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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가 말을 걸다]⑥ 김득신 ‘파적도’-사랑은 이런 것 맨발로 뛰쳐나온 아내 낙상한 남편

바람아님 2014. 1. 29. 18:41
▲ 김득신 ‘파적도’ 화첩, 종이에 연한색, 22.5×27.2㎝, 간송미술관
    우리 사회에서 잘나가는 축에 속하는 사람과 부부 동반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오래전부터 남편과 친분이 있다 보니 덩달아 나까지 알게 된 사람이었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그는 매우 소탈했다. 적절하게 유머를 섞어 가며 분위기를 살리는 재주도 뛰어났다. 역시 어느 조직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부창부수라고 하더니 부인도 선선해 보였다.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식사는 행복하다. 나는 이 행복한 자리에 초대해 준 부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새로 출간한 책을 꺼내 사인을 해 주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 나타났다. “벌써 몇 번째 책을 내시는 거예요?” 여기까지는 좋았다. 내 책을 받아 든 남자가 갑자기 부인에 대해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누구는 말이야. 이렇게 책도 여러 권 써서 노년에 대한 걱정을 덜어주는데 누구는 평생 밥만 축내니 세상 참 불공평해. 인세 팍팍 들어오겠다, 평생 정년 없겠다, 김 이사는 지금 당장 회사 그만둬도 되겠어. 정말 부러워요 부러워. 옆에서 이렇게 두 팔을 걷어붙이고 도와줘도 살 둥 말 둥한 세상에서 나 혼자 버티려니 내가 흰머리가 안 나게 생겼냐 말이야.” 끊임없이 혼자 투덜거리는 남편을, 그의 아내는 여러 번 겪어봤다는 듯 그저 철없는 아이 보듯 하면서 웃었다. 그러나 그 속이 오죽하랴. 곤혹스러운 남편이 한마디 거들었다.
   
   “집에 들어가시면 어떻게 뒷감당을 하시려고 그렇게 막말을 하세요?”
   
   남편 말에 눈치 빠른 그가 너무 내질렀다 싶었던지 얼른 분위기를 수습했다.
   
   “현관 들어가자마자 바로 손들고 서 있어야지, 뭐.”
   
   
   정적을 깬 고양이 때문에
   
   김득신(金得臣·1754~1822)의 ‘파적도(破寂圖)’는 한가로운 봄날, 한 농가에서 일어난 소동을 그린 것이다. 흐뭇한 바람이 불던 어느 날에 한 남정네가 마루에 앉아 자리를 짜고 있었다. 마당에서는 암탉이 모이를 주워먹고 있었고 어미닭을 따라 병아리 몇 마리가 종종걸음을 하는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갑자기 암탉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보니 어디에 숨어 있었던지 보이지 않던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 병아리를 물고 잽싸게 달아나고 있었다. 새끼가 물려가는 것을 본 어미닭은 애간장이 녹은 듯 고래고래 악을 쓰며 고양이를 쫓아가고 있고, 혼비백산한 다른 병아리들은 부딪치고 넘어지면서도 도망가느라 바쁘다.
   
   “이놈의 고양이 새끼!”
   
   사태를 즉각적으로 파악한 남정네가 담뱃대를 집어 들었다. 후다닥 일어나 고양이를 향해 힘껏 내려쳤다. 아, 그런데 마음이 너무 급했던 탓인가. 고양이는 잡지 못하고 자리틀과 함께 마루에서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머리에 쓴 탕건도 날아갔다. 남편이 낙상하는 걸 본 아낙네가 맨발로 뛰쳐나와 고양이를 잡아보려 했지만 상황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아 보인다. 고양이 한 마리의 등장으로 고요한 평화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마당은 아수라장이 됐다.
   
   이 작품은 책마다 조금씩 다른 제목이 붙어 있다. 그런데 ‘들고양이가 병아리를 훔치다’라는 뜻의 ‘야묘도추(野猫盜雛)’보다는 ‘정적을 깨다’라는 의미의 ‘파적도(破寂圖)’가 더 적절해 보인다. 사건의 발단은 고양이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부부간의 애틋함이다. 마당에 떨어져 자칫 허리가 다칠지도 모르는 남편을 보는 아내의 마음이야말로 정말 가슴을 쿵 내려앉게 만든 ‘파적(破寂)’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순간적인 상황을 생동감있게 포착한 작품이면서 해학적 표현미가 돋보인다.
   
   긍재(兢齋) 김득신은 김홍도(金弘道)의 뒤를 이어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풍속화가다. 그의 아버지 응리(應履)와 큰아버지 응환(應煥)이 모두 도화서(圖畵署) 화원(畵員)이었고, 동생 석신(碩臣)과 아들 건종(建鍾), 하종(夏鍾)까지 도화서 화원인 대표적 화원 집안이었다. 그의 풍속화는 깔끔하게 주제만 표현한 김홍도의 작품과 달리 꼼꼼하게 배경 묘사에 정성을 들인다. ‘파적도’도 예외가 아니다. 그림을 보는 순간 모든 사태가 파악될 정도로 상황 묘사가 친절하다. 감상자에게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남겨두지 않고 붓끝으로 직접 시시콜콜 설명해줘야 직성이 풀리는 김득신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자상하다 못해 부담스럽기까지 한 그의 성격이 짐작되어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덕분에 ‘파적도’는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의 남편에 대한 마음이 절절이 배어 있어 ‘차마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작품이 되고 만다.
   
