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3. 11. 25. 09:30 수정 2023. 11. 30. 14:50
송재윤의 슬픈 중국: 변방의 중국몽 <13회>
사람에게 이름은 인격(人格)의 집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金春洙, 1922-2004)의 시구처럼 인간에게 이름은 자아의 거처이며 의식의 출발점이다. 소설 “투명 인간(Invisible Man)”으로 유명한 미국 흑인 작가 랄프 엘리슨(Ralph Ellison, 1913-1994)은 “타인이 선사한 이름을 인간은 자기 것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고 썼다. 누구인가 나에게 붙여준 이름은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내 존재의 기호(記號, sign)이다. 만약 우리를 가리키는 존재의 기호가 우리의 현재 이름이 아니라 “말똥(馬?)”이나 “암캐(雌介)”처럼 흔하디흔한 조선 노비의 이름이었다면, 우리는 과연 지금 무엇이 되었을까?
미치광이 전술인가, 노비제의 유습인가?
한국어의 존댓말은 부드럽고 아름답지만, 반말은 거칠고 상스럽다. 50세의 공직자를 향해선 “어린놈” 타령하고 대통령 부인을 두고선 “암컷” 운운하는 정치권의 폭언과 망발의 릴레이를 보면서 문득 드는 질문이다. 글로벌 팝 문화를 이끄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 왜 그토록 투박하고 저열한 연령차별과 여성 혐오의 문화가 남아있는가? 언제 어디서든 위아래를 가려 말을 높이거나 낮추는 한국 특유의 언어 차별은 대체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조선에서 500년 지속됐던 광범위한 노비제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듯하다. 조선은 한때 인구 절반을 노비 삼아서 하대하고 천시하고 가혹하게 부렸던 노비제의 나라였다. 관습의 힘은 강하고도 질기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과거 신분제의 유습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대체 왜 조선 양반들은 자기 노비들에게 그토록 모욕적이고 혐오스러운 이름을 부여했을까? 노비의 뇌리에 노예 의식을 각인하려는 노주들의 간지였을까?
https://v.daum.net/v/20231125093016566
암캐, 담사리, 말똥, 빗자루···· 노비 이름에 숨겨진 조선왕조의 비밀
https://v.daum.net/v/20231118093019956
갓난아기까지 조사해서 758구의 노비를 나눠 가진 9남매
조선일보 2023. 11. 18. 09:30 수정 2023. 11. 30. 14:42
송재윤의 슬픈 중국: 변방의 중국몽 <1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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