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3. 10. 17. 06:20
스타일, 용인술, 리더십 그리고 友軍 확장
정해창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인터뷰 [송의달이 만난 사람]
우산(牛山) 정해창(丁海昌·85) 선생은 우리나라 공직자들의 표상(表象)으로 불린다. 대학 3학년 재학 중 고등고시 사법과와 행정과에 합격하고 군 복무후 1962년 검사로 임관한 그는 대검찰청 차장, 법무부 차관·장관 등으로 일했다. 1993년 2월 퇴임 때까지 31년 넘게 관직에 있으면서 처신(處身)과 업무 수행, 대인 관계, 도덕성에서 그는 ‘타의 모범’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흠결이나 과(過)를 지적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다.
그런 그가 지난달 <대통령 비서실장 791일>이라는 회고록을 냈다. ‘정해창의 청와대 일지’라는 부제(副題)를 달았다. 그는 1990년 12월 27일부터 1993년 2월 24일까지 노태우 대통령 후반부 비서실장으로 봉직했다. 835쪽 분량의 책은 대한민국 최고 권부(權府)인 청와대의 당시 국정 운영 과정과 실상을 각주(脚註)를 곁들여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다.
노태우 대통령은 1987년 12월 16일 실시된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36%라는 낮은 득표율로 당선됐다. 이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국민 직선(直選)제로 뽑힌 대통령 중 가장 낮은 득표율이다. 그때 함께 출마한 김영삼(28%) 후보와 김대중 후보(27%)의 득표율을 합한 것(55%) 보다 20% 포인트 가까이 낮았다. 하지만 그가 5년 대통령 임기를 마치기 20일쯤 전인 1993년 2월 3~4일 미디어리서치가 진행한 ‘지난 5년간 통치 평가’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6.8%가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같은 달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잘했다’는 평가가 41%였다.
“노 대통령은 청와대 바깥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으려 노력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이를 위해 그는 참모진을 광범위하게 활용했다. 즉 참모들에게 하던 일만 시키지 않고 누구를 만나 얘기를 듣고 오라는 식의 구체적인 미션을 줬다. 그래서 전문가와 원로, 석학들의 의견을 귀담아 들었다. 이는 자기를 돕는 원군(援軍)들을 사회 각계에 심고 그 세력을 키우는 효과를 낳았다.”
https://v.daum.net/v/20231017062017751
36% 얻어 당선된 노태우, 퇴임 때 지지율 57% 만든 네 가지 [송의달 LIVE]
대통령 비서실장 791일
정해창의 청와대 일지
저자 정해창
출판 나남 | 2023.9.1.
페이지수 836 | 사이즈 161*233mm
판매가 서적 48,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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