며 잠을 설쳤다. 눈이 쌓인 산속 풍경은 얼마

나 멋질까? 가슴은 두근두근 조바심이 나서 견딜 수 없다. 

익재가 일어나면 동자승도 따라 일어나야 하는 법. "왜 꼭

두새벽부터 일어나 귀찮게 한담!"잠 덜 깬 동자승의 푸념

들릴 듯하다. 그래도 좋다. 누가 뭐래도 산속 설경을 내가 

처음 대면하리라! 그 멋진 설경도 대수롭지 않은 동자승의 천진난만함 덕분에 익재의 설경 감상이 한층 운치가 생겼다. 인간미가 넘치는 설경산수도(雪景山水圖) 한폭이다. 

지금도 어느 산중에서는 익재가 본 풍경이 펼쳐질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