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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157] 꽃밖꿀샘

바람아님 2014. 4. 25. 22:09

(출처-조선일보 2012.04.16 최재천 /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최재천 /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온 나라에 벚꽃이 흐드러졌다. 여의도 윤중로석촌호수길을 비롯하여 서울의 크고 작은 벚꽃길들도 모두 이번주가 절정이란다. 1960~70년대를 청장년으로 지낸 이들에게는 창경궁(당시 창경원)이 벚꽃놀이의 명소였다. 197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닌 이들은 그곳에서 '나체팅'을 벌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남녀가 홀딱 벗고 미팅을 했던 것은 아니다. '밤(나이트)벚꽃(체리블라섬)미팅'에서 세 글자를 뽑아 만든 말이었을 뿐, 그저 밤중에 만나 벚나무 아래를 거닐고 연못에서 보트놀이를 즐기는 게 고작이었다.

벚나무는 목련, 개나리, 진달래 등과 함께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우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질 급한'꽃나무이다. 이들은 모두 지난해에 축적해둔 에너지를 사용하여 꽃부터 먼저 '출시'하고 꽃이 질 무렵에야 비로소 광합성을 하기 위해 잎을 만든다. 우리도 그들의 홍보전략에 따라 꽃이 필 때만 그들을 탐미하고 그 후로는 일년 내내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러나 금년에는 벚나무의 이파리에도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벚나무 이파리에 잎꼭지가 달려 있는 부분을 살펴보면 한 쌍의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그곳에 혀를 대어보라. 희미하게나마 단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생물학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꽃에는 꽃가루를 옮겨주는 벌, 나비, 박쥐 등에게 단물을 제공하는 꿀샘이 있다는 사실은 상식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꽃 안뿐 아니라 꽃 밖에도 꿀샘을 갖고 있는 식물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꽃안꿀샘'이 꽃가루받이를 위해 진화한 데 비해 '꽃밖꿀샘'은 식물이 보디가드를 고용하고 그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 만든 기관이다. 식물이 고용한 보디가드에는 압도적으로 개미가 많다. 개미는 식물로부터 단물을 얻는 대신 그 식물을 공격하는 모든 초식동물을 구제한다. 식물은 꽃밖꿀샘의 단물에 기본적으로 탄수화물만 잔뜩 넣어주고 단백질은 개미더러 스스로 찾아먹으라는 계약을 맺은 것이다.

금년에는 벚꽃이 지고 난 벚나무에서 열심히 보디가드로 일하는 개미를 관찰해보기 바란다. 어디선가 영화 '보디가드'에서 들었던 'I will always love you(당신을 영원히 사랑하리라)'가 흐르며 늠름한 케빈 코스트너가 달려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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