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몸값만 900억원 이상?” 13명 품에 안긴 男실종사건…정말 불태워졌나[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빈센트 반 고흐 편]

바람아님 2023. 9. 30. 02:33

헤럴드경제 2023. 9. 29. 23:56

<동행하는 작품>
가셰 박사의 초상

편집자주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본 뒤 관련 책과 영화를 모두 찾아봤습니다. 잘 그린 건 알겠는데 이 그림이 왜 유명한지 궁금했습니다. 그림 한 장에 얽힌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이 경험을 나누고자 글을 씁니다. 미술사에서 가장 논란이 된 작품, 그래서 가장 혁신적인 작품, 결국에는 가장 유명해진 작품들을 함께 살펴봅니다. 기사는 역사적 사실 기반에 일부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쓰였습니다. ‘가셰 박사’의 실종


"7500만 달러!"

1990년 5월 15일, 오후 7시 45분. 한 남성의 목소리가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울려퍼졌다. "말이 돼? 누가 저렇게나 값을 올려?" 사람들이 수군댔다......일본 기업 다이쇼와제지(현 일본제지)의 명예회장 사이토 료헤이는 그렇게 반 고흐의 그림을 손에 쥐었다. 10% 수수료를 더하면 료헤이가 내야 할 돈은 8250만 달러(당시 약 900억원)였다. 당시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였다. 그간 반 고흐의 그림 중 가장 비싸게 팔린 건 붓꽃(5300만 달러)이었는데, 이 작품과도 3000만 달러 가까이 차이를 낸 값이었다. 그날 경매장이 발칵 뒤집힌 이유였다.

료헤이는 먼 길을 건너온 이 그림을 쓱 살펴봤다. 그게 다였다. 그는 이를 곧 화랑의 비밀 창고에 넣었다. 빛의 양과 습도를 조절하는 장치, 삼엄한 보안 체계를 갖춘 곳이었다. 1년에 한 번, 직원들이 상태를 점검할 때 말곤 인기척을 느낄 수 없는 공간이었다. 가셰 박사의 초상은 모습을 감췄다...... 1996년, 료헤이는 재기하지 못한 채 여든 살 나이로 결국 사망했다. 미술계는 독보적인 '큰 손'이었던 그의 부고에 애도를 표했다. 이와 함께 약간의 기대도 품었다. 

미술계는 죽기 전 료헤이가 남긴 말을 다시 떠올려야 했다. 차마 생각하기 싫은 최악의 시나리오도 생각해야 했다. 지난 1991년 료헤이가 유언처럼 남겼다는 경악스러운 말, 그것은 "내가 죽거든 반 고흐의 그림을 관에 넣고 화장해달라"는 것이었다.

료헤이가 가셰 박사의 초상에 이렇게까지 광적으로 집착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가 하면, 미술계는 이 그림이 어떤 가치를 갖기에 이렇게까지 다시 보고 싶어 하는 걸까.


https://v.daum.net/v/20230929235646273
“몸값만 900억원 이상?” 13명 품에 안긴 男실종사건…정말 불태워졌나[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빈센트 반 고흐 편]

 

“몸값만 900억원 이상?” 13명 품에 안긴 男실종사건…정말 불태워졌나[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

. 편집자주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본 뒤 관련 책과 영화를 모두 찾아봤습니다. 잘 그린 건 알겠는데 이 그림이 왜 유명한지 궁금했습니다. 그림 한 장에 얽힌 이야기가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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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가셰 박사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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