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2184만달러(약 264억원)에 낙찰된 ‘가우도’. |
미술시장 분석 회사인 프랑스의 아트프라이스는 최근 ‘2011년 세계 미술시장 개요’에서 장다첸이 2011년 경매 낙찰 총액 5억달러(약 5700억원)를 넘어, 2010년에 피카소가 세운 최고가(3억6000만달러·약 4140억원) 기록을 경신했다고 발표했다. 2위는 역시 중국의 화가인 치바이스(齊白石·1864~1957)로 4억4500만달러(약 5110억원)였다.
생존 작가 경매 낙찰 총액에서도 9000만달러(약 1035억원)를 기록한 자오우지(趙無極)를 선두로, 쩡판즈(曾梵志·5700만달러·약 655억원), 판정(范曾·5100만달러·약 586억원), 장샤오강(張曉剛·4100만달러·약 471억원), 추이루줘(崔如琢·3900만달러·약 448억원) 등 1위부터 5위까지를 모두 중국 작가가 휩쓸었다. 중국은 지난해 세계 미술시장 점유율에서 39%로 1위를 차지해 25%를 차지한 미국, 20%를 차지한 영국을 따돌렸다. 미술시장에서 중국 회화가 급부상한 이유가 무엇인지 장다첸의 화력(畵歷)을 통해 살펴보자.
모사와 사생을 통한 전통회화의 계승
2011년 5월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장다첸의 ‘가우도(嘉圖·연꽃과 오리)’가 2184만달러(약 264억원)에 낙찰됐다. 비싼 낙찰가에 비해 그림은 매우 단순하고 전통적이다. 강한 먹색의 연잎과 붉은 연꽃 아래 두 마리 오리가 그려진 전형적인 ‘연지유압도(蓮池柳鴨圖)’ 형식이다. 연지유압도는 오래전부터 많은 화가들이 선호해 온 그림 소재다. 식상하리만치 평범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장다첸의 ‘가우도’가 주목받는 것은, 가장 전통적인 소재에 자신만의 개성과 독창성으로 화면에 생명력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진한 먹의 농담(濃淡) 변화로 연잎의 질감을 살려냈고 연꽃에는 대담하게 붉은색을 써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가우도’에는 먹이 얼마나 다양한 울림을 줄 수 있는지 아는 자만이 쓸 수 있는 자신감이 담겨 있다. 이런 자신감은 그가 평생 삶의 지침으로 삼았던 모사(模寫)와 사생을 통해 전통회화의 장점을 획득한 결과로 얻어진 것이다.
장다첸은 1899년 쓰촨성(四川省) 네이장(內江)에서 출생했다. 18세 때 일본에 유학하여 그림과 염직을 배운 후 상하이로 돌아와 저명한 서예가인 쩡시(曾熙)와 리단칭(李端淸)에게 그림과 글씨를 배웠다. 이후 상하이와 저장지역 화단에서 활약하다 34세 때인 1933년에는 쉬베이훙(徐悲鴻)의 추천으로 중앙대학 예술계 교수로 부임했으나 1년 만에 사직하고 창작에 전념했다. 쉬베이훙은 ‘장다첸화집’의 서문에서 ‘五百年來一大千(오백년을 빛낸 장다첸)’이라는 표현으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1938년에 상하이와 홍콩을 거쳐 쓰촨으로 돌아간 그는 송원(宋元)대의 명작을 모사했다. 청대(淸代)의 석도(石濤), 석계(石溪), 팔대산인(八大山人), 매청(梅淸) 등의 작품을 시작으로, 명대(明代)의 오파(吳派)를 거쳐 원말사대가(元末四大家)의 작품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50세 전후에는 남송(南宋)대의 이당(李唐), 마원(馬遠), 하규(夏珪), 양해(梁楷), 목계(牧谿)의 작품과 북송(北宋)의 범관(范寬), 곽희(郭熙), 동원(董源), 거연(巨然)까지 모사 작업은 줄기차게 계속됐다. 그는 모사할 때 문인화가와 직업화가를 구분하지 않았고, 남종화와 북종화가 지닌 기법과 장점을 편견 없이 습득했다. 그 결과 장다첸의 작품에는 각종 화파(畵派)가 지닌 특성과 양식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게 됐다.
