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김기천 칼럼] 대통령의 '꽃길' 국민의 고생길

바람아님 2020. 1. 22. 09:23
조선비즈 2020.01.21. 06:02

‘융커의 저주’라는 말이 있다. 정부의 과감한 복지·구조개혁이 정치적 자살행위가 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장 클로드 융커 전(前) EU 집행위원장이 룩셈부르크 총리 시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 알고 있지만 그렇게 하고 나서 재선에 성공할 방법을 모른다"고 말한데서 유래한 표현이다.

융커의 말은 상식에 부합하고 이해하기도 쉽다. 개혁의 고통은 즉각 나타나는 데 비해 혜택은 시간을 두고 서서히 실현된다. 개혁을 추진하는 정부와 집권당은 강한 저항과 정치적 역풍을 각오해야 한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노동시장 개혁으로 경제 회생의 기반을 구축하고도 선거에서 참패한 것을 비롯해 숱한 사례가 있다.

융커의 저주를 피할 수 있다는 실증연구도 있다. IMF는 적절한 시기에 잘 설계된 구조개혁을 신중하게 실행하면 오히려 정부 지지도를 높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EU도 금융시장이 잘 작동하면 구조개혁에 따른 미래 수익을 앞당겨 쓸 수 있기 때문에 개혁의 부담을 덜 수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프레드리크 레인펠트 전 스웨덴 총리가 하나의 사례다. 중도우파연합을 이끌었던 레인펠트는 2006년 총선 승리로 집권한 뒤 곧바로 복지·노동·세제 개혁에 나섰다. 법인세와 소득세를 인하하고, 부유세를 폐지하고,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으로 공적연금을 개혁하고, 실업연금을 삭감했다. 반발이 있었지만 국민을 설득하면서 단계적으로 꾸준하게 개혁을 실행했다.

레인펠트는 2010년 총선에서 더 높은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사민당이 장기 집권하고 있던 스웨덴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보수 정당 총리가 재임하는 기록을 세웠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유럽국가 중 유일하게 국가부채가 감소하는 등 탄탄한 재정을 바탕으로 가장 먼저 위기에서 벗어난 성과를 인정받았다.

2014년 총선에서 패배해 정권을 다시 사민당에 넘겨줬지만 그 때는 이민 문제가 주 이슈였다. 반(反)이민 정서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레인펠트 정부는 개방적인 이민정책으로 표를 잃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뀐 뒤에도 개혁의 틀은 거의 그대로 유지됐다. 개혁의 불가피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결과였다.

개혁과 선거,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한 사례보다 실패한 사례가 더 일반적이기는 하다. 민주주의 국가의 어느 정부도 ‘융커의 저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실패 사례가 많다는 사실은 정치적 불이익과 부담을 뻔히 내다 보면서도 개혁을 추진하는 정부가 많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과연 누가 왜 ‘정치적 자살’을 기꺼이 감수하는가.

"정치인(politician)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는 데, 정치가(statesman)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 정치인은 자기 당(黨)의 성공만 생각하고, 정치가는 자기 나라에 좋은 게 뭔지를 생각한다."

19세기 미국 작가인 제임스 클라크의 말이다. 정치인은 흔하지만 정치가는 드물다. 그래도 전혀 없지는 않기에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 옳은 일을 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이루어진다. 포퓰리즘이 득세하고 있는 요즘 세상에서 특정 정파의 대표가 아닌 국가 지도자의 풍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다.

마크롱은 2017년 5월 취임 이후 부유세 폐지와 복지 예산 삭감, 공기업 개혁, 실업보험 개편 등 줄곧 어려운 길만 걸었다. 2018년엔 유류세 인상에 반발하는 ‘노란조끼 시위’로 고비를 맞기도 했다. 이에 마크롱은 석달간 전국 방방곡곡에서 ‘국가 대토론’을 열고 개혁의 당위성을 설득해 위기를 넘겼다.

작년에는 역대 어느 정부도 제대로 손대지 못한 연금개혁에 나섰다. 국철 노조가 사상 최장 파업을 이어가는 등 강력한 저항에 부딪쳐 온나라가 마비상태이지만 마크롱은 물러서지 않고 있다. 대통령에게 지급되는 특별연금을 포기하는 등 솔선수범하며 프랑스의 전진을 위한 국가적 과제 해결에 온힘을 다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프랑스와 대척점에 서있다. 거의 동시에 출범했지만 그동안의 정책 방향과 행보는 정반대다. 마크롱 정부가 국가 효율성 제고를 위해 고통스런 개혁을 밀고 나가며 악전고투하는 동안 문재인 정부는 좌파 포퓰리즘으로 일관했다.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리고, 복지 지출도 대폭 확대하는 등 대중의 환심을 사는 데 골몰했다.

노동개혁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정권 출범의 일등공신을 자처하는 민노총의 심기를 거스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공공부문 개혁도 거꾸로 갔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혁신 대신 탈원전과 비정규직 해소 등 ‘코드 경영’을 공기업 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로 인해 공기업이 다시 비대화하고 부채가 급등하고 있다. 연금개혁은 별 진전 없이 마냥 시간만 끌고 있다.

대통령의 올해 신년사와 기자회견 어디에서도 노동·공공·연금개혁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다. 민간의 경제 활력이 위축되고 생산성 향상이 둔화되고 미래 전망이 어두워지고 있는데 대한 문제의식도 없다. 일부 긍정적인 지표를 들어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론만 두드러진다. 모든 문제를 돈으로 틀어막고 있는 정책 방향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화끈하게 돈을 풀며 생색내는 것은 정치인들이 모두 꿈꾸는 일이다. 기업 현장을 찾아가 몇 마디 덕담을 건네며 ‘경제 대통령’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도 누구나 할 수 있다. 대통령이 여기에 만족하면 나라의 미래가 어두워진다. 대통령이 쉽고 편한 길, ‘꽃길’만 걸으면 결국 국민이 고생길을 걷게 된다.

국가 지도자는 스스로 가시밭길을 걸어야 한다. 국가 생존을 위한 개혁의 절박성과 고통분담을 국민에게 설득하고 저항과 반발, 지지율 하락의 폭탄을 떠안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제라도 맹목적인 지지층만 바라보는 편협한 정치에서 벗어나 국가 지도자의 면모를 보여주기를 바란다면 지나친 기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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