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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칼럼]집권세력發 궤변과 선동.. 실종된 수오지심/[이정민의 시선] 메시아는 없다

바람아님 2020. 1. 25. 06:22

[이기홍 칼럼]집권세력發 궤변과 선동.. 실종된 수오지심

동아일보 2020.01.24. 03:02


산 권력 수사팀 사실상 해체시키고.. 공정인사·직제개편으로 분칠
궤변·선전술은 최고 수준인데.. 부끄러움을 느끼는 능력은 실종
이기홍 논설실장
6·25 전쟁 발발 직후 북한 평양방송은 “남조선이 북침했기 때문에 자위 조치로 반격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인민군이 점령한 서울에 내려온 박헌영 등은 민족주의 인사들을 불러 선무공작을 요구한다. 하지만 동족을 상대로 일으킨 전쟁을 지지할 수 없다며 거부하자 박헌영 등은 “전쟁을 일으킨 건 이승만”이라고 주장한다. 바로 며칠 전 3·8선 전역에 걸친 인민군의 공격으로 전쟁이 시작된 것을 수많은 사람이 목격했는데도 뻔뻔하게 북침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박헌영도 그런 거짓말이 통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후 아주 오랫동안 6·25 북침설은 심대한 위력을 발휘했다.


좌파 학자들은 교묘히 취사선택한 팩트들을 엮어 북침설, 남침유도설, 국지충돌확전설 등을 전파했고, 1980년대 한국 대학가에서 수많은 학생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는 북한정권, 특히 동족상잔을 일으킨 원흉으로 규정됐던 김일성을 보는 시각에 근본적 수정을 가능하게 했고, 그 결과 김일성을 우상시하는 수많은 주사파가 생겨날 수 있는 토양이 됐다.

바로 눈앞에서 벌어진 일의 본질을 정반대로 색칠하는 선전술. 흑과 백을 뒤바꿔놓는 논리, 역사를 입맛대로 윤색하는 좌파 이론가들의 책략은 교묘하고 집요하다. 명백한 사실을 정반대로 선전하고, 비판에는 귀를 닫는다. 그러면서 회색의 논리들을 무수히 퍼뜨려 진실을 흐릿하게 만들어 버린다.


문재인 대통령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1·8인사에 이어 어제 검찰 중간간부 인사로 현 정권을 겨냥한 수사팀들을 사실상 공중분해시켰다. 하지만 정권의 언어로는 최고의 공정성을 지닌, 직제개편에 따른 공정한 인사라고 한다.

권력 핵심실세를 겨냥한 수사가 진행되는데, 만약 떳떳하다면 더 마음껏 수사해보라고 일부러라도 인사를 늦추면서 보장해주는 게 상식적 대응이다. 그런데 그 어떤 비난도 아랑곳없이, 그 어떤 명분이나 논리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노골적으로 수사간부들을 좌천시킨다.


필수 보직기간 1년을 규정한 인사규칙을 넘어서기 위해 직제개편까지 동원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시행 시기는 빨라도 7월 이후인 데다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사라지기 때문에 형사부를 급히 늘려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직제개편이 발등의 불인 것처럼 서둘렀다.


정년퇴임한 한 전직 고위 관료는 “수십 년 공직생활 내내 한번도 듣도 보도 못 하던 일들이 요즘 벌어진다”며 “하다못해 군사정부 때도 직제개편을 하려면 이해당사자 그룹 의견도 듣고 공청회도 하고 그랬다”고 말했다.

사적(私的)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일을 벌이면서도 개혁이라고 강변한다. 그들은 안다. 아무리 궤변과 억지라도 지지층에겐 스스로를 옹호하고 무장할 논리를 제공해주고, 결국은 진실을 회색으로 덮어버리는 효과가 생길 것임을.

