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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의 이승만 오디세이] 용문산 대승으로… 이승만의 ‘강한 국군’ 꿈이 실현됐다

바람아님 2023. 10. 18. 07:30

조선일보 2023. 10. 18. 03:03  수정 2023. 10. 18. 05:55

⑩ 강한 국군의 탄생

1945년 10월에 귀국한 뒤, 이승만이 늘 마음을 쓴 것은 남한을 지킬 군대 양성이었다. 북한엔 이미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섰고, 소비에트 러시아의 군사 교리에 따라 북한 군대를 양성하기 시작한 터였다. 주한 미군 지휘부는 북한의 이런 움직임을 잘 알고 있었고, 1946년부터는 미군 철수 이후에 북한군이 남침할 가능성을 공공연히 거론했다. 그래도 그들은 남한의 국방 능력을 키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최소한의 군대를 양성하면서 ‘군(army)’ 대신 ‘경비대(constabulary)’라 불렀다.

대한민국이 서면서, 경비대는 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러나 전력을 향상시킬 무기는 구할 수 없었다. 북한군이 많은 전차를 갖추었음이 알려졌어도, 미국은 전차는 고사하고 대전차 무기조차 한국군에 제공하기를 거부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비슷한 상황이 중국에서도 일어났다. 중국 정부가 미국에서 구매한 무기들은 선적이 지연되었고, 많은 것이 바닷속으로 던져졌으며, 중국에 도착한 무기는 모두 망가진 것이었다. 미국이 일부러 불량 무기를 보냈음을 깨닫자, 정부군 장병들은 낙심했다.....당시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와 재무부를 장악한 러시아 첩자들이 벌인 농간이었다. 이런 사정은 대만과 남한이 함께 ‘애치슨선’에서 제외된 것과 궤를 같이한다.

전선의 3분의 2를 맡은 한국군의 존재는 당연히 한국의 외교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휴전을 앞두고 이 대통령이 독자적 정책으로 휴전회담의 향방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비밀 자산이 바로 열두 정예 사단으로 이루어진 한국 육군이었다.


https://v.daum.net/v/20231018030323423
[복거일의 이승만 오디세이] 용문산 대승으로… 이승만의 ‘강한 국군’ 꿈이 실현됐다

 

[복거일의 이승만 오디세이] 용문산 대승으로… 이승만의 ‘강한 국군’ 꿈이 실현됐다

1945년 10월에 귀국한 뒤, 이승만이 늘 마음을 쓴 것은 남한을 지킬 군대 양성이었다. 북한엔 이미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섰고, 소비에트 러시아의 군사 교리에 따라 북한 군대를 양성하기 시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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