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人文,社會

최재천의 자연과 [156] 선택

바람아님 2014. 4. 23. 22:27

(출처-조선일보 2012.04.09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또다시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다. 내일(11일)은 제19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날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한 마디로 선택이다. 
장하준 교수의 근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읽어보니 경제도 결국 선택인 듯싶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마이클 샌델 교수는 도덕도 선택의 영역 안에 있다고 주장한다. 
일찍이 카뮈는 선택의 총합이 결국 인생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윈에 따르면 생명 현상은 모두 선택에 의해 진화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암컷이 수컷을 고르는 배우자 선택 과정이 중요하다. 
암컷들이 선호하는 형질을 가진 수컷의 유전자가 후세에 전달된다. 
제아무리 건장한 수컷이라도 궁극적으로 암컷이 선택해주지 않으면 그의 유전자는 후세에 남겨지지 않는다.

동물의 번식구조 중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아마 레크(lek) 번식일 것이다. 
레크는 '놀이'라는 뜻의 스웨덴어로서 들꿩이나 도요새 같은 새들에서 보듯이 해마다 번식기만 되면 여러 마리의 수컷들이 
한곳에 모여 암컷의 간택을 받는 랑데부 장소를 일컫는다. 
그곳에서 암컷은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온갖 수컷들의 춤과 노래 실력을 비교하며 장차 태어날 새끼들의 아빠를 선택한다. 
어딘지 모르게 우리네 선거 현장과 흡사해 보이지 않는가?

그런데 선택이란 본래 만만치 않은 법. 선택을 받고 싶어하는 쪽이 힘들 건 말할 나위도 없지만 선택을 해야 하는 쪽도 
곤혹스럽긴 마찬가지이다. 
그래서일까? 레크를 찾는 많은 암컷들이 자기보다 경험이 많은 다른 암컷의 선택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행동생태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암컷의 따라하기(female copying) 행동이라고 하는데,어느 경험 많은 암컷이 짝짓기를 하고 
있는 바로 옆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길게 줄지어 서 있는 암컷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진풍경이다.

내일 투표할 후보들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 혹시 부모님이 지지하는 후보라서, 친구가 좋아하는 후보라서, 
또는 여론조사에서 앞서고 있는 후보라서 그냥 찍으려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레크에서 길게 줄 서 있는 암컷 새와 그리 다를 바 없다. 
이제라도 후보들의 사람 됨됨이와 정책을 꼼꼼히 살펴보자. 나의 현명한 선택이 내 삶은 물론,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