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0.02.01 이한수 Books팀장)
이한수 Books팀장
열네 살 아이에게 한 방 얻어맞았습니다. 신체적으로 맞았다는 뜻은 아니고요.
요즘 새벽 배송이나 모바일 결제 같은 소비 시스템에 대해 나름 비판적으로 얘기하던 참이었습니다.
이런 세상을 굳이 따라가야 하나 했더니 아이가 죽비 같은 법어로 우둔한 머리를 내리치더군요.
"그럼 상평통보로 결제하시지요."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더니, 이런 날이 언젠가 올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습니다.
고칠현삼(古七現三)이란 말이 있습니다. 책을 읽을 때 고전을 70%, 요즘 책을 30% 읽는 게 좋다는 뜻입니다.
교과서에도 실렸던 양주동(1903~1977)의 수필 '면학의 서'에 나온 말입니다.
요즘은 반대 아닐까요. 세상 따라가려면 현칠고삼 또는 현팔고이?
그런데 이마저도 아니라는 말을 간혹 듣습니다. 요즘 책 읽는 사람 있나?
세상이 얼마나 빨리 바뀌는데 책을 왜 읽어? 이런 물음엔 어떻게 답해야 할까요.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독서는 즐거운 일이라는 공자의 말은 한심한 답변이 되겠지요.
평론가 김현(1942~1990)은 "문학이란 쓸모없기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쓸모 없음이 쓸모를 낳는다"고 말한 적 있는데,
이 또한 쓸모없는 말장난일 뿐이겠지요.
책 읽는다고 돈 생기지 않으니 '효용 제로'라고 하면 딱히 할 말 없습니다.
그러나 독서는 세상을 성찰하는 행위입니다.
인류를 구원할 아이디어가 그 속에서 나올 수 있으니 거대한 효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상평통보 쓰던 사람들의 생각이 속도와 효율로만 달려가는 현대의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백신이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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