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23. 10. 4. 23:33
양심에도 표정이 있을까?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19세기 영국 화가 윌리엄 홀먼 헌트는 감정을 표현하는 데 탁월했다. 그는 추상적인 양심의 모습을 시각화해 그린 ‘깨어나는 양심’(1853년·사진)으로 가장 유명하다.
그림은 빅토리아 시대 중산층 가정 실내에 있는 한 쌍의 남녀를 묘사하고 있다. 남자가 말실수라도 한 걸까? 여자는 남자 무릎에 앉았다가 벌떡 일어서고 있다. 언뜻 보면 다정한 부부가 잠깐 불화를 겪는 장면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림 속 다양한 상징들은 이들의 불륜 관계를 드러낸다. 파란 정장 차림의 남자와 달리 여자는 속옷에 준하는 하얀 실내복 차림이다.
죽었던 양심은 무언가에 찔렸을 때 되살아난다. 여자의 양심을 깨운 건 찬란한 봄빛이다. 음침하고 어지러운 실내와 대비되는 밝은 빛을 보고 각성한 듯하다. 더 이상 이렇게 살지 않겠다고 결심이라도 했을까. 남자의 품을 박차고 일어선다.
어쩌면 양심의 진짜 표정도 이렇지 않을까. 기쁠 때도 괴로울 때도 부끄러울 때도 있을 테니 말이다. 기쁜 것도 슬픈 것도 아닌, 복합적이면서도 애매한 저 여자의 표정처럼 말이다.
https://v.daum.net/v/20231004233311183
양심의 표정[이은화의 미술시간]〈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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