실제로 청와대와 여당 인사들이 온갖 스피커를 동원해 흑백 바꾸기 논리를 펴면 곧 유시민 등이 나설 것이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수많은 기사가 유포될 것이다. 채널을 두세 번만 바꿔가며 퍼뜨리면 반신반의하던 이들도 따라오고, 확신편향에 빠진 지지자들이 여론을 형성해줄 것이다.


최근 ‘4+1’을 통한 법안 강행에서 검찰 인사까지, 일련의 독주 과정에서 집권세력이 주로 동원하는 논리는 ‘법대로’다. 그런데 법대로를 내세우면 불리할 것 같을 때는 법보다 국민여론, 정의가 우선이라며 집단의 힘에 의지한다. 누군가를 법이 정한 임기 때문에 쫓아내기 어렵게 되면 집 앞까지 찾아가 시위를 벌여 ‘정의를 구현’한다. 자기편이 다수결로 밀어붙일 때는 “법대로”를 외치다가 검찰이 법원 영장을 들고 오면 논리를 싹 바꿔 거부한다. 실정법과 국민정서법, 두 대립되는 것 가운데 언제든 편리한 걸 골라 쓴다.


그러면서도 전혀 부끄러움을 안 느낀다. 구시대적 선악 세계관으로 무장해 있기 때문이다. 추미애 장관은 김대중 정권 시절 언론사 기자를 향해 “사주의 지시로 글을 썼느냐. 사주 같은 놈”이라고 욕설을 했다. 자신들을 향해 제기되는 비판에는 무조건 비도덕적 동기가 숨어있는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독선적인 사고방식이다.


외형적 합법과 선전술을 양대 무기로 삼은 정권의 폭주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한가를 보여준다.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 퇴행 조짐이 나타나고, 여러 나라에서 ‘선출된 포퓰리즘 독재자들’이 유사(類似) 전체주의 통치를 하고 있지만 미국 같은 선진국은 의회 사법부 싱크탱크 등 국가의 인스티튜션들이 권력자의 폭주를 견제해준다. 그러나 한국은 거의 일방 독주다. 행정부는 물론 입법 사법부도 정권에 충성을 바치는 이들이 길목을 차지했다.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행동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뺨칠 수준인데 죄책감도 없고 부끄러움도 모른다. 수오지심의 실종이다. 성현들은 수오지심이 없는 사람은 교화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4·15총선이 그래서 더더욱 중요하다.


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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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의 시선] 메시아는 없다

중앙일보 2020.01.24. 00:25


국민의 희생 설득하는 게 지도자
메시아인 양 포장하는 건 기만
포퓰리즘으로 부강해진 나라 없어
이정민 논설위원

계속되는 시위로 곤혹을 치르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한국에선 상종가다. 보수 정권 10년의 ‘적폐’와 적폐 청산을 주문처럼 외며 집권해 ‘신 적폐’를 쌓은 진보 정권에 실망한 사람들에게 청량제가 되고 있다.


마크롱은 2017년, 문재인 대통령과 나흘 차이로 취임했다. 그는 경제산업디지털부 장관을 중도 사퇴하고 ‘앙 마르슈(전진)’를 창당, 단박에 대권을 거머쥐었다. 좌도, 우도 아닌 중도를 표방해 돌풍을 일으켰다. “지난 수십년간 좌·우파 정치인들은 공공 지출을 증가시켜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겨버렸다. 현실에 맞설 용기가 없어 아이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부채를 떠넘기는 비겁한 행위를 했다.” 프랑스를 저성장·고실업의 늪에 빠뜨린 정치권의 무능을 공격하며 ‘프랑스병’ 치유를 장담한 39살 청년의 패기에 유권자들은 갈채를 보냈다.


