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사이언스 2019.12.26. 03:00
상상을 초월하는 계산 속도를 자랑하는 양자컴퓨터 개발 경쟁이 뜨거운 가운데 유력한 구현 기술 중 하나인 반도체 기반 양자컴퓨터를 실현시킬 새 기술이 개발됐다. 복잡한 연산이 가능한 반도체 기반 양자컴퓨터를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제이슨 페타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팀은 양자컴퓨터의 핵심인 정보단위 ‘양자비트(큐비트)’를 반도체 양자점(퀀텀닷)을 이용해 만든 뒤, 두 큐비트를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시키고 빛 입자(광자)를 이용해 둘 사이에 양자적 연관성(얽힘)을 부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 국제학술지 ‘네이처’ 25일 공개했다.
양자컴퓨터는 전자나 이온 등 입자(양자)를 개별적으로 통제해, 이들이 갖는 양자역학적 성질을 이용해 연산을 하는 차세대 컴퓨터다. 우리가 사는 일반적인 거시세계의 디지털 컴퓨터는 전류가 흐를 때와 흐르지 않을 때 등 0과 1로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상태를 이용해 정보를 처리한다. 이와 달리 양자 컴퓨터는 한 개의 양자가 관측되기 전까지 0이기도 하고 1이기도 한 이상한 성질(중첩)을 이용해 빠르게 정보를 처리한다. 디지털 컴퓨터에서 두 개의 비트를 갖고 정보를 처리하면 00, 01, 10, 11 네 개의 정보 가운데 하나만 표현하고 처리할 수 있지만, 두 개의 큐비트를 이용하면 네 정보를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다. 일종의 병렬연산을 통해 빠르게 계산을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양자를 물리적으로 포획해 오래 유지하는 기술, 정보를 제어하고 읽는 기술 등이 필요하다. 큐비트를 여럿 운영할수록 빠르고 복잡한 연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여러 큐비트를 만들고 유지하며 제어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이들 사이에 양자적 연관성을 부여하는 ‘얽힘’도 반드시 필요하다.
페타 교수팀은 2010년부터 반도체 기반 양자컴퓨터 기술을 연구하며 얽힘을 구현하기 위한 기반 기술을 연구해 왔다. 김도헌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양자역학에서 이미 얽혀 있는 상태는 시공간의 제약이 없지만, 얽혀 있지 않은 상태를 얽히게 하려면 어떤 형태로든 물리적인 상호작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공간적 제약이 있다"며 "가까운 큐비트 사이에서는 직접적인 상호작용이 있지만, 멀 때는 광자 등을 매개로 해 구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페타 교수팀은 바로 이렇게 광자를 이용해 얽힘을 만들 가능성을 밝히고, 실제로 큐비트와 광자 사이에 상호작용이 가능한지 보이는 연구를 했다.
하지만 멀리 떨어진 전자 두 개를 놓고 하나의 광자를 이용해 상호작용이 가능한지 보이는 데에는 그 동안 성공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실리콘과 저마늄 등 반도체를 이용해 전자를 가둘 수 있는 양자점을 만들고 이 안에서 전자 두 개를 광자 하나와 상호작용시키는 데 처음 성공했다. 연구팀은 마치 두 개의 우물을 연달아 놓은 것처럼 두 개의 양자점을 나란히 배치한 뒤, 그 안에 두 개의 전자를 가뒀다. 둘은 쌀 한 톨 길이인 약 4m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사람에게는 짧은 거리지만 작은 전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먼 거리다. 연구팀은 “전자를 집 한 채 크기로 비유했을 때두 집이 약 1200km 떨어진 것과 비슷한 원거리”라고 설명했다. 1200km는 서울에서 일본 도쿄까지의 거리보다 멀다.
이후 이 두 전자가 지닌 회전 양자역학 성질인 스핀 정보를 광자를 이용해 상호연결(interconnect)시켰다. 마이크로파 주파수로 진동하는 광자 하나를 이용해, 마치 광통신을 하듯 전자 두 개가 광자를 매개로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게 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양자컴퓨터 전문가인 제임스 클라크 인텔 양자하드웨어팀 디렉터는 “여러 개의 큐비트 사이의 ‘상호연결성’ 구현은 큰 규모의 양자컴퓨터를 개발할 때 큰 걸림돌이었다”며 “이번 연구로 스핀 큐비트를 원거리에서도 서로 얽히게 해 제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였다”고 평했다. 역시 연구에 관여하지 않은 젤레나 뷰코빅 미국 스탠퍼드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모듈형 양자컴퓨터나 양자 네트워크를 만들 때 필수적인 기술”이라며 “특히 실리콘과 저마늄이라는 오늘날 반도체 산업에서 널리 쓰이는 물질을 이용해 실현시켜 저렴하면서 다방면에 쓰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도헌 교수는 "이번 연구는 멀리 떨어진 두 스핀 큐비트를 얽힘 상태로 만들 수 있는 광자를 매개로 한 상호작용이 있다는 것을 처음 보인 것이지, 이를 이용해 얽힘 상태를 구현한 것은 아니다"라며 "실제로 장거리 얽힘 상태를 반도체에서 구현하는 것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미래에는 밀집한 큐비트 수십~수백 개가 한 단위(양자노드)가 돼 이 안에서는 인접한 큐비트 사이의 직접 상호작용을 이용해 얽힘 상태를 만들고, 멀리 떨어진 양자노드 사이에는 광자를 매개로 해 얽힘을 만드는 방식이 사용될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두 방식 모두 발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양자컴퓨터에서 큐비트를 구현하기 위한 방식으로는 반도체 양자점 외에 초전도 회로를 이용하는 방법과 이온을 전기장 등으로 가두고 제어하는 이온덫(이온트랩) 방식, 다이아몬드 내부의 구조적 결함을 이용하는 방식 등이 있다. 가장 연구가 많이 된 방식은 초전도 회로 방식으로, 지난 10월 세계 최초로 특정 과제에서 현존 최고 슈퍼컴퓨터의 성능을 능가한 양자컴퓨터를 개발한 구글과 IBM이 이 방식을 연구하고 있다. 구글은 인접한 큐비트 사이의 직접 상호작용을 이용하고, IBM은 이번 실험처럼 광자를 매개로 한 얽힘을 이용한다.
반도체 기반 양자컴퓨터는 초전도 회로방식보다는 발전이 더뎌 아직 수 큐비트 이상을 성공시키지 못했지만, 성공할 경우 현재의 반도체 산업 기반을 활용할 수 있어 파급력이 클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윤신영 기자 ashill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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