죽는 순간에도 붓을 놓지 않았다
특히 1940년대에 2년에 걸친 돈황벽화의 모사를 통해 당대(唐代) 인물화의 세계에 빠져든 후 인물화에서 짙은 채색의 중요성과 깊이감을 체득하게 된다. 회화의 장식성과 형식성이 그의 작품세계의 특징이 된 것도 돈황벽화의 모사에서 얻은 결과였다. 그는 돈황벽화의 모사로 얻은 276폭의 작품을 발표한 후 큰 명성을 얻었다.
57세 때 첫 유럽 여행을 시작으로 서구 여러 나라를 경유하면서 작품의 혁신에 대해 고민한다. 70세인 1969년 브라질에서 미국의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다. 이후 10년이 그의 작품의 전성기였다. 전형적인 대기만성형 작가다. 그가 1973년에 그린 ‘금박 위의 심홍색 연꽃’은 전성기 때의 독창적인 화법을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청록(靑綠)이 발채(潑彩)되어 강한 장식성이 느껴진다. 발묵(潑墨) 효과에 공을 들였으면서도 그린 사람의 자유로운 영혼의 세계를 담아 사의화(寫意畵)의 품격을 잃지 않은 작품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가우도’나 ‘금박 위의 심홍색 연꽃’이 모두 공교롭게도 화조화(花鳥畵)지만 장다첸의 작가로서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은 오히려 산수화에 있다. 70세경에 완성한 기념비적 거작 ‘장강만리도(長江萬里圖)’가 대표적이다. 길이가 1996㎝에 달하는 이 작품 속에는 그가 평생을 두고 갈고닦아 온 화법과 전통이 농축돼 있다.
말년에는 대만 타이베이로 이주해 여생을 마쳤다. 그는 마지막 눈을 감을 때까지도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는데, 그의 인기는 우리나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09년 서울대학교박물관에서 전시된 중국근현대수묵화명가전에서도 웅장하면서 장엄한 그의 작품이 가장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전통에서 배워야 한다
2011년 세계 미술시장에서 최고가를 받은 작가 치바이스와 가장 많이 팔린 작가 장다첸은 중국 근대 회화사에서 전통파 화가로 분류된다. ‘전통파’라는 단어는 ‘복고’와 ‘안주’의 의미가 강하다. 전통파 화가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기보다는 평탄하게 닦인 안전한 길을 선호한다. 과거 대가들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 걷는 것이, 길 없는 길을 만들면서 가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기 때문이다. 과거 대가들의 작품은 전통파들이 그림을 그릴 때 지켜야 할 안전수칙이다. 안전수칙에 따라 붓을 놀리는 한 실패할 확률은 훨씬 줄어든다. 그들은 자청해서 기꺼이 전통의 아류로 남는다. 그러나 이들에게 전통은 실험적인 시도를 가로막고 과거의 형식에 안주하게 하는 장벽이자 한계다.
치바이스와 장다첸은 이런 작화 방식을 거부했다. 전통에서 배워야 될 것은 형식이 아니라 정신이라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철저히 자신의 전통에 정통했고 모사와 사생을 중요시했다. 그 결과 전통에서 배운 도저한 정신에 생생한 현실의 옷을 입힐 줄 알았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작품이 당대를 넘어 온갖 실험적인 그림 형식이 난무하는 2011년에도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하며 감상자들을 매혹시킨 비결이다
조정육 홍익대 한국회화사 석사, 동국대 박사 수료. 성신여대 대학원, 동국대 대학원 강의. 저서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거침없는 그리움’ ‘꿈에 본 복숭아꽃 비바람에 떨어져’ ‘조선이 낳은 그림 천재들’ ‘우리나라 대표 그림’ ‘그림공부, 사람공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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