하지만 그의 진가는 ‘웅변’이 아닌 ‘실천’에서 드러났다. 집권하자마자 부유세 폐지, 법인세 인하, 복지예산 삭감을 일사천리로 밀어붙이더니 2018년엔 유류세 인상까지 단행했다. 파리 교외에 살며 자동차로 출퇴근해야 하는 중산층·서민들이 유류세 인상에 반발했다. 자동차 사고에 대비해 차안에 의무적으로 비치하게 돼있는 형광빛 노란조끼를 입은 성난 운전자들의 시위는 마크롱 퇴진 운동으로까지 번졌다. 지지율이 20%대로 곤두박질쳤다. 실업이 줄고 경기가 반등하면서 그를 위기에서 구해냈다. 집권초 ‘해고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었더니 기업의 고용이 살아난 것이다.


이번엔 연금개혁에 올인하고 있다. ‘더 일하고 덜 받는’ 연금 개혁은 역대 정권이 모두 실패한 뜨거운 감자다. 저항은 전 국민적이다. 프랑스 철도 노조는 역대 최장 파업기록을 갈아치우고 연일 기록 경신중이다. 마크롱은 퇴직후의 대통령 특별연금(월 2500만원)을 포기하는 배수진을 치며 노조 설득에 나섰다. 문제를 피하지 않는 소통의 리더십은 ‘노란조끼’ 시위 때도 발휘됐다. 국가 대토론회를 열어 노조와 머리를 맞댔다. 자신을 ‘친 기업’이라고 공격하는 노동자들 앞에서 거침없이 희생을 요구했다. “일을 덜 하면서 돈을 더 벌수는 없다. 세금을 줄이면서 정부 지출을 늘릴 수는 없는 것 아니냐” “기업을 지키지 않으면서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마크롱 개혁의 성패를 예측하긴 쉽지 않다. 하지만 표 떨어질 걸 감수하면서, 국민들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지도자의 당당함과 리더십이 그를 빛나게 한다. 선거가 아닌, 국가의 내일을 생각하는 정치가(statesman)다운 품격이다. 미국의 국부격인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경구가 생각난다. “이 시대의 근원적 위기의 징후는 국민에 대해 희생을 요구하는 지도자가 나올 수 없게 된 데 있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자신을 희생하는 일에 기꺼이 나설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러나 모두 희생을 거부한다면 공멸할게 뻔하기 때문에 희생하는 것이다. 모두 죽는 것 보다 나은 길이기 때문이다. 그걸 이끌어야 하는 게 지도자의 숙명이다.


4월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 장밋빛 공약이 넘친다. 공공 무료 와이파이로 데이터 0원 시대, 만 20세 청년 전원에게 3000만원씩 출발자산 지급, 반의 반값 아파트 공급…. 가까스로 짜맞춰서 겨우 2% 성장하는 형편엔 무리한 포퓰리즘 공약이다. 그런데도 “좋은 포퓰리즘” “부모 찬스가 없으면 사회 찬스라도 써야 한다”며 당당하다. 메시아 강림을 믿기라도 하는걸까. 표만 얻으면 그만이라는 뻔뻔함과 무책임의 극치다. 사악함마저 느껴진다.


타다 금지법을 발의한 민주당이 내건 벤처 4대강국 실현 공약은 모순을 넘어 ‘초현실적’이다. 벤처 강국 운운하기 이전에 타다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해내는게 정치가 할 일이다. 그랬더라면 벤처·스타트업계 대표들이 ‘규제개혁비례당’ 을 창당하겠다고 나서는 사태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타다 금지법을 놔둔채 벤처 강국 운운하는 건 총선을 노린 말장난에 불과하다. “택시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하면서 혁신적 영업이 진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대통령의 말도 그렇다. 여기엔 누구도 희생시키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깔렸다. 그러나 책임있는 지도자라면 누구도 희생하지 않는, 모두를 만족시킬 해결책은 없다고 말해야 옳다. 조금씩 희생하고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게 진짜 지도자다.


‘유권자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조삼모사 식의 현란한 눈속임과 달콤한 레토릭에 속아넘어가 부강해진 나라는 없다. 자신이 메시아인양 포장한 정치인의 포퓰리즘이야 말로 배격해야 한다. 국민을 무시하고 기만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영속성 마저 위협하기 때문이다.


이정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