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2023. 9. 29. 23:56
<동행하는 작품>
가셰 박사의 초상
편집자주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본 뒤 관련 책과 영화를 모두 찾아봤습니다. 잘 그린 건 알겠는데 이 그림이 왜 유명한지 궁금했습니다. 그림 한 장에 얽힌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이 경험을 나누고자 글을 씁니다. 미술사에서 가장 논란이 된 작품, 그래서 가장 혁신적인 작품, 결국에는 가장 유명해진 작품들을 함께 살펴봅니다. 기사는 역사적 사실 기반에 일부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쓰였습니다. ‘가셰 박사’의 실종 |
"7500만 달러!"
1990년 5월 15일, 오후 7시 45분. 한 남성의 목소리가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울려퍼졌다. "말이 돼? 누가 저렇게나 값을 올려?" 사람들이 수군댔다......일본 기업 다이쇼와제지(현 일본제지)의 명예회장 사이토 료헤이는 그렇게 반 고흐의 그림을 손에 쥐었다. 10% 수수료를 더하면 료헤이가 내야 할 돈은 8250만 달러(당시 약 900억원)였다. 당시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였다. 그간 반 고흐의 그림 중 가장 비싸게 팔린 건 붓꽃(5300만 달러)이었는데, 이 작품과도 3000만 달러 가까이 차이를 낸 값이었다. 그날 경매장이 발칵 뒤집힌 이유였다.
료헤이는 먼 길을 건너온 이 그림을 쓱 살펴봤다. 그게 다였다. 그는 이를 곧 화랑의 비밀 창고에 넣었다. 빛의 양과 습도를 조절하는 장치, 삼엄한 보안 체계를 갖춘 곳이었다. 1년에 한 번, 직원들이 상태를 점검할 때 말곤 인기척을 느낄 수 없는 공간이었다. 가셰 박사의 초상은 모습을 감췄다...... 1996년, 료헤이는 재기하지 못한 채 여든 살 나이로 결국 사망했다. 미술계는 독보적인 '큰 손'이었던 그의 부고에 애도를 표했다. 이와 함께 약간의 기대도 품었다.
미술계는 죽기 전 료헤이가 남긴 말을 다시 떠올려야 했다. 차마 생각하기 싫은 최악의 시나리오도 생각해야 했다. 지난 1991년 료헤이가 유언처럼 남겼다는 경악스러운 말, 그것은 "내가 죽거든 반 고흐의 그림을 관에 넣고 화장해달라"는 것이었다.
료헤이가 가셰 박사의 초상에 이렇게까지 광적으로 집착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가 하면, 미술계는 이 그림이 어떤 가치를 갖기에 이렇게까지 다시 보고 싶어 하는 걸까.
https://v.daum.net/v/20230929235646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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