   
   ‘밤이 먹고 싶으면 내게 먼저 말하시오’
   
   부부간의 사랑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퇴계 이황(李滉·1501~1570)이다. 퇴계는 첫 번째 부인과 사별한 후 권질의 여식을 두 번째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그런데 권씨 부인은 정신이 온전치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집안에서 겪은 여러 차례의 사화(士禍)를 지켜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죽고 난 후 딸의 장래가 걱정되었던 권질은 퇴계가 문안 인사를 왔을 때 자신의 유일한 혈육을 거둬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생각에 잠긴 퇴계는 그러마고 승낙한 후 그녀에게 정식으로 새장가를 들었다.
   
   정상이 아니었던 권씨 부인은 일마다 말썽이었다. 한번은 친척들이 다 모여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제사상에 올린 밤을 가져다 먹었다. 이를 본 퇴계는 밤을 한 움큼 집어서 부인에게 주며 이렇게 말했다.
   
   “부인, 앞으로는 밤이 먹고 싶으면 내게 먼저 말하시오.”
   
   그러면서 기겁을 하는 사람들에게 태연히 말했다.
   
   “아마 조상님들께서도 당신께서 드시는 것보다 후손이 맛있게 먹는 걸 더 좋아하실 것이오.”
   
   이런 일화는 몇 가지가 더 전해지는데 퇴계는 한번도 권씨 부인의 모자란 행동을 나무라거나 야단치지 않았다. 한번은 문상을 가야 하는데 도포 자락이 해진 것을 알고 부인에게 꿰매 달라고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빨간색 천을 덧대어서 꿰매 왔다. 퇴계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도포를 입고 문상을 갔다.
   
   부부간의 불화를 겪고 있던 제자가 있었다. 그는 10년이나 부인과 각방을 쓸 정도로 부부 사이에 골이 깊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퇴계는 어느 날 고향으로 떠난다는 제자를 아침식사에 초대했다. 스승님 내외와 겸상을 하게 된 제자는 여러 차례 놀랐다. 명성이 자자한 스승의 초라한 밥상을 보고 놀랐고, 온전치 못한 스승 사모님의 못생긴 얼굴을 보고 놀랐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예절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부인을 스승이 한결같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었다. 제자는 느끼는 바가 많았다. 아침식사 후 떠나는 제자에게 퇴계는 슬며시 편지 한 통을 건네주며 나중에 뜯어보라고 말했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결혼은 하늘의 질서에 의해 주어진 것이다. 만약 네가 너의 아내를 지금처럼 학대하고 너 스스로를 훈련할 수 없다면 무엇을 배우려느냐?’
   
   
   그것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른다
   
   일제강점기 일본 미술평론가인 야나기 무네요시가 쓴 ‘미의 법문’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선인(善人)도 왕생(往生)하는데 하물며 악인(惡人)이야.’
   
   처음에는 번역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악인이 왕생한다면 당연히 선인도 왕생한다는 표현을 착각했으리라 짐작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일본 정토종을 개창한 호넨(法然·1133~1212) 스님과 신란(親鸞·1173~1263) 스님이 남긴 유명한 이 말은 불보살(佛菩薩)의 위대한 자비심을 압축해서 표현한 것이다. 부처가 중생을 구제하는 것은 중생이 구제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격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구제한다는 뜻이다. 모든 위대한 성인(聖人)들의 자비는 계산적인 중생이 상상하는 그 한계 너머에 있다. 그분들의 아량은 남보다 뛰어난 미모, 든든한 재력, 탁월한 능력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중생의 옹졸함을 무색하게 한다. 종교적 계율, 경전의 가르침, 한 사회를 지배하는 관습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것을 부처는 자비(慈悲)로 보여주었고, 공자는 인(仁)이라고 했으며, 퇴계는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실천했다. 자비, 인, 측은지심 같은 마음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른다. 남편이 다칠까봐 맨발로 뛰어가는 마음, 모자란 부인을 존경심을 다해 감싸주는 마음, 그것이 사랑이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현관문에 들어서면 손들고 서 있겠다고 한 사람의 마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조정육
   
  홍익대 한국회화사 석사, 동국대 박사 수료. 성신여대 대학원, 동국대 대학원 강의. 저서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거침없는 그리움’ ‘꿈에 본 복숭아꽃 비바람에 떨어져’ ‘조선이 낳은 그림 천재들’ ‘우리나라 대표 그림’ ‘그림공부, 사람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