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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의 최대 모순: 천민(賤民)도 천민(天民)이라면, 노비는 누구인가?[송재윤의 슬픈 중국]

바람아님 2023. 12. 23. 02:25

조선일보 2023. 12. 23. 02:00(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역사학)

송재윤의 슬픈 중국: 변방의 중국몽 <16회>

세계 노예제의 역사를 돌아보면, 노예주도 자신이 소유한 노예가 똑같은 인간이란 사실을 모르지 않았음을 여러 경로로 확인할 수 있다. 노예주들은 억지 논리와 변명거리를 지어내어 노예들을 인간 이하(subhuman)의 존재로 취급하려 했지만, 인간은 인간을 알아본다. 피부, 머리털, 눈동자의 색깔이 달라도 얼굴을 마주 보고 말 한마디 섞어 보면 누구나 같은 사피엔스임을 느낀다.

조선 사람들도 예외였을 수 없다. 그들이 남긴 문장을 읽어보면, 천민(賤民)도 천민(天民, 하늘의 백성)이란 구절도 보이며, 노비도 동포(同胞)라는 선언도 나온다. 그들도 인간일진대 하늘의 백성을, 동포의 절반을 노비 삼아서 부리면서 죄책감을 못 느꼈을 리 없다.

양민, 천민 모두가 하늘이 낸 백성
1415년(太宗, 15년) 음력 1월 20일, 형조판서 심온(沈溫, 1375-1419) 등이 태종(太宗, 재위, 1400-1418)에게 상소했다. 당시 노비의 소유권을 놓고 형제자매가 쟁송(爭訟)하는 사건들이 줄을 이었다. 이에 대해 심온은 임금을 향해 다음과 같이 아뢴다.

“하늘이 내신 백성은 본래 양민(良民)도, 천민(賤民)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천민(天民, 하늘의 백성)임에도 [그 일부를] 사유재산으로 삼고선 아버지, 할아버지의 노비라 따지면서 기강도 한계도 없이 쟁송(爭訟)을 벌여서 심지어 골육을 상잔하고 풍속을 훼상하는 데까지 이르고 있으니 가슴 아픕니다(天之生民, 本無良賤, 將一般天民, 以爲私財, 稱父祖奴婢, 相爲爭訟, 無有紀極, 以至骨肉相殘, 敗傷風俗, 可謂痛心.).”

양천(良賤) 구분 없이 모두가 천민(天民)이라 선언한 후 심온은 임금을 향해 어떻게 하늘의 백성을 노예로 삼을 수 있냐고 항의하고 있다. 이 항변 속에는 모든 인간은 하늘의 아들딸이라는 만민 평등의 대전제가 깔려 있다.


https://v.daum.net/v/20231223020018335
조선사의 최대 모순: 천민(賤民)도 천민(天民)이라면, 노비는 누구인가?[송재윤의 슬픈 중국]

 

조선사의 최대 모순: 천민(賤民)도 천민(天民)이라면, 노비는 누구인가?

송재윤의 슬픈 중국: 변방의 중국몽 <16회> 세계 노예제의 역사를 돌아보면, 노예주도 자신이 소유한 노예가 똑같은 인간이란 사실을 모르지 않았음을 여러 경로로 확인할 수 있다. 노예주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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