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박정훈 칼럼] 2년 뒤가 두려울 自害 국정의 부역자들

바람아님 2020. 1. 3. 14:40

(조선일보 2020.01.03 박정훈 논설실장)


정책 판단이 성역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너무도 많은 공직자들이 정책이란 방패 뒤에 숨어
나라 망치는 부실 국정의 부역자 노릇을 하고 있다


박정훈 논설실장박정훈 논설실장


형법상 배임죄는 ①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②임무를 배신해 ③재산상 이익을 취함으로써

④타인에게 손해를 끼치는 범죄다(355조 2항).

월성 1호기 폐쇄는 이 범죄의 구성 요건에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멀쩡한 원전을 고철로 만들어 수리비 7000억원을 날리고 수조원 손실을 초래하게 했다.

안전성에서 흠을 못 찾자 경제성이 없다는 억지 논리를 만들고 수치·자료 왜곡까지 서슴지 않았다.

①원전 운영을 위임받은 한수원 경영진이 ②선량한 관리 의무를 배반하고 ③자리를 보장받기 위해

④주주·국민에게 천문학적 손해를 입혔다. 빼도 박도 못할 배임죄다.


이들에게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로부터 원전 폐쇄를 강요받았음을 입증하는 방법이 있다.

한수원 사장은 "(탈원전) 정책에 따른 불가피한 결정"이라 했다. 정부가 억지로 팔 비튼 게 100%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면 탈원전 정책을 세우고 집행한 담당 라인의 공무원들이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산업부 장차관과 에너지정책실·국장, 청와대 경제수석과 산업비서관 등이 그 대상일 것이다.

이들 중 누군가가 한수원을 압박해 경영권 행사를 방해했다면 명백한 직권 남용죄다(형법 123조).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면 줄줄이 감옥에 가야 할 판이다.


이 공직자들은 '정책은 사법 처리 대상이 아니다'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을 것이다.

90년대 말 IMF 환란 주범으로 몰린 강경식·김인호 두 관료가 무죄 판결을 받지 않았냐는 것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당시 두 사람이 무죄가 된 것은 '정책 판단은 성역'이란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보고 누락이나 업무 인계 소홀 등의 직무유기 사실이 없었음을 법정에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고의성 있는 정책 폭주는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국익 손실이나 부작용을 알고도 정책을 강행했다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정부는 앞 정권의 국정교과서 업무를 담당했다는 이유만으로 교육부 관리들을 무더기 수사 의뢰했다.

정책 판단이 무조건 면책 특권은 아님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지금 너무도 많은 공직자가 '정책 판단'이란 방패 뒤에 숨어 국가에 해를 끼치고 있다.

정책 업무는 단죄받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져 자해(自害) 국정의 부역자 역할에 앞장서고 있다.

원전 산업을 궤멸시키고 미래의 핵무장 기반까지 무너트리는 탈원전 폭주, 일자리를 없애고 빈부 격차를 확대시키는

소득 주도 성장, 연구소마저 불 꺼진 사무실로 만든 과도한 주 52시간제, 재정만 낭비하는 흥청망청 세금 뿌리기,

지방대가 남아도는데 1조여원 들여 한전공대 짓기 등등 그 예는 헤아릴 수조차 없다.


공직자가 선의(善意)라면 결과적으로 잘못됐더라도 문제 되지 않는다.

그러나 부작용과 오류를 뻔히 알면서도 잘못된 정책을 추진했다면 고의적 직무유기다.

지금 펼쳐지는 일련의 자해 정책 중 어느 것 하나 국익 손실이 명백하지 않은 것이 없다.

온갖 통계와 지표, 객관적 사실들이 정책 오류에 따른 부작용을 말해주고 있다.

담당 공무원이 모르려야 모를 수 없다. 그

런데도 오류를 시정해야 할 직무상 의무를 방기(放棄)했다면 형법상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122조)


IMF 환란 사건 때 검찰이 부총리·경제수석을 기소한 핵심 혐의가 축소·은폐 보고였다.

외환 사정의 심각성 등을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법원은 부실 보고의 증거와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해 무죄를 내렸다.

이를 뒤집으면 고의로 엉터리 보고를 한 공직자는 직무유기로 처벌받는다는 뜻이다.

경제가 망가지는데도 대통령은 입만 열면 "경제가 옳은 방향"이고 "성과가 나타났다"고 한다.

주변 참모들이 대통령 머리에 왜곡된 정보를 입력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법원 기준대로라면 대통령에게 허위 보고한 청와대 참모진과 경제 부처 장차관들은 모조리 형사처벌감이다.


엉터리 보고도 모자라 국민 상대로 거짓말마저 서슴지 않는다.

지소미아를 파기하면서 "미국도 이해했다"고 한 것,

강제 북송한 북 어민들이 "죽어도 돌아가겠다고 했다"고 허위 발표한 일,

북한의 해안포 사격을 북측 공개 때까지 은폐한 것 등등 거짓말이 끝이 없다.

알고도 허위 사실을 공표해 국가 기능을 방해했다면 직권남용에 해당될 수 있다.

문서나 보고 자료에 거짓말을 썼다면 공문서 위조죄다.


'부역 공직자'들은 아무리 잘못해도 정권이 보호해줄 것이라 믿고 있을 지 모른다. 이제 임기 말이다.

제 한 몸 추스르기도 벅찰 레임덕 정권이 어디까지 지켜줄 수 있을까.

누르고 눌렀던 부실 국정의 부작용이 곪아 터져 폭발하면 책임자 색출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설사 좌파 정권이 연장되더라도 자해 정책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국익 손실을 알고도 정책 오류를 주도한 공무원, 사실을 왜곡해 허위 보고하고 국민에게 거짓말한 공직자들은

지금 밤잠을 설쳐야 정상이다. 2년 뒤를 두려워해야 할 사람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