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3. 12. 16. 02:00
송재윤의 슬픈 중국: 변방의 중국몽 <15회>
한국사의 수수께끼: 왜 조선은 노비제의 나라가 되었나?
조선 국왕은 조선 땅에 살아가던 15~16세기 인구의 사실상 절반만을 공민(公民)으로 거느리고 있었다. 인구의 나머지 절반은 제각기 정부, 왕실, 양반가에 소유된 동산(動産, chattel)이었다. 사적인 백성, 곧 사민(私民)이었다. 다시 말해, 조선 국왕은 전체 국인(國人, 나라 사람)의 절반에 대해서만 임금 노릇했을 뿐, 인구 절반의 노비들에 대해선 사실상의 지배를 포기한 상태였다. 노비들은 왕의 백성이 아니라 타인에게 소유된 예속적 존재였다. 그 점에서 조선의 노비제는 왕족과 양반의 협업(partnership)으로 유지되었던 독특한 ‘백성 나눠 갖기’의 제도였다고 할 수 있다.
조선 노비제는 전근대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기묘한 한국형 신분제, 한민족(韓民族) 고유의 카스트(caste) 제도였다. 왜 한반도에서 그런 특이한 제도가 생겨나 그토록 장시간 유지되었을까? 섣불리 포폄(褒貶)의 칼날을 휘두르기보단 세계사의 큰 맥락에서 조선 역사의 특이성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왜 동아시아 전근대 다른 지역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노비제가 유독 조선에서 그토록 번성했을까?
왕권이 취약하고 지방 세력도 강성하지 못했던 조선에선 독특한 노비제가 생겨났다. 쉽게 말해, 국가권력이 약했던 조선왕조는 온 백성을 공적 신민(臣民)으로 지배할 수 없었기에 인구의 절반을 양반 계층과 함께 사민으로 지배했다는 것이다. 양반은 사유재산의 핵심이었던 노비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으며, 국가는 양반을 제압할 정도로 강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조선 왕실, 정부, 양반 계층 사이에서 생겨난 절묘한 세력 균형이 조선 노비제로 표출되었다고 하면 과언일까?
https://v.daum.net/v/20231216020014768
“동국(東國)의 양법(良法)”? 조선 유생들의 노비제 옹호론[송재윤의 슬픈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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