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 동양화가 말을 걸다]⑤ 안견 ‘몽유도원도’-‘몽유도원도’에는 안평 대군 죽음이 예언돼 있다

바람아님 2014. 1. 28. 20:48
▲ 안견 ‘몽유도원도’ 1447년, 두루마리, 비단에 연한 색, 38.7×106.5㎝, 일본 텐리대학 도서관

    “그대가 내 꿈을 그려줘야겠어.”
   
   안평대군이 말했다. ‘대군의 꿈을 제가 그리란 말씀이시옵니까?’ 하려다가 안견은 입을 다물었다. 안평대군의 얼굴 위를 설핏

지나가는 어둠을 보았기 때문이다. 안견은 잘못 보았다고 생각했다. 방금 전에 들떠서 무릉도원을 얘기하던 사람한테 그 어둠은

가당치도 않아 보였다. 헛것을 보았으리라.
   
   “그리하겠습니다.”
   
   안견은 몹쓸 생각에 사로잡혔던 스스로를 부인하듯 결기를 담아 대답했다. 스물아홉 한창 나이가 아닌가. 대군 같은 사람에게

어둠이라니. 안견이 일어섰다. 공손히 허리를 숙여 예를 갖추었다. 그때였다. 몸을 돌려 막 방문을 열려고 하는 찰나 등 뒤에서

안평대군이 꿈에 취한 듯 몇 마디 더듬거렸다.
   
   “이상한 일이로다. 하고많은 사람들이 내 집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거리거늘 꿈속에서는 어찌 두어 사람만 동행하게 되었을

    꼬….”
   
 신음처럼 내뱉은 그 말이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고 있었음을 안평대군은 알지 못하였다. 1447년 음력 4월 20일, 다음날이었다.
   
   
   “꿈이로다, 꿈이로다”
   
   “그대가 마치 꿈을 꾼 것 같구먼…. 어찌 이리 정확하게 그렸단 말인가. 역시 그대는 신필(神筆)이야.”
   
   안평대군은 벌써 몇 차례나 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안견이 대군의 꿈 이야기를 듣고 사흘 만에 완성해서 들고 간 그림

앞에서였다. 그림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펼치자마자 험준한 바위 사이로 흐드러지게 핀 복숭아꽃밭이 곧바로 전개되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과감한 구도였다. 두루마리 그림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펼칠 때마다 그림의

세계가 서서히 전개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림을 감상하려는 사람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키려는 의미도 있거니와 서론, 본론, 결론

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구조처럼 그림도 이야기를 담아 전개시키려는 의도에서다.
   
   그런데 이 그림은 전혀 뜻밖이었다. 서론이 생략되고 바로 본론이 펼쳐졌다.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오솔길을 지나고 골짜기를

건너 한참 만에야 도달했던 복숭아꽃밭이 그림을 펼치자마자 한눈에 들어왔다. ‘산벼랑은 울뚝불뚝하고 나무숲은 빽빽하여

시냇물이 백 굽이로 휘어져 사람의 정신을 홀리는 듯’한 신선세계가 눈부시게 출렁거렸다. 그곳에 지금 복숭아꽃이 한창이다.

안개 속에 푹 잠겨 언뜻언뜻 고개를 내민 꽃잎은 연분홍색 위에 금채(金彩)를 더하여 화려하기가 그지없다. 침식된 듯한 바위에

둘러싸인 꽃밭을 부감법(俯瞰法·위에서 밑을 향해 내려다보듯 그리는 기법)을 써서 한눈에 들어오게 한 구도도 뛰어나다. 꽃밭

아랫부분의 바위를 과감하게 낮춰 감상자의 시선을 가리지 않게 한 발상도 효과적이다. 
   
환상적인 꽃밭에서 눈길을 거두어 왼쪽으로 향하면 두 팔을 벌린 듯한 기암괴석이 수문장처럼 지키고 서 있다. 그 모습이 마치

복숭아 꽃밭을 빠져나가려는 사람에게 이렇게 묻는 것 같았다.
   
   “여기를 나가면 현실세계입니다. 이 문을 나서는 순간 당신이 꿈꾸던 아름다운 세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나가시겠습니까?”
   
   그 말을 뒤로 하고 고개를 돌리면 그곳에 평범한 야산이 납작 엎드려 있다. 화려한 꽃도 기괴한 암벽도 사라진 언덕 같은

낮은 산이 비루하게 드러누워 있다. 드디어 꿈에서 깨어난 것이다.
   
   
   조선 초기의 문화 수준 가늠자
   
   꿈에서 깨어난 순간 사람들은 깨닫게 된다. 안평대군의 꿈이 중국 동진(東晉)의 시인 도연명(陶淵明·365~427)의 ‘도화원기

(桃花源記)’를 근거로 했다는 것을. 얘기는 이렇다. 무릉에 사는 어부가 강물 위로 떠내려오는 복숭아꽃을 보고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 환상의 세계로 들어간다. 근심 걱정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곳은 복숭아꽃이 가득 피어있는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어부는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그곳에서 꿈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부는 슬그머니 집 생각이 나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바깥세상에 나가더라도 이곳 이야기는 하지 말아달라고 청했다. 어부는 약속을 어기고 그곳을 나올 때 곳곳에 표시를

해두었지만 나중에 다시 찾아가 보니 도원(桃源)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도연명의 ‘도화원기’는 당시 글줄이나 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상식이었다. 안견이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듣자

마자 곧바로 붓을 들어 사흘 만에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문화적인 바탕 위에서 가능했다. 그림의 출처는 도연명의

글이었다. 그러나 안견은 도연명의 글이 아니라 안평대군의 꿈에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 ‘몽유도원도’에는 여타의 ‘도원도’에 보

이는 어부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안평대군이 박팽년과 함께 말을 타고 돌아다닌 복숭아꽃밭이 강조되었다. 한참을 두 사람이

‘몽유(夢遊)’하다 나중에야 최항과 신숙주를 만났던 복숭아꽃밭, 도원이었다.
   
   본질을 꿰뚫어볼 줄 아는 안견의 탁월함에 감탄을 거듭하던 안평대군은 이 그림을 3년 동안 간직하고 있다가 붓을 들어 ‘몽유

도원도(夢遊桃源圖)’라는 제목을 적어 넣었다. 그리고 신숙주, 김종서, 정인지, 박팽년, 최항, 성삼문 등 세종시대를 대표하는 22

명 학자들의 시를 덧붙였다. 이로써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한 작가의 기량을 확인할 수 있는 단순한 예술작품을 넘어 그 시대의

문화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귀한 보물이 되었다.
   
   
   “꿈에 본 복숭아꽃 비바람에 떨어져”
   
   그런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열흘을 계속 피어있는 꽃이 없는 것처럼 안평대군의 삶의 꽃도 오래가지 못했다.

안평대군은 자신의 둘째형인 수양대군과의 정쟁에서 꺾여 서른다섯 해를 마지막으로 꽃잎처럼 떨어졌다. 그렇게 속절없이 생짜

로 떨어질 사람이 어찌하여 화려한 꿈을 꾸었던고. 그가 꿈꾸었던 무릉도원 같은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이 지상에서는 실현

될 수 없는 이상향이었을까. 하고많은 꽃 중에 굳이 복숭아꽃을 보게 된 것도 안평대군의 몽상적인 취향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

까. 꽃잎 위에 구르는 이슬만 먹고 살기에는 안평대군의 꿈은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기에 냉철한 이성을

지닌 수양대군의 눈에는 안평대군의 풍류야말로 나라 말아먹기에 딱 좋은 풍류가의 작태로밖에 판단되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수양대군의 입장에서는 꿈만 꾸는 동생이 반석 위에 올려놓은 왕조의 기둥을 무너뜨리는 꼴을 두고

볼 수는 없었으리라. 한 사람의 헛된 꿈이 나라를 망하게 한다면 그 죄는 죽어 마땅했다. 이것이 바로 안평대군이 꿈속에 노닐던

복숭아꽃밭에서 숨을 거둔 이유였다. 안견에게 복숭아꽃을 그려 달라고 부탁했을 때 그 꽃밭이 바로 자신의 ‘수목장(樹木葬)’을

치르게 될 장소라는 것을 안평대군은 알지 못했다. 뇌쇄적인 꽃잎이 자신의 주검을 덮어줄 명정(銘旌)이라는 것을.
   
   ‘몽유도원도’를 보고 찬탄의 시를 썼던 사람들도 양쪽으로 갈라졌다. 김종서는 수양대군이 정적을 처단하던 계유정난 때 안평

대군과 함께 죽임을 당했고 성삼문, 박팽년, 이개는 안평대군의 사후에 단종 복위 운동에 연루되어 불귀의 객이 되었다. 그런가

하면 정인지와 신숙주는 수양대군 편에 서서 승리자의 영화를 마음껏 누렸다. 조금만 날씨가 더워도 쉽게 상하는 녹두나물을

일컬어 ‘숙주나물’이라고 비아냥거리게 된 내력도 신숙주 같은 변절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젯밤 나는 무슨 꿈을 꾸었을까.

오늘밤은 또 무슨 꿈을 꿀까. 나의 꿈은 나를 일으켜 세우는 꿈인가.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꿈인가.
   

 

 

 조정육
   
  홍익대 한국회화사 석사, 동국대 박사 수료. 성신여대 대학원, 동국대 대학원 강의. 저서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거침없는 그리움’ ‘꿈에 본 복숭아꽃 비바람에 떨어져’ ‘조선이 낳은 그림 천재들’ ‘우리나라 대표 그림’ ‘그림공부, 사람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