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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161] 얼음의 땅, 깃털의 사람들

바람아님 2014. 5. 2. 18:27

(출처-조선일보 2012.05.14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오늘(15일)은 스승의 날이다. 하지만 가르침과 배움의 현장이 예전 같지 않다. 나는 오래전부터 되도록이면 가르치지 않으려 애써 왔다. 일방적인 가르침의 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장 효과적인 배움은 배우는 줄 모르면서 배우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영화처럼 훌륭한 배움의 매체도 별로 없어 보인다.

지금 서울환경영화제가 열리고 있다. 2004년 환경재단의 주최로 시작한 축제가 어느덧 9년째를 맞으며 환경과 인간의 공존을 노래하는 대표적인 국제영화제로 자리 잡았다. 확성기에다 하루 종일 환경 구호를 목이 터져라 외치는 것보다, 한 학기 내내 환경 강의를 하는 것보다, 때로 한 편의 환경 영화를 함께 관람하는 것이 더 큰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번 영화제에서 나는 특별히 '얼음의 땅, 깃털의 사람들'이라는 영화를 보며 남다른 감동과 배움을 얻었다. 
북미 동북부 대도시들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건설한 수력발전용 댐 때문에 캐나다 북부의 허드슨만에서 대대로 수렵생활을 
하며 살아온 이누이트인은 물론, 그들과 함께 살아온 솜털오리(eider duck)·물개·북극곰의 삶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댐에 가둔 담수가 겨울에도 허드슨만으로 흘러들며 그곳 바닷물의 염도를 떨어뜨려 예전보다 쉽사리 얼어붙는 바람에 
솜털오리의 겨울 서식처인 빙호(氷湖·polynya)가 사라지고 있다. 
성게나 홍합을 잡아먹기 위해 뛰어들 빙호가 사라지면서 많은 솜털오리가 얼음 위에서 동사하고 있고, 어렵사리 찾은 빙호에서
동료들을 비집고 들어가 먹이를 물고 올라오는 솜털오리는 출구를 찾지 못해 얼음 밑에서 익사하고 있다. 솜털오리의 알과 
고기를 먹으며 그 깃털로 방한복을 만들어 입던 이누이트인의 삶도 덩달아 흔들리고 있다.
담수의 50% 이상이 댐에 갇혀 제대로 흐르지 못하고 있다.생명의 근간인 물이 감옥에서 시름시름 죽어간다.

오늘은 서울환경영화제의 마지막 날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달려가면 '도쿄 연가: 까마귀의 노래' '이누크와 소년' '전기자동차의 복수' 등 귀한 환경영화들을 만날 수 있다. 훌륭한 환경영화 한 편이 당신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에서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로 거듭나게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