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SUNDAY 2024. 1. 27. 00:06
빈 벽 앞에 꽃무늬 방석이 하나 오롯하다. 벽지가 밀리고 해진 흔적으로 등을 기대었던 사람을 기억하고 있듯이, 가운데가 팬 방석도 앉았던 사람의 무게를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의 빈집을 찍은 사진가 인주리의 사진 시리즈 ‘어리비치다’의 한 장이다.
사진의 배경이 된 충청남도 당진의 집은 1600년대에 지어진 오래된 기와집으로, 인주리의 조상들이 대를 이으며 살아왔다. 인주리는 그 집에서 마지막으로 태어난 사람이고, 아버지는 그 집에서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족들은 이사를 했고, 가구와 물건들은 그대로인 채 더 이상 사람은 살지 않는 빈집이 됐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에 아직도 빛이 들어와서 머물다 사라지고, 문틈 사이로 바람이 들어와 공기를 흩트렸다 돌아나갔다. 그럴 때면 반닫이 문이 살그머니 열리거나 생전의 아버지가 옷을 걸어두던 벽면에 흰빛이 어리비쳤다. 집 여기저기 사소하고 미묘한 곳에서 아버지의 숨결이 느껴졌고, 텅 빈 것만 같던 집이 어렴풋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https://v.daum.net/v/20240127000623693
[사진의 기억] 집안으로 나비가 들어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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