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3.01.16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이란 천연자원 개발에 따른 갑작스러운 외환 증가가 제조업의 후퇴를 불러오는 것을 말한다. 마치 로또에 당첨된 후 오히려 인생이 망가지는 것과 유사하다. 슬로히터른 지역의 천연가스전(田)과 북해 유전이 개발되어 거액의 외화가 네덜란드로 유입된 결과 환율이 급격히 떨어져서 전반적인 수출 경쟁력이 떨어졌다. 이것이 네덜란드 병의 주된 병세지만 그 외에도 심각한 증상들이 다양하게 나타났다.
우선 2차대전 이후 장기간 유지해 왔던 임금 안정 기조가 풀려 임금 수준이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환율 하락과 임금 상승이 맞물려 기업의 경쟁력이 더욱 하락했고, 그 결과 실업률이 크게 올랐다. 이로 인한 문제 해결은 가스 수출 대금을 이용한 복지 시스템에 의존했고 그 결과 '노동 없는 복지'가 자리 잡았다.
1960~70년대에는 노사 간 임금 협상이 난항을 겪다 불법 파업과 공장 폐쇄로 이어지는 일이 빈발했다. 특히 1967년 필립스사의 임금 협약 결과 임금에 물가상승률을 반영하게 된 것이 중대한 계기가 되었다. 임금만이 아니라 임금 수준에 연동된 사회보장 지출도 물가상승률을 따라 자동적으로 상승했다. 사회보장 지출이 한계에 이르도록 팽창하여 이제 이 나라의 사회보장제도는 사실상 유지가 불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사회보장부담금과 조세의 증가는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의 소득 수준을 크게 떨어뜨렸다.
이런 상황에서 1973년과 1979년에 들이닥친 두 차례의 석유 위기는 네덜란드 경제를 완전히 나락에 빠뜨렸다. 1981~ 83년 당시 국민소득은 8분기 연속 감소했고, 부채 증가로 인해 제조업체 25개 중 하나꼴로 파산했다. 1981~83년에만 무려 3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는데 대부분이 제조업 정규직이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었다. 실업자 수는 매월 1만명씩 늘어나 1984년에는 80만명까지 치솟았다. 고용 노동자의 평균 가처분소득은 1981~83년 3년간 약 10% 감소했으며 미취업자들에 대한 사회보장 혜택은 더 크게 감소했다. 이 나라는 경제가 너무 피폐해져서 도저히 회생할 수 없어 보였다. 그랬던 네덜란드가 어떻게 슬기롭게 병을 이겨냈는지는 다음 주에 이